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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주인이 100명인 마을펍…‘시민자산화’로 직진

등록 :2020-06-08 09:23수정 :2020-07-07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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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회]
목포 만호동 ‘건맥1897협동조합’의
원도심 거리 활성화 프로젝트
“사람 북적이는 거리 그리워…”
주민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펍 구상

십시일반 출자금 모아 빈 건물 매입
마을펍과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
영국 ‘아이비 하우스’ 부럽잖은
마을공동체의 구심 역할 기대

시민자산화란?

지역 주민들이 토지와 건물 등 지역사회에 필요한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사용하는 대안적인 소유 방식이다. 공동 소유 자산의 관리와 운영에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참여하며, 자산 운영을 통해 발생한 이익도 지역 공동체와 나눈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원도심이나 농어촌 지역 공동화 등의 문제를 풀 대안으로 꼽힌다. 지역자산화, 공동체자산화, 사회적 부동산 등으로도 불린다.

지난해 12월21일 ‘건맥 1897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모집하기 위해 연 ‘주주파티’에서 마을 주민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건맥 1897 협동조합’ 제공
지난해 12월21일 ‘건맥 1897 협동조합’이 조합원을 모집하기 위해 연 ‘주주파티’에서 마을 주민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건맥 1897 협동조합’ 제공

영국 런던 남부 서더크 자치구의 넌헤드 지역에는 마을 주민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펍(대중 술집)이 있다. ‘아이비 하우스’라는 이름의 이 유서 깊은 펍은 오랜 기간 마을 사람들에게 ‘사교의 장’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음악 공연, 결혼식, 주민 모임 등 크고 작은 마을 행사가 이곳에서 열린다. 1970년대에는 ‘펍 록’ 공연의 명소였다고 한다. 주민들이 처음부터 펍을 소유했던 것은 아니다. 손님으로 이곳을 드나들던 주민들이 펍의 주인이 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건 2012년 펍에 위기가 찾아오면서다. 도시 재개발 사업으로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서 건물주가 건물 매각에 나선 것이다.

교류와 회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던 펍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마을 주민들이 지역공동체 회사를 설립해 건물을 사들였다. 이어 ‘공동체 주식’을 발행해 371명의 주민 투자자를 모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펍은 ‘영국 최초의 공동체 소유 펍이자, 최초의 협동조합 소유 펍’으로 재탄생했다. 펍 운영과 관련된 주요 안건은 주민 투자자를 중심으로 꾸려진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된다. 지역공동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펍답게, 이곳은 ‘마을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낮에는 요가, 뜨개질, 어린이 음악교육 등 주민들의 다양한 여가활동 장소로 쓰이기도 한다. ‘아이비 하우스’는 주민들이 마을 건물 등을 공동 자산으로 만드는 ‘시민자산화’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이비 하우스’처럼 ‘주민이 주인인 마을펍’의 꿈이 영글어가고 있다. ‘건맥 1897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 협동조합은 전남 목포시 만호동 건해산물 거리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마을 공동체 조직이다. ‘건맥’은 이 지역 특산물인 건해산물과 맥주의 첫 글자에서 따온 말이다. 1897은 목포가 개항한 해이다.

목포항 인근에 자리잡은 만호동 일대는 한때 매우 번화한 동네였다. 낮이고 밤이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건어물 유통의 중심지였던 건해산물 거리에도 활기가 넘쳤다. 진도와 신안 등 주변 도서 지역의 해산물이 대부분 이곳을 거쳐 전국 곳곳으로 팔려 나갔다. 그러나 20여년 전부터 서서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섬에 다리가 놓이는 등 교통 여건이 좋아지면서 집산지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원도심인 이 지역의 인구가 줄어든 것도 상권의 침체를 가속화했다.

변화의 계기는 지난해 9월 지역 상권 활성화를 위해 처음 열린 ‘건맥 1897 축제’였다. ‘1897 개항문화거리 도시재생뉴딜’ 사업의 하나로 진행된 건맥 축제는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건해산물 거리에 1200명이 앉을 수 있는 임시 테이블을 펴놓고 건어물로 만든 안주와 맥주를 제공했는데, 오후 4시부터 9시까지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 축제를 기획한 해산물상인회 박창수 회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이 거리가 밤이 되면 인적이 끊어지는 곳이에요. 그런 곳에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모인 겁니다. 방문객들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정말 좋아했어요. 함께 어울려 맥주도 마시고, 튀김이나 과일 같은 안주도 막 내오고…. 거리에 사람이 북적이는 것 자체가 즐거웠던 거죠. 언제 또 하냐고 묻는 분들도 많았어요.”

영국 런던 남부 서더크 자치구의 넌헤드 지역에 있는 공동체 소유 펍 ‘아이비 하우스’ 내부 모습. ‘공동체 주주 371명이 14만7천파운드를 출자했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전은호 목포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제공
영국 런던 남부 서더크 자치구의 넌헤드 지역에 있는 공동체 소유 펍 ‘아이비 하우스’ 내부 모습. ‘공동체 주주 371명이 14만7천파운드를 출자했다’는 안내 문구가 적혀 있다. 전은호 목포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제공

건해산물 거리 상인들을 비롯해 마을 주민들은 이런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어 했다. 상인회와 함께 건맥 축제를 기획한 목포시도시재생지원센터 전은호 센터장이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하는 마을펍을 만들어 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전 센터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시민자산화 전문가다. 사단법인 ‘나눔과 미래’에서 시민자산화사업팀장으로 일하던 2017년에는 영국 ‘아이비 하우스’로 현장 답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전 센터장은 주민들이 건맥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비 하우스’처럼 마을 공동체의 거점 공간 구실을 할 마을펍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제안에 박 회장도 무릎을 쳤다. 자신도 꼭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몇몇 주민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뜻이 모이자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석달 만에 건맥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조합원 100명의 출자금으로 6천여만원의 초기 자본을 마련했다. 임팩트투자 플랫폼인 ‘비플러스’의 소셜 펀딩으로도 6천만원을 모았다. 비플러스 펀딩 과정에서 사회적 금융기관인 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은 ‘시민 참여 지역자산화 매칭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펀딩 금액의 2배에 해당하는 1억2천만원을 지원해줬다. 행정안전부의 ‘지역자산화 지원사업’ 공모에도 지원을 해둔 상태다. 전은호 센터장은 “마을펍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내에서 시도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자금 조달 방식을 다 써본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며 “시민자산화를 위해선 사회적 금융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건맥 협동조합은 이런 과정을 거쳐 필요 자금의 절반가량인 3억5천만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건해산물 거리에 있는 빈 상가건물도 매입해 리모델링 공사를 벌이고 있다. 사업을 진행하면서 ‘몸집’도 커졌다. 애초 계획했던 마을펍(펍 1897)에 더해 마을 소유의 게스트하우스(스테이 1897)까지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인근 근대역사문화공간을 찾는 관광객을 염두에 둔 결정이다. 주민이 주인인 펍인 만큼, 이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장치도 마련해 뒀다. 협동조합 정관에 ‘건맥 1897 축제’ 지원기금, 일자리 지원기금 등의 지역사회 기여 방안을 명시해 놓은 것이 한 예다. 1단계 사업인 마을펍은 이르면 다음달 초 문을 열 예정이다.

전은호 센터장은 “미래 발전의 토대로서의 유무형의 자산을 지역과 시민이 함께 소유하고 운영함으로써 삶과 공간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시민자산화’는 지역(local)에서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만들어 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며 “시민자산화가 활성화되려면 부동산을 부의 축적 수단으로 보는 인식에서 벗어나, 제도적 뒷받침을 통해 사회 전반에 ‘공유’의 경험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목포/이종규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jklee@hani.co.kr

▶관련기사: ‘시민건물주’ 쉬워지려면…영국 ‘공동체 우선 입찰권’ 검토해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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