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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여행·여가

당장 여행 갈 수 없다면 이렇게라도

등록 :2020-09-18 20:55수정 :2020-09-19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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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신지민의 찌질한 와인
27. 방구석 와인 여행
구글어스를 통해 찾아본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 토레스 와이너리.
구글어스를 통해 찾아본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 토레스 와이너리.

작년 이맘때, 나는 스페인에 있었다. 여행은커녕 모임이나 외출도 자제하고 있는 요즘은 방구석에 있을 뿐이다. 방구석에서 와인을 마시며 그저 지난 여행을 추억한다. 마드리드에 도착한 첫날 밤, 판 콘 토마테(토마토를 바게트 표면에 갈아 올리고 올리브오일을 뿌려 먹는 것)에 하몬(jamon)을 올려 먹었고, 그다음 날 아침엔 추로스와 오렌지주스를 먹었다. 세비야에서는 파에야와 대구 요리, 그라나다에선 맛조개, 문어와 새우 요리, 바르셀로나의 한 시장에선 손바닥만한 굴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음식을 먹었지만 유독 이 여행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매 순간 와인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이탈리아와 함께 세계 3대 와인 생산지인 스페인엔 맛있는 와인이 넘쳐났다.

언제 다시 여행을 갈 수 있을지, 기약도 없으니 집에서라도 그때의 그 맛을 추억하며 방구석 와인 여행을 떠날 수밖에. 스페인에서 가장 흔히 먹을 수 있는 와인 안주는 하몬이었다. 하몬 그 자체로 먹기도 하고, 빵에 올려 먹기도 하고, 각종 요리에 곁들이기도 한다. 나는 최근 마드리드에서 먹은 그 브랜드의 하몬을 파는 곳을 온라인으로 찾아내 주문했다. 설렘이 가득한 여행지에서의 첫날 밤 먹었던 그 맛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꽤 맛있었다. 하몬 한 점에 마요르 광장, 또 한 점에 소로야 미술관을 떠올리며 이야기할 거리가 넘쳐났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와인만 빈티지가 있는 건 아니다. 스페인에서는 생산연도에 따라 비교할 수 있는 하몬 메뉴도 있었다. 방구석에서 빈티지 비교를 할 순 없지만 하몬의 등급에 따른 비교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몬은 세라노, 세보, 세보 데 캄포, 이베리코 베요타, 베요타 100% 등 등급별 차이가 있는데, 이 등급은 사료를 먹여 키우는지, 도토리를 먹여 키우는지, 방목을 해서 키우는지, 순종인지 혼합종인지에 따라 나뉜다.(등급이 높아질수록 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하몬 초심자는 낮은 등급부터 맛보길 권한다) ‘등급이 높으면 맛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만 해왔던 나는 이번 기회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각 등급의 하몬을 주문한 뒤, 등급을 가리고 번호를 매겼다. 그리고 와인과 함께 맛을 보았다. 세보 데 캄포와 베요타 100%가 가장 와인에 잘 어울렸는데, 가격까지 생각한다면 더 저렴한 세보 데 캄포가 좋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먹었던 음식을 먹어봐도, 블라인드 테스트까지 하며 놀아봐도, 아름다운 풍경에 내가 직접 들어가 있는 그 만족감은 느낄 수 없었다. 구글어스를 켰다. 세비야 스페인 광장, 그라나다 알람브라 궁전, 바르셀로나 성가족 대성당을 차례로 여행했다. 그러나 나의 최종 목적지는 지난 여행 때 방문한, 바르셀로나 근교에 위치한 토레스 와이너리였다. 포도밭에서 영글어가는 포도가 얼마나 맛있던지, 시음했던 와인과 치즈는 또 얼마나 맛있던지…. 영어로 하는 설명이 다 들리는 기적이 일어난 곳이었으니까! 3D 지도를 보며 넓게 펼쳐진 포도밭을 보고 그 포도 맛을 떠올렸고, 이 건물에서 시음을 했었구나 떠올려보며 와이너리 방문을 복기했다.

내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동안 가본 여행지를 구글어스로 찾아보고, 당시의 느낌과 추억을 떠올리기, 그때 먹었던 음식과 와인을 그리워하기. 그리고 하나 더. 가보고 싶은 와이너리 찾아보기. 방구석에선 아무 곳에도 못 가지만, 또 어디든 갈 수도 있으니까.

<한겨레21>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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