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짜릿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지난 해 11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와 호주 등 아시아의 주요 국가들이 RCEF(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를 성공적으로 체결했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코로나19라는 막강한 이슈에 가려지긴 했지만, 아니었다면 세계 최대 규모의 ‘메가 FTA’로 큰 주목을 받았을 사건이었다. 트렌디한 책을 만들 때 가장 고민되는 것 중 하나가 독자의 ‘현재’와 책이 말하는 ‘미래’가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가다. 책이 독자보다 과하게 앞서나가서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것을 미래라고 속여서도 안 된다. <아시아가 바꿀 미래>는 둘 사이의 균형을 적절히 지킨 책이었다. 저자는 이 책이 출간된 2019년 전부터 이미 아시아에 가장 중요한 터닝 포인트 중 하나로 2020년 치러진 RCEF를 말하고 있었다.
아시아는 뜨는 날만 기다리는 ‘오래된 유망주’ 같았다. 영어보다 중국어가 더 대세라든가, 베트남에 기회가 있다든가 하는 말은 많았지만 뜬소문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원고를 맡고 우려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국제관계 전문가라는 저자의 이력, 공신력 있는 각종 통계와 수치, 짐 로저스 같은 유명인들의 추천사는 책의 전문성을 입증해주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아시아’가 독자에게 얼마나 매력적일까. 결국 책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결정적 한 방이 되어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였다. 선망의 대상이던 미국과 유럽이 부실한 의료 체계, 무질서한 시민의식, 방역 실패에 따른 대혼란으로 충격적인 실상을 드러낸 것이다. 반면 한국과 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부와 시민 간 협력, 유연한 위기관리 능력 등으로 유례없는 역병의 폭풍을 현명하게 극복해나갔다. 팬데믹 속에서도 2020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미래를 확언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코로나19라는 공통점으로 묶인 나를 포함한 전 세계인들은 아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끔찍한 바이러스가 경제의 축을 옮겨놓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은 그 축의 전환이 가져올 지각변동을 말하고 있다.
저자인 파라그 카나에 따르면 아시아는 현재 ‘네 번째 성장 시대’에 돌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중‧일이 주도한 ‘세 번째 성장 시대’를 넘어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경제를 이끄는 시대가 온 것이다. 아시아는 세계 GDP의 절반을 차지하고 세계 경제 성장의 3분의 2를 담당한다. 세계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이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땅은 고령화되고 있는 서양과 달리 젊은 노동력이 풍부한 청년 대륙이다. 저자는 특히 베트남, 미얀마, 말레이시아 등 아세안 10개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놀랍게도 이 나라들은 팬데믹에도 든든한 외환 보유고를 유지하며 강한 회복 탄력성을 입증했다.
중국은 코로나19가 몰고 온 경제 불황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 논란거리였던 공산당의 강력한 권력이 위기 앞에서만큼은 해독제로 작용한 듯하다. 세계 1위 경제대국을 향한 중국의 야심이 두렵기도, 놀랍기도 하다. 저자 역시 중국의 정치 체제에 우려하는 시각을 내비친다. 다만 성장을 목표로 돌진하고 있는 중국이 실제로 유의미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데엔 확실히 동의한다.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 데이터가 가리키는 것은 가치중립적이다. 저자는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 정상회담을 주목한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철도와 항구 등을 이용해 하나로 연결한다는 이 프로젝트는 세계의 중심을 아시아로 만들겠다는 강력한 선언이었다. 중국은 물류 중심 기지로서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기반 시설 건설에 7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또 유럽을 통과하는 관문인 러시아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 등에 아낌없는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경제 성장에 목마른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이런 파격 제안을 경계하는 동시에 환영하고 있다. 중국과 카자흐스탄 국경에 위치한 훠월궈쓰는 일자리를 얻으려는 노동자들과 기업인들을 위한 무비자 환승 지역으로 변모했고 우즈베키스탄은 중국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해마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이 이 프로젝트로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한다며 견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만 중국의 투자가 아시아 국가들의 발전을 이끄는 것만은 확실한 듯하다.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아시아의 범위에 호주와 터키, 러시아 등을 포함하고 아시아와 이들의 관계를 폭넓게 조망한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영국’을 자처하던 호주는 브렉시트로 영국이 추락하자 서둘러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매달렸다. 연간 900만 명에 달하는 호주의 주 수입원인 유학과 여행 산업 대부분을 아시아(특히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맬컴 턴불 총리는 2018년 3월 호주-아세안 특별 정상회담에서 호주의 아세안 가입을 진지하게 논의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호주보다 더 적극적이다. 2018년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G7에 다시 가입할 것을 러시아에 제안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상하이 협력 기구 정상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이 제안을 에둘러 거절했다. 러시아는 이란과 300억 달러에 달하는 에너지 협력 협정을 체결했고 터키와의 연간 교역 규모는 200억 달러로 급속히 성장했다. 러시아와 아시아의 이런 활발한 교류는 러시아가 아시아화됨으로써 얻는 이득이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 외에도 터키, 파나마 등 많은 국가들이 아시아에서 경제적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한국은 어떨까. 저자는 한국의 핀테크 산업을 주목한다. 한국은 카카오페이 같은 모바일 뱅킹 가입자 비율이 인터넷 뱅킹 가입자 비율을 훨씬 넘어선 ‘현금 없는 사회’다. 아시아 저소득 국가에서 핀테크 상품 보급률은 5퍼센트 미만이지만 통신료가 저렴하고 스마트폰이 빠르게 보급되고 있어서, 카카오페이가 세력을 확장한다면 무려 약 20억 명의 잠재적 고객을 기대할 수 있다. 통일 이후 한국의 발전 가능성, 촛불개혁과 코로나19로 보여준 높은 시민의식 또한 한국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점치는 요인이다.
책의 1부는 아시아의 고대 역사부터 현재까지 폭넓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트렌디한 경제 전망서로 읽어도 되지만 역사 애호가들이 즐길 만한 밀도 있는 인문학 도서로 보아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다. 책의 원제는 ‘The Future is Asian’. “미래는 아시아에 있다”라고 직역해도 좋지만 아시안의 눈으로 봐야 미래가 있다는 뜻으로 넓게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보고 있던 것일까. 코로나19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생존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된 지금, 어쩌면 선구안은 이미 우리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부의 이동을 예측하고 싶은 투자자들에게 이 책이 든든한 포트폴리오가 되어줄 것이다.
박소연 동녘사이언스 편집자 editorb@dongny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