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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책&생각

물 수 없어도 짖어야 한다

등록 :2019-08-09 06:01수정 :2019-08-09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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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윤치호 지음, 김상태 편역/산처럼(2013)

좌옹 윤치호는 말년에 되돌릴 수 없는 친일 행각을 벌이기도 했지만, 조선인 최초의 미국남감리교회 신자였던 만큼 삶에 대한 태도는 청교도적인 성실함으로 일관했다. 그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고, 사치스럽고, 노동을 경시하는 인간에게는 상당한 ‘적개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1883년부터 1943년까지 장장 60년에 걸쳐 매일같이 일기를 쓸 만큼 성실했다. 그러나 윤치호의 일기는 초기에 한문으로 쓴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영어로 집필된데다가 친일파란 이유로 오랫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김상태 선생이 편역한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는 1919년부터 1943년까지의 일기 중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한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윤치호에 대한 내 생각은 “일기를 영문으로 쓴 걸 보면 뼛속까지 친미파였구먼. 그런데 어느 순간 친일파로 돌아선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편역자의 선입견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책을 읽은 뒤로는 그 시대에 대해 너무 단면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새삼스러운 반성이 들었다. 서재필, 유길준과 더불어 조선의 제1세대 미국 유학생이었던 윤치호는 일본, 중국, 미국 등 오늘날 우리를 긴밀하게 둘러싼 3개국에서 모두 11년 동안 공부했다. 신학, 인문학 등 여러 학문을 두루 익힌 지식인이었으며 외국어 특히 영어에 능통했다. 그는 일본과 미국에서 생활하며 견문을 넓혔고, 근대를 직접 체험했다.

윤치호.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윤치호.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한성부 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윤치호는 서구 문명이 쌓아올린 과학기술은 물론 자본주의 성장과 맞물린 세계정세의 흐름에 정통했다. 지식뿐만 아니라 명망과 재력을 겸비한 조선 최고의 원로 중 한 사람이었다. 이런 위치 때문에 그는 일제와 민족주의 진영 양편에서 영입 대상이 되었고, 그의 선택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과연 윤치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일제강점기 내내 모든 형태의 독립운동에 반대했다. 그는 3·1만세운동 직전 파리강화회의에 조선 대표로 참석해달라는 민족대표 진영의 요청을 거부했다. 심지어 3·1운동이 일어나자 당시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3·1운동에 반대하여 지탄을 받기도 했다.

어째서 그랬을까? 이 책의 제목이자 일기 전반에 걸쳐 반복되는 주장대로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는 것이었다. 그는 3·1운동이 한창이던 3월29일의 일기에 “애국심이야말로 인간의 최고 덕목”이라고 가르치는 일본이 조선인의 애국심은 중범죄로 처벌하고, “미국의 인종차별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반대”하는 일본이 “조선인에게는 매사에 민족차별을 실행”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결국 힘이 정의”라고 결론지었다. 파리강화회의 참가를 부탁하는 최남선의 청을 거절하며 “싸울 수 없다면, 독립을 외쳐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우리가 강해지는 법을 모르는 이상, 약자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 일기에 썼다.

윤치호는 민족자결주의의 영향을 받아 조선은 물론 몽골, 이집트 등지에서 독립을 외치는 민족해방운동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인도 시인 타고르가 펀자브 지방에서 일어난 영국의 만행에 항의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도 알 만큼 세계정세에 밝았다. 하지만 그는 “울먹여봐도, 좋은 시를 써봐도 모두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해방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해방이 도둑처럼 왔다고 하지만, 일제강점기 동안 국내외에서 투쟁하고 싸운 이들이 없었다면 광복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목표를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울부짖는 것조차 포기한다면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는 패배할 수도 있고, 정부는 타협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민중은 살아 있는 한 패배할 수도, 항복할 수도 없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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