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영 오씨아이(OCI) 회장 내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씨, 조욱래 디에스디엘 회장 부자 등이 조세회피처 버진아일랜드에 상대적으로 추적이 손쉽도록 본인 명의로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배경을 놓고 금융권에선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조세회피처가 비록 국내 금융·과세·수사당국의 감시망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긴 하지만, 비자금 운용이나 탈세 등 검은 목적으로 회사를 설립했다면 본인 명의를 노출시키는 형태로 회사를 만들 유인이 약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유명인들 다수가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사실 자체보다, 자신 명의로 설립했다는 게 더 신기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본인 신분을 감추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투자회사인 사모펀드 형태로 회사를 설립하면 된다. 사모펀드는 운용자(GP)와 투자자(LP)로 구성이 되는데, 외부에는 운용자만 드러난다. 펀드 명의도 운용자다. 지피는 모건스탠리와 같은 외국계 투자은행을 내세우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했다가 많은 돈을 벌고 나간 론스타 펀드의 경우 여지껏 이 펀드의 투자자가 드러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국내에 들어왔던 외국계 펀드의 실제 주인이 한국인일 수도 있다는 ‘검은 머리 외국인’ 의혹이 종종 제기되는 것도 사모펀드의 이러한 구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 분야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회사 설립 과정을 컨설팅해 준 쪽이 실수를 했거나, 설립자들이 조세회피처에 회사를 세운다는 이유로 감시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본인 명의를 드러내놓고 회사를 설립했다는 점에서 검은 거래와는 무관하게 설립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설립된 회사의 성격도 미스터리다. 현재는 회사 설립 사실과 소유주 이름, 자본금만 나와 있을 뿐이다. 공개된 각 페이퍼컴퍼니 관련 자료에도 회사 형태를 그 의미가 모호한 ‘스탠더드 인터내셔널 컴퍼니’로 밝히고 있을 뿐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가마다 회사를 분류하는 기준과 방식은 다르다. (페이퍼컴퍼니가 세워진) 버진아일랜드 당국의 기준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에선 이들 회사들이 공격적인 자금운용을 하는 투자목적회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 회사는 공통적으로 각각 단일 주주가 500만달러를 출자해 만들어졌다. 투자회사일 경우에는 구체적인 투자 내역에 따라 또다른 의혹이 뒤따를 수 있다. 회사 설립자들이 국내 상장된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취득한 뒤, 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주식 등 유가증권을 거래했을 경우엔 주식 불공정거래 의혹으로 번지게 된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