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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줄세우기식 선별적 산업정책을 버려야 산업이 산다

등록 :2021-01-25 14:01수정 :2021-01-2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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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의 산업혁신 톺아보기]
지난해 5월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포스트 코로나 산업정책 간담회 및 산업·기업 대응반 1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산업부 제공
지난해 5월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회의실에서 ‘포스트 코로나 산업정책 간담회 및 산업·기업 대응반 1차 회의’가 열리고 있다. 산업부 제공

세계적으로 산업정책을 성공적으로 실행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산업정책이라고 하면 으레 경제 및 산업의 전반적인 성장을 추동하고 선도할 수 있는 특정한 산업을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는 혁신, 녹색, 창조 등의 이름으로 다르게 불렸지만 특정 산업을 선별하고 해당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동일한 방식으로 산업정책을 수행해 온 것이다.

이러한 정책방식이 유지되는 것은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확신 때문이다. 1960년대 이후 석유화학, 선박, 자동차, 반도체 등 우리나라의 핵심 산업들이 정부의 전략적인 선별과 집중적 지원 속에서 성공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에 선별적 산업육성은 하나의 신화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확인해야 할 것은 우리나라가 선택한 산업은 이미 선진국의 경험을 통해 그 산업의 경제적 중요성과 시장성이 확인된 것이었다는 점이다. 즉 우리에게는 어떤 산업을 선택해야 되는지를 알려주는 일종의 “보물섬 지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 보물섬 지도가 알려주는 곳을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즉 후발자의 이익을 누렸던 것이다.

물론 모든 국가가 보물섬 지도가 있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산업화에 성공하고 더 나아가 세계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이 보물섬 지도를 참고하여 우리의 경제적 환경과 성장단계에 따라 육성이 필요한 산업을 적절하게 선별하고 모든 경제주체의 역량이 집중될 수 있도록 리더십과 정책적 역량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 우리가 글로벌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과거와 달라짐에 따라 기존 선별적 정책의 유효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서 있는 글로벌 산업의 프런티어는 새로운, 즉 범주화되지 않는 상품과 산업을 얼마나 더 많이 창출하는가가 중요한 경쟁력으로 작용하는 곳이다. 정부가 어디서 받아올 보물섬 지도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해 특정한 산업을 결정하고 기업을 그 틀에 가두고 거기에 역량을 집중하게 하는 방식은 기업의 자발적 혁신역량을 약화시켜 산업발전을 저해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ㅇㅇ 지원산업”이라는 경주마용 눈가리개가 기업의 성장 방해

정부는 자신이 산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머지 경제주체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 바로 정부의 역할이라고 볼 것이다. 그것은 미래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력과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특정 산업을 범주화하고 지원하는 방식의 가장 큰 약점은 산업을 구성하는 기초단위인 기업의 생각과 활동범위를 축소 또는 한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 주도의 특정 산업 지원은 기업들에게 경주마의 눈가리개를 씌우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 경주마의 눈가리개는 하나의 목표점을 향해 질주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지만 더 넓은 세상에서 새로운 목표점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방해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일종의 정부 가이드 라인은 기업들에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시장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위축시키며 정부의 결정에 의존하는 경향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혁신역량이 낮은 기업에게는 이러한 방향 설정이 도움이 되겠지만 이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기업에게는 창의성과 도전의식을 제약하여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혁신적인 상품을 개발하여 글로벌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거하는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산업중심적 지원 방식은 행정 편의주의를 만든다

또한 산업이라는 눈가리개는 기업지원기관의 눈도 멀게 만든다. 산업의 범주를 통해 기업을 지원하면 지원기관의 지원판단 근거는 단순히 그 기업이 정부가 육성시키려는 산업을 하는가 안 하는가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부의 실적 요구까지 이어지면 기업의 진정한 능력을 판단하려는 노력은 더 없어지게 될 것이다. 결국 부실한 기업이 자기의 이마에 “ㅇㅇ산업”이라고 이름표를 붙이고 지원을 요청하게 될 것이고 결국 산업의 육성보다는 부실기업의 연명으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더 불행한 일은 기존의 산업체계로는 분류될 수 없는 새로운 혁신적 상품을 개발한 기업의 경우에는 산업분류의 기준으로는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흔히 정보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역선택(adverse selection, 좋은 것을 고르려다 더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의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지원방식은 특정 산업으로의 투자 쏠림 현상을 발생시켜 경기과열, 더 나아가 버블을 만들어내어 버블 붕괴시 경제와 산업에 큰 후유증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1990년대 말 닷컴벤처 붐 당시 무분별한 지원으로 코스닥 지수가 급등한 이후 버블이 붕괴하면서 수많은 투자자들이 피해를 입고 경제에도 큰 부담이 발생한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산업선별 정책이 아닌 기업혁신 지원 정책으로

우리는 이제 남들이 만들어놓은 지도를 가지고 보물섬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보물섬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럼 “어떤 모습의 보물섬을 어떻게 만들까?” 물론 다른 나라가 어떻게 짓고 있는가를 보는 것은 정책을 수립하는 데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들의 보물섬보다 더 나은 섬을 만들 수 없다는 한계가 분명하다.

사전적으로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고 선언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경제주체들의 역량을 결집시키기보다는 경제주체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그들의 혁신적 활동 결과로 새로운 그 무언가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산업에서의 가장 개별적인 단위는 기업이다. 결국 개별 기업들의 혁신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책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선 정부는 특정한 산업을 기업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기업가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과 투자를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혁신 아이디어의 기초인 R&D 역량을 확충하고 기업의 창업투자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정보네트워크 및 금융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경제와 산업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자신의 기득권을 활용하여 새롭고 혁신적인 기업의 시장 진입과 경쟁 대상자의 성장을 막는 것을 못 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의 공정성을 높이고 진입장벽을 낮추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안정망 등의 확대를 통해 기업활동 및 투자 실패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축소시켜야 한다. 실패시 위험의 축소는 창의적 기업가가 미래의 불안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게 하여 성공확률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실패한 경우에도 실패를 통해 획득한 교훈을 활용하여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창업의 역동성을 확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업정책의 궁극적 목적이 경쟁력 있는 기업의 육성에 있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기업을 지원할 때는 그 기업이 무엇을 만드는가를 보기보다는 어떤 기업인가 즉 성장 가능성 여부 등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과거의 성공방식을 버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과감히 과거의 자신의 틀을 버릴 수 있는 자만이 새로운 도약을 해낼 수 있다. 아니, 틀을 깨지 못하면 도약을 못할 뿐만 아니라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사전적으로 좋은 산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혁신적 기업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좋은 산업인 것이다.

이재우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산업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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