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700만명이 신용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다섯 명에 한 명꼴이다. 또 이런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는 형편이다.
<한겨레>가 신용평가회사인 한국신용정보(한신정)와 함께 지난해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동안 3391만7천명의 신용등급 변화를 분석한 결과, 은행 대출이 불가능한 신용등급인 7~10등급에 드는 저신용 계층이 700만5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특별한 담보가 없는 한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해 금리가 높은 캐피털이나 카드 론, 대부업체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전체 조사 대상인 3391만7천명은 국내에서 은행 계좌나 신용카드를 만드는 등 한 차례라도 금융회사와 거래를 한 사람들이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신용등급이 7~10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600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신정 쪽은 “7~10등급은 수십%에서 수백%의 고금리로 돈을 빌려야 하고, 빚을 갚기 위해 빚을 내면서 장기 연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 등급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저신용 계층이 늘어난 것은 2003년 ‘카드 대란’과 소득 양극화 과정에서 소득 창출 능력이 떨어지는 서민들이 양산된데다, 제도권 금융회사들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지나치게 우선시하면서 서민들의 신용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 지난해 1~6등급에서 올해 7~10등급으로 떨어진 사람은 99만4천명으로 100만명에 육박했다. 반대로 등급이 오른 사람은 95만5천명이었다. 지난해에 견줘 4만명 가량이 추가로 은행 대출을 받는 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중간 계층이 줄어드는 양극화 조짐도 나타났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3~4등급은 전체의 51%인 1714만명이었으나, 지난해 49만명 줄어들었다. 반면 최우량 수준인 1~2등급은 33만명이 늘었고, 7~8등급도 36만명 증가했다.
신용등급이 고착화하는 현상도 발견됐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9~10등급에 그대로 머문 사람은 이 등급의 88%에 이르렀다. 다른 등급에 견줘 가장 높은 비율이다. 1~2등급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같은 등급인 경우가 75%였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의 신용등급 격차는 금융 접근성의 차이로 이어져 계층간 양극화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나이대로 보면, 8~10등급에서 40대의 비중이 32%(171만명)로 가장 많았다. 이들은 사교육비와 생활비, 주택 등을 마련하려고 금융권에서 많은 대출을 받고 있지만 많은 수가 이를 제때 갚지 못해 연체를 하는 까닭으로 풀이된다.
조복현 한밭대 교수(경제학과)는 “정부가 나서서 은행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연체금액, 소득액, 근로 의지 등 실태를 정확히 파악한 뒤 서민금융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16일 은행들이 전체 신용대출의 일정 비율을 저소득층에 의무적으로 대출해 주도록 하는 내용의 ‘서민금융 및 지역금융 활성화를 위한 법률안’을 국회에 낼 예정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