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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거품 붕괴·금융부실 우려 등
90년대초 일본과 상황 비슷하지만
수출의존도는 한국이 5배 높아
내수침체 따른 장기불황 ‘완충재’
고령인구로 인한 저성장도 기우

최근 우리 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국내외 경제환경 악화로 경기 부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자산가격 거품 붕괴와 가계부채 부실화, 이에 따른 금융부실 확대와 내수의 장기 부진 가능성 등이 1990년대 초반의 일본 경제 상황과 비슷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좀더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구구조 변화의 유사성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몇가지 외견상의 유사성이 있다고는 해도, 우리 경제의 ‘일본화’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시각인 듯하다. 자산가격의 거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경우엔 일본에 비해 매우 작으며, 따라서 이로 인한 금융부실의 확대 가능성도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오판과 실기를 거듭했던 일본의 정책당국과 달리, 우리 정부는 가계부채 등의 위험요인들에 대해 비교적 현명하게 대처해왔기 때문이라는 게 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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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판단은 대체로 현실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도 한가지 간과되고 있는 게 있다. 바로 경제의 대외의존도 측면에서 우리와 일본이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일본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10%대 초반에 불과하고 내수 의존도가 80%를 넘어서기 때문에 내수불황이 그대로 경제 전체의 불황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우리 경제는 높은 수출 의존도와 낮은 내수 의존도 덕분에, 내수부문의 문제로 인해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낮다. 만약 우리 경제가 장기불황에 처하게 된다면, 이는 부동산이나 가계부채 때문이 아니라 세계경제의 저성장으로 인한 수출 부진 때문일 것이다. 최악의 경우 부동산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고 가계부채의 부실이 커지더라도, 대외환경이 개선되어 우리 수출이 호조를 보일 수 있다면 전반적인 경기급락이 억제되는 것은 물론 내수부문의 붕괴에 따른 충격에서도 비교적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 수출이 견인하는 경기회복을 통해 이미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외의존도의 차이는 인구구조의 변화를 기반으로 한 중장기 성장전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구구조의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의 비중 하락이 중장기적인 경제성장률의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통념이지만, 이는 대외의존도가 높지 않은 일종의 폐쇄경제를 전제로 한다. 경제활동의 주체인 생산가능인구는 기본적인 생산요소인 동시에 생산물의 소비자이며, 따라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궁극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양 측면에서 경제성장의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 이러한 부정적 효과를 전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로 인해 조만간 우리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주장은 기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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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낮은 고용률에서도 드러나듯이, 우리 경제의 문제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노동력을 충분히 활용하지도 못한다는 점에 있다. 또한 높은 대외의존도는 생산물의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소비되고 있음을 의미하며, 따라서 국내인구의 감소 또는 증가세 둔화가 생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높은 해외의존도는 취약점으로 지적되곤 한다. 하지만 모든 사물이 다 그러하듯이 나름의 명암을 가지고 있다.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을 둘러싼 논의에서 드러나듯이, 우리 경제에서 해외부문의 높은 영향력은 내수부문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완충기제로서 작동할 수 있다. 또한 그동안의 성장경로를 돌이켜보자면, 현재의 높은 수출의존도는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비교적 작은 내수시장의 규모를 고려할 때 높은 수출의존도는 제조업 주도 성장의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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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경제 불균형의 재조정이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신흥국들에서 내수주도적 성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으나, 불과 50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세계 15위의 경제규모를 달성한 우리 입장에서 이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수출과 내수의 균형적 발전은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 과제 중의 하나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 높은 수출의존도는 우리 경제의 숙명인 동시에 성장의 기반일 수밖에 없다.

임일섭/우리금융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