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의약품 분야는 ‘미국의 공세와 한국의 수세’가 시종일관 뚜렷했던 분야다. 노무현 대통령도 스스로 ‘피해 분야’라고 말했을 정도다. 실제로 협상 타결 이후 국내 제약사들의 예상 피해나 국민들의 의료비 증가 부담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임상 자료독점권 강화등 미 특허신약 보호
신약개발만이 살길…국내 경쟁력으론 역부족
국민 의료비 부담 늘어나 저소득층 궁지로
보건복지부는 협상에서 미국 쪽 요구를 잘 막아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반면 국내 제약사나 보건의료단체들, 정치권 일부에서는 국내 우량 제약사들한테까지 막대한 타격을 주며, 이는 국민 의료비 부담 증가로 직결된다고 평가한다. 이와 관련해 복지부와 제약사 및 시민단체 사이의 피해액에 대한 추계도 큰 차이가 난다.
미국은 협상 초기부터 신약 특허 절차나 건강보험 약제비 산정 방식 등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미국 협상단의 요구는 대부분 미국 제약사들의 이익을 반영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미국 제약사의 특허 신약이 국내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임상시험 자료는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자료독점권’, 신약의 허가나 약값 결정 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이의신청이 가능한 독립적 이의신청 기구의 설립 등이다. 의약품 판매 허가와 특허가 연계되도록 하는 것도 미국 제약사의 특허 신약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조처다.
협상 과정에서 우리 쪽 협상팀은 이런 미국의 요구들이 국내 관련 법률에도 일부 있는 조항이며, 의약품 특허 제도를 가진 나라라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해왔다. 예를 들어 자료독점권과 관련해, 배경택 복지부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팀장은 “이미 1995년에 국내에 도입된 재심사 제도를 보면 신약을 품목허가할 때 제출된 임상시험 등의 자료를 6년 동안 보호해 주도록 하고 있다”며 “따라서 국내에 있는 제도를 협정문에 반영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료독점권이라는 개념이 국내 법률에 느슨하게 반영돼 있을 때와 자유무역 협정문에 들어간 이후와는 큰 차이가 있다. 국내 제약사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환자들의 약값 부담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혈압강하제인 ‘노바스크’의 시장구조를 보면 차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 제약사들은 이 약품의 미국 쪽 임상시험 자료 등을 활용해 특허 기간이 끝나자마자 개량신약을 출시해왔다. 노바스크보다 약값이 낮으면서 품질도 떨어지지 않아 미국 쪽 제약사는 큰 부담이 됐다. 실제 한국제약협회 자료를 보면, 개량신약이 출시되기 전인 2003년에 오리지날 신약 노바스크는 1160억원어치가 판매되다가 2004년 1128억원, 2005년 943억원, 2006년 910억원으로 계속 줄고 있다. 대신 국내 제약사의 개량신약 판매액은 2004년 122억원을 시작으로, 2005년 585억원, 2006년 820억원으로 크게 늘고 있다. 그만큼 국민들은 싼 가격에 좋은 품질의 약을 얻고 있는 셈이다. 김정호 한국제약협회 국제협력팀장은 “그러나 자료독점권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면 개량신약 출시는 그만큼 더 늦어지고, 그동안 미국 쪽 제약사들은 독점적으로 고가의 약을 팔 수 있게 된다”며 “국내 제약사와 국민들 모두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간다”고 말했다.
특허와 허가의 연계도 미국 쪽 특허 신약의 독점 강화로 이어진다. 이 제도는 특허를 가진 미국 제약사가 국내 제약사가 만들고 있는 약에 대해 특허 소송을 제기하면 약의 허가 절차가 자동으로 멈춰지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대략 30개월 정도 독점 유지 효과를 준다는 분석이 있다. 특허신약과 경쟁이 될 수 있는 개량신약 등이 나오는 기간이 그만큼 늦춰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배경택 팀장은 “미국처럼 30개월을 적용하지는 않기로 했으며, 국내 관련 법에 따라 기간을 조정중”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용 기간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는 아직 없으며, 국내 사정에 맞게 기간을 짧게 할 경우 미국 쪽에서는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게 돼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제에서 국내 제약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신약 개발 뿐이다. 그러나 거대자본과 전세계 판매망을 갖춘 미국 제약사와의 신약 개발경쟁은 사실 꿈 같은 얘기이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국내 한 중견제약사 간부는 “지금도 많은 국내 제약사들은 상품 개발보다는 다국적 제약사와 제휴해 해당 약의 국내 판매상 구실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국내 제약사들이 쉬운 방식인 그 길을 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내 우량 제약사들도 일부는 개량신약보다 더 낮은 단계인 단순 복제약품을 만드는 제약사로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국내 제약산업의 중장기 경쟁력은 더 약화되는 셈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미국 제약사와 경쟁을 시켜 국내 제약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정부의 생각은 연구개발비 등의 조건에서 미국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국내 제약사들한테는 그냥 도산하라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우 실장은 “사람의 생명이 우선돼야 할 분야에 특허 등 경제 논리를 먼저 들이대면 약이 있더라도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더 궁지로 몰아세울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피해액 도대체 얼마?5년간 최대 규모는복지부 “5007억” 제약업계 “2조4213억”시민단체 “5조 이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뒤 의약품 분야 피해액을 두고 정부, 제약회사, 시민단체 사이에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협상 타결 뒤 피해액을 ‘5년 동안 2877억~5007억원’으로 추계했다. 이는 애초 지난해 복지부가 예측했던 ‘5년 동안 6천억~1조원’보다 크게 준 것이다. 반면에 제약업계는 앞으로 5년간 최소 8873억에서 최대 2조4213억이 될 것으로 내다봐, 정부 추계치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에서는 1년에 최소 1조원 정도의 피해를 예상했다.
유시민 복지부 장관은 ‘한-미 에프티에이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쪽에 피해 산출에 대해 공개 토론회를 하자고 제안해 놓은 상태다. 시민단체는 협상문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조건으로 이에 응한다고 밝혀, 앞으로 피해액 추산 규모의 차이는 계속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피해액 추계가 각기 다른 것은 협상 내용에 대한 해석 차이에서 비롯됐다.
먼저 복지부은 미국 쪽의 특허 관련 요구를 들어주기는 했지만, 실제 특허 연장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경택 복지부 한-미에프티에이 협상팀장은 “신약 허가기간 연장의 경우 특허 심사 기간이 3년을 넘기는 경우 초과분 만큼 연장해 주는 것인데, 현재 심사기간이 평균 19.7개월인 만큼 에프티에이 시행 이후 특허기간이 지금보다 더 늘어난다는 시민단체 쪽 주장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문의약품 대중광고 허용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특허와 허가 연계의 피해액도 과장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특허와 허가 연계로 특허 기간이 연장되는 효과에 대한 추계나 자료독점권 등으로 개량신약 등의 출시 연장 등의 효과를 복지부가 과소 추계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의약품 특허와 품목허가가 연계된 소송의 경우 미국에서도 1심 재판에만 약 25개월이 걸리는데 정부는 4~10개월로 봐 피해를 과소추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국제약협회의 자료를 보면 자료독점권에 따라 개량신약의 발매가 늦춰져 한해 2545억의 피해가 날 것으로 예측됐다”며 “자료독점권이 애초 우리나라 제도에 있다는 점을 들어 정부의 추계에는 아예 뺐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호 한국제약협회 국제협력팀장은 “제약협회도 피해액 규모를 추산해 보기는 했지만, 협정문이 완전 공개된다 해도 피해액 추계는 입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국내 제약산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악화와 국민들의 의료비 증가로 이어진다. 강주성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약효는 거의 같으면서 값이 더 싼 개량신약 등의 출시가 늦어지면, 환자들은 비싼 다국적 제약사 약을 먹을 수 밖에 없다”며 “이는 환자들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고, 저소득층의 경우 약값 부담으로 치료 중단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양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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