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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칼럼

[세상읽기] 무지의 공포 / 권김현영

등록 :2020-02-11 18:19수정 :2020-02-1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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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ㄱ씨는 2020년 1월 숙명여자대학교 정시모집에 합격했다. 22살, 다른 새내기보다 늦은 입학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는 다음 한 줄이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ㄱ씨는 2019년 10월 법적 성별정정을 마쳤다. 한국의 성별정정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2006년 대법원은 성별정정에 대한 사무처리지침 예규를 만들었다. 이 지침은 성별정정을 인정하는 나라 중에서 가장 엄격한 편이다. 19살 이상이어야 하고, 혼인 상태가 아니어야 하며, 미성년의 자녀가 없을 것, 성장기부터 지속적인 불일치감으로 고통을 받았을 것, 반대의 성에 귀속감을 느낄 것, 상당 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을 것, 호르몬 요법에 의한 치료를 실시하였을 것, 성전환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을 것, 생식능력을 상실하였을 것, 향후 종전의 삶으로 재전환할 개연성이 없거나 극히 희박할 것, 범죄 혹은 탈법 행위에 이용할 의도나 목적이 없을 것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제출 의무 서류로 2명 이상의 정신과 전문의 진단서, 2명 이상의 인우보증 등을 요구하고 있다. 부모 동의서까지 요구하다가 2019년에야 없어졌다.

ㄱ씨는 이 까다로운 성별정정 요건을 모두 통과하여 법적으로 여성의 신분을 보장받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ㄱ씨는 입학을 포기했다. 함께 공부할 학생들이 ㄱ씨의 입학을 공개적으로 반대했으니 다니기로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트랜스젠더에 대한 사회적 의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것은 20대 여성들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불법촬영 유포 자살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지배적 남성 권력에 대한 분노가 길을 잃고 사회적 소수자에게 향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 역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때맞춰 페미니즘이 자기 정당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진단과 우려를 쏟아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페미니즘은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129개의 단체가 함께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함께하는 한국여성단체연합 소속의 여성단체들은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며 여성으로 살아왔고 살아갈 그녀의 입학은 ‘교육과정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설립된 숙명여대의 정신에 비추어도 지극히 마땅한 일”이라며 트랜스젠더 여성의 숙명여대 입학을 환영하는 공동성명을 냈다.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은 “여성이 인간이라면 트랜스여성은 여성이다”라는 두고두고 곱씹을 명언을 성명서의 제목으로 썼다. 대학 페미니스트 연합체인 유니브페미는 대학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에서 다수의 구성원과 다른 모습으로 상정되는 소수자에게 폭력이 집중되는 현실을 고발하며 안전이라는 감각은 가상의 동일성에서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의 “다름과 낯섦을 직시하며, 과정의 고민과 대화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획득될 수 있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2020년 2월10일 현재, 언니네트워크를 비롯한 233개 단체와 2882명의 개인은 “출생 시에 지정된 성별에 따라 삶의 공간, 범위, 형태가 결정지어지는 전제를 의심하고 그것을 넘어가려는 도전이 바로 페미니즘”이며 “자신과 공동체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해온 모두가 우리의 동료”라는 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질문은 곧 성폭력 피해자가 듣는 질문이기도 했다는 점을 적실하게 지적하며,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리는 동시에 여성에 대한 보호와 통제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실행하려는 것에도 맞서야 한다고 했다.

환대의 메시지도 있었다. 숙명여대 동문 763명은 학교 당국이 모든 학생에게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달라며 ㄱ씨의 입학을 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숙명여대 법학부에 재학 중이라는 한 학생은 개인 성명을 내어 자신 역시 낯설고 두렵기도 하지만 “합류”를 환영한다고 했다. 많은 성명서가 반복해서 말하는 메시지는 우리는 결코 무지 속에서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함께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서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일지도 모른다. 무지의 공포를 무지에의 공포로 이겨내자. 인간에게 남은 희망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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