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를 확인하고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공정거래법이 지난해 2월 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대기업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를 금지한 이후 첫 사례다.
21일 공정위와 현대그룹의 설명을 종합하면, 공정위는 이날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 등 현대그룹 계열사 2곳에 심사보고서(검찰의 기소장에 해당)를 전달했다. 보고서에는 이들 계열사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일가가 지배하는 계열사에 부당지원행위를 해 공정거래법을 어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공정거래법은 총수 일가 지분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대기업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로부터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받을 경우 제재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로 판정 나면, 관련 매출액의 최대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총수 개인에게도 별도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가 현정은 회장의 동생인 현지선씨와 남편 변찬중씨가 대주주인 에이치에스티(HST)와 쓰리비에 일감을 몰아준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 조사 결과, 현대증권은 지점용 복사기를 렌트할 때 에이치에스티를 통하도록 했다. 이 회사는 현지선씨(10%)와 변찬중씨(80%)가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다. 에이치에스티는 이런 방법으로 2014년 매출 100억원 중 41억원을 현대증권으로부터 올렸다. 또 현대엘리베이터(12억원)와 현대상선(5억원) 등 다른 계열사들로부터도 29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복사기 등 사무용품 대여업체와 현대그룹 계열사 사이에서 ‘통행세’를 거둔 것이다. 통행세란 거래 과정에서 실제로 하는 일이 없는데도 중간 수수료를 받는 방식으로 부당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택배를 보낼 때 수취인의 이름과 주소 등을 적는 택배송장용지을 납품하는 쓰리비도 다르지 않다. 직원이 2명뿐인 쓰리비는 2014년 거둔 매출 35억원 중 33억원(94.2%)을 현대로지스틱스에 택배송장용지를 팔아 올렸다. 쓰리비는 현 회장의 제부인 변찬중씨(40%) 등 총수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다른 택배업체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가격으로 택배송장용지를 구매해 쓰리비를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심사보고서에 대한 의견서를 현대그룹 계열사들로부터 제출받은 뒤 이르면 다음달 전원회의를 열어 제재 여부를 확정할 예정이다. 현대그룹은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해서 최대한 소명을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현대그룹을 포함해 한진·한화·하이트진로·씨제이(CJ) 등 5개 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조사해 왔다. 한진그룹은 기내 면세점 위탁판매업체인 싸이버스카이(총수 일가 지분율 100%), 한화그룹은 전산시스템통합(SI) 업체인 한화에스앤씨(100%)가 다른 계열사와 부당한 내부거래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하이트진로그룹은 생맥주통 생산업체인 서영이앤티(85.2%)와 씨제이그룹의 광고대행사인 재산커뮤니케이션즈(100%)도 같은 혐의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이들 그룹에 대해서도 올 상반기 안에 조사를 마치고 심사보고서를 보낼 계획이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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