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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일반

1600년 전 신라 무사 태웠던 전투마 갑옷 복원

등록 :2020-04-07 09:00수정 :2020-04-08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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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경주 쪽샘 목곽무덤에서 발굴한 말 갑옷
국립경주연구소 10년 만에 재현품 완성 보고서
당대 동아시아 말 갑옷 중 가장 정교하고 온전
11년 전 쪽샘 목곽 무덤에서 나온 5세기 신라 무사의 말 갑옷 재현품. 10년간의 고증 과정을 거쳐 나온 것으로, 736개의 찰갑조각으로 이뤄졌다.
11년 전 쪽샘 목곽 무덤에서 나온 5세기 신라 무사의 말 갑옷 재현품. 10년간의 고증 과정을 거쳐 나온 것으로, 736개의 찰갑조각으로 이뤄졌다.

“5세기 신라 장수의 찰갑옷 밑에 말 갑옷이 보입니다.”

2009년 4월24일 지병목 당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급보를 받고 흥분감에 휩싸였다. 경주 쪽샘 지구에 있는 신라 귀족 무덤 떼에서 길이 4m가량의 작은 목곽 무덤(C-10호분)을 발굴 중이던 연구소 조사팀 보고는 놀랄만했다. 무덤 바닥에서 1600여 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신라 장수의 비늘갑옷(수많은 비늘 조각들로 이뤄진 갑옷)과 그가 탔던 말에 씌운 찰갑 꾸러미를 잇달아 찾아낸 것이다. 말 갑옷은 목과 가슴, 몸통, 엉덩이 부분이 차례대로 바닥에 깔렸고, 그 위에 무덤 주인공인 신라 장수의 가슴과 등, 허벅지를 가렸을 찰갑을 얹었다. 수 백 조각 넘는 비늘을 이어 만든 사람과 말의 갑옷을 포개어 펼쳐놓고 그 위에 장수의 주검을 안치했는데, 세월이 흘러 주검은 삭아 없어지고 유품인 갑옷만 남은 것이다. 주검이 있는 주곽 구덩이 옆 작은 부장품 구덩이(부곽)에서는 말 머리에 씌운 투구인 마주를 비롯해 재갈, 안장, 등자(발걸이) 같은 말갖춤 유물들이 쏟아졌다. 쌍영총, 삼실총 같은 고구려 고분벽화나 기마 인물모양 뿔잔 등의 가야신라 토기 등으로만 얼추 짐작했던 삼국시대 중무장한 기마장수의 실체가 처음 드러난 것이다.

2009년 조사 중 발견된 쪽샘 C10호 고분의 마갑 출토 모습. 아랫부분 말의 목 부분 가리개이고 뒤쪽의 네모진 부분이 몸통이다. 펼쳐진 말 갑옷 위에 장수의 찰갑이 얹혀진 채로 발견됐다.
2009년 조사 중 발견된 쪽샘 C10호 고분의 마갑 출토 모습. 아랫부분 말의 목 부분 가리개이고 뒤쪽의 네모진 부분이 몸통이다. 펼쳐진 말 갑옷 위에 장수의 찰갑이 얹혀진 채로 발견됐다.

펼쳐진 말 갑옷은 길이 약 3m에 너비 90㎝, 무게 36㎏에 달했다. 말의 머리를 가린 마주를 비롯해 말목과 말등, 말다리 등을 무려 700조각 넘는 철편으로 감싼 얼개였다. 당대 국내 유적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온전한 형태와 치밀한 연결 구조를 갖고 있었다. 국내에서 고대 말 갑옷은 1992년 경남 함안 아파트건설 공사장에서 우연히 발견된 가야시대 마갑총 출토품이 전모를 보여주는 유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공사 중 일부가 파손됐다는 한계가 있었고, 다른 말 갑옷 출토품은 일부 부위의 찰갑 조각밖에는 없어 전모를 추정할 수 있는 여지가 부족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주와 마갑이 무사의 갑옷, 말갖춤과 함께 모두 포함된 종합 유물세트가 나왔으니 동아시아권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대발견이었다.

큰 성과였던 만큼 연구소는 발견 뒤 유적과 유물들의 보존처리와 후속 분석 과정에 공을 들였다. 우선 유적이 묻힌 목곽묘의 토층 자체를 지하 수 미터까지 직접 파서 통째로 옮겼고, 그 뒤 불순물을 일일이 제거하고 갑옷에 엉긴 흙과 녹을 떼어내는 보존처리와 심화 분석 과정이 10년간 이어졌다.

말 갑옷 묻힌 무덤 지층을 통째로 떠서 옮기는 작업 광경.
말 갑옷 묻힌 무덤 지층을 통째로 떠서 옮기는 작업 광경.

마침내 올해 대망의 결실이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쪽색 목곽묘에서 나온 말 갑옷과 마주의 보존처리를 지난해 끝내고 당시 상태대로 갑옷을 고증해 복원한 재현품이 최근 완성됐다고 7일 밝혔다. 아울러 유적의 발견과 보존처리, 복원, 세부 연구 과정의 대장정을 정리한 조사보고서도 함께 공개했다. 파괴되지 않은 온전한 형태로는 역대 최초로 확인된 1600년전 고신라 무사의 전투마 말 갑옷과 말머리 가리개(마주)가 당대 모습을 생생하게 살린 복원 재현품으로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연구소 쪽은 실제 제주 조랑말(한라 말) 등에 플라스틱 갑옷 복제품을 입히는 사전 장착 실험을 통해 어떻게 비늘 조각들을 연결해야 말의 움직임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지를 계측했고, 재현품의 정밀한 착장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월성 해자 유적에서 출토된 말뼈까지 분석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1600여 년 전 신라 왕국의 철갑 전사들이 한반도 남부에서 백제, 가야, 왜구의 군대와 싸울 때 탔던 말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보고서에 실린 지난 10년간 연구 분석 결과를 보면, 신라 전투마는 오늘날 제주 조랑말보다 조금 큰 크기의 말이었다. 경주 월성 해자 출토 고신라 말뼈들의 계측치를 기준으로 추정한 신라 전투마의 어깨높이가 120~136cm 범위로 나타나 현대 제주말(115~123cm)보다 수치가 더 높게 나온데 따른 것이다. 전투마는 머리에 챙과 얼굴·볼을 가린 철판들이 결합된 갑주를 둘렀으며, 목과 등, 엉덩이에는 736개나 되는 철편 비늘을 이어붙인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볐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함안 마갑총의 가야시대 말 갑옷에는 없는 엉덩이 부분의 ‘고갑’까지 갖춘 것으로 확인돼 사실상 말의 몸통 전체를 촘촘하게 가린 채 전투에 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소는 보존과학 연구를 토대로 말 갑옷 표면에 붙어있는 견‧마 등 고대 직물들의 종류를 파악했고, 갑옷의 목질 흔적을 토대로 출토 무덤의 목곽에 사용된 목재가 소나무일 가능성도 확인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기마인물형토기뿔잔(국보). 찰갑을 입은 말 위에 탄 무사의 모습을 빚어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된 기마인물형토기뿔잔(국보). 찰갑을 입은 말 위에 탄 무사의 모습을 빚어냈다.

만주 통구 12호 무덤 벽화에 나온 고구려 중장기병의 전투마 그림. 말 갑옷을 입은 모습이다.
만주 통구 12호 무덤 벽화에 나온 고구려 중장기병의 전투마 그림. 말 갑옷을 입은 모습이다.

우리는 흔히 말 갑옷 하면 중세 유럽 기사들이 탄 전투마 갑옷의 위용을 떠올리곤 한다. 주인과 함께 번쩍거리는 철판 갑옷을 두른 육중한 말들의 모습인데, 신라인의 전투마는 이와 달리 다소 키가 작고 다부진 이미지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몸에는 번쩍거리는 철판 갑옷이 아니라 몸을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유연한 찰갑 갑옷을 입었던 셈이다. 말에 찰갑으로 된 쇠갑옷을 입힌 것은 기원후 이란 지역에서 번성했던 파르티아 제국의 갑옷 양식인 카타플락타이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스타일이 중국 남북조시대에 중원에 들어온 뒤 한반도의 삼국에도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이종훈 국립경주연구소장은 “일본과 중국에도 말 갑옷의 발굴 사례와 연구성과는 종종 보고되지만, 쪽샘 무덤의 말 갑옷처럼 실제 착장실험까지 하면서 형태와 용도를 고증해 재현품을 만든 건 동아시아 마갑연구에 획을 긋는 성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 쪽은 올해 상반기 중에 국립경주박물관과 함께 말 갑옷 재현품에 대한 전시를 열 계획이다. 보고서 내용은 연구소 누리집(nrich.go.kr/gyeongju)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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