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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산업·재계

500만원으로 일군 세계경영 신화…그룹 해체로 ‘굴곡의 삶’

등록 :2019-12-10 18:25수정 :2019-12-11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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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1936~2019] 83년 발자취 속 명과 암

‘세계로’ 샐러리맨 성공신화
15살때 소년가장·무일푼으로 시작
31살에 대우실업 설립 사업가 길로
아프리카로 옛 공산권국가로
물건 팔기 위해 전세계 누벼

‘문어발 경영’에 실패한 기업인
금융·상사·중공업·자동차…
업종 불문 M&A 외형확장 치중
외환위기로 대우는 공중분해
회계조작·사기대출 검찰수사도
2008년 베트남 오가며 사업가 양성
그래픽_김승미
그래픽_김승미

9일 밤 11시50분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향년 83살로 별세했다. 그는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운명했다. 김우중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압축 성장을 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대끼며 살았다. 자연스레 명암은 뚜렷하다. 세계를 무대로 경주한 그의 ‘기업가 정신’은 여전히 귀감이지만, 무리한 차입과 ‘문어발’ 경영에 따른 그룹 해체는 위기관리에 실패한 기업의 운명을 상징한다. 회계 조작·사기 대출 등 경제 범죄는 윤색할 수 없는 그의 과오다.

김우중은 1936년 대구에서 6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전쟁 시기 부친(김용하)이 납북돼 15살부터 사실상 가족 생계를 책임졌다. 휴전 뒤 상경해 경기중·고를 다녔고, 1956년 연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1967년 3월 대도섬유의 도재환과 공동출자해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설립하며 사업가가 된다. 첫 사무실은 서울 명동 한켠에 마련했다. 이후 그는 수출로 번 돈과 은행에서 빌린 돈을 바탕으로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을 차례로 사들인다. 고려피혁(1972년)·쌍미섬유공업·동양증권(이상 1973년)·한국기계공업(1976년)·새한자동차(1978년) 등이 대표적이다.

김우중이 무일푼으로 시작해 인수·합병으로 써내려간 ‘대우의 성장사’는, 다른 재벌그룹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삼성과 에스케이(SK) 창업주인 고 이병철과 최종건은 애초 부호였거나 해방 직후 정부가 관리하던 일본인 재산(적산)을 불하받아 사업을 시작했다. 김우중의 신화가 이병철·최종건의 그것과 다른 지점이다.

김우중은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금융(대우증권·대우캐피탈), 상사(대우무역), 중공업(대우조선해양·대우엔지니어링), 자동차(대우자동차), 전자(대우전자)는 물론 문화산업(대우시네마네트워크)에까지 손댔다. 이른바 ‘문어발 경영’ ‘선단식 경영’의 전형이었다. 전문화와 효율화는 제쳐두고, 정부와 국책은행의 신용할당(관치금융) 정책과 사업 인허가권에 기댄 사업 확장이었다는 점에서 여타 재벌그룹의 경영 행태와 비슷하다. 1990년대 정경유착과 재벌 폐해 비판에서 대우그룹은 비켜서지 못했다. 업종 전문화를 강조하며 재벌그룹 간 ‘빅딜’(사업 재편)을 추진한 김대중 정부(1998~2002)와 불협화음이 컸던 배경이기도 하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9일 밤 11시50분 향년 83살로 별세했다. 사진은 2012년 3월22일 대우그룹 창립 4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김 전 회장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세계경영’은 김우중의 트레이드마크이다. 물건을 팔기 위해서라면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는 물론 옛 공산권 국가도 가리지 않았다. 대우의 세계 네트워크는 전방위적이었다. 1998년 말, 현지법인 396개를 포함해 국외 네트워크가 모두 689개, 국외 고용인력도 25만2천명에 이르렀다. 대우그룹 부도 이후 채권(대우에게 대금을 지급하기로 거래 상대방이 약속한 증서) 발행 국적이 워낙 다양했던 터라 채권단이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일화도 있다.

1989년 출간된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로 유명한 ‘세계경영’에는 김우중이 강조한 불굴의 기업가 정신이 투영돼 있다. 김우중의 세계경영 선포는 1993년 3월이다. 그 뒤 주요 계열사의 국외 법인과 지사 신설이 잇따랐다. 같은 해 6월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외형 확장에 경고음을 낸 ‘신경영 선언’을 한 건 공교롭다. 김우중은 거침없는 외형 확장을, 이건희는 질적 성장이라는 서로 다른 청사진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세계경영은 훗날 대우그룹을 위기에 빠뜨리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우의 맨얼굴이 드러났다. 대우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고금리 정책과 회사채 발행 제한 조처 등으로 유동성 압박에, 금융기관들은 부실채권을 떠앉으며 연쇄파산에 시달렸다. 부실 정리에만 공적자금 30조원이 투입됐다. 대우는 1998년 12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삼성과 삼성자동차·대우전자를 주고받는 ‘빅딜’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결국 정부 자금 지원도 막히면서 김우중은 1999년 11월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1990년대 초 대우전자 텔레비전 이미지 광고에 등장한 ‘대우가족’은 허물어졌다.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김우중은 검찰 수사를 피해 5년8개월간 국외 도피 행각을 벌인다. 2005년 6월 도피를 멈추고 귀국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을 발표하지만 이미 늦은 터였다. 5개월 뒤 김우중은 20조원대 회계 조작과 10조원 가까운 사기 대출 등의 혐의로 징역 8년6개월, 벌금 1천만원, 추징금 18조원의 형을 확정받는다. 2008년 사면받은 뒤 그는 베트남과 한국을 오가며 글로벌청년사업가양성사업(GYBM) 등을 운영해왔다.

그의 유족으로는 부인 정희자 전 힐튼호텔 회장, 장녀 김선정 재단법인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장남 김선협 ㈜아도니스 부회장, 차남 김선용 ㈜벤티지홀딩스 대표와 사위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 등이 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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