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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24 19:32 수정 : 2009.07.24 19:33

윤건차 교수

미국의 냉전 교두보로 잔존한 일본 천황제
이승만과 친일파의 권력장악·좌파분쇄 등
시대 모순과 ‘맨몸 격투’ 체험기·시집에 담아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
윤건차 지음·박진우 외 옮김/창비·3만원

〈겨울숲〉
윤건차 지음·김응교 옮김/화남·7000원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를 낳은 시대를 직시하고 이와 격투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의미있는 흔적을 남겨가는 것이 나의 책무가 아닐까 한다.”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한일 근대사상의 교착>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린 윤건차 일본 가나가와대학 교수가 서울에서 2권의 책을 동시에 출간했다. 지난해 이와나미 출판사에서 나온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와 이번에 한국·일본에서 동시출간된 그의 첫 시집 <겨울숲>이다. 문학평론가 임헌영 교수는 <겨울숲> 해설 제목을 ‘한 디아스포라 지식인의 자아 찾기’라 붙였는데, 이는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겨울숲〉
그의 자아 찾기는 시작이 늦었고 굼떠 보였지만 드라마틱했고 철저했다. 우리는 엄청난 자료들을 섭렵한 윤 교수의 방대한 탐구를 통해 그 출발점인 자이니치로 우리 자신의 관찰 시점을 이동함으로써 지적 충격과 함께 일본, 자이니치까지 아우르는 놀라운 시야 확대를 체험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아직도 사고 정지의 미해결 상태로 남은 ‘천황제와 조선문제’, ‘남북통일국가 수립’이라는 한·일의 탈식민지화 과제 해결을 위한 실천 문제와 직결돼 있다.

그가 말하는 일본은 우리가 아는 일본과는 아주 다를 수 있다. 고교 때 출석부에 자신의 이름이 본명으로 기재돼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라 “일본식 이름으로 고쳐 달라고 필사적으로 애원했던” 그가 교토대 졸업 뒤 취직도 안 되고 “결국 갈 곳이 없어서 갔던” 도쿄대 대학원에서 38살에야 박사학위를 받고 자이니치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한 뒤 다시 필사적으로 매달린 것은 근대 일본, 특히 패전 뒤의 일본과 자이니치 공부. 지금은 한국사회 연구에 더 골몰하고 있다는 그가 한국 지식인들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7년 6월항쟁 때 유럽에서 ‘파리의 택시운전사’(홍세화)와 그 친구들을 만나고부터. 그 무렵부터 여권문제도 풀려 자주 한국을 출입하게 됐고 한국을 통해 세계를 다시 보게 됐다.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의 원제는 <사상체험의 교착>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남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은이 자신이 일본과 자이니치, 한국이라는 각기 다른 사상적 토양을 오간 사상체험 편력기다. “1945년 8월의 패전/해방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일본과 한국(남한)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걸어온 노정을 주로 사상, 특히 역사에 각인된 사상체험으로써 파악”하되, 그것을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의 소산이며 일본의 가혹한 이민족 지배를 가장 예리한 형태로 체현한 역사의 살아 있는 증인”이자 “근대 일본의 모순을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존재”인 자이니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이 책이다.

윤 교수가 말하는 ‘사상’이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필사적으로 계속해서 캐묻는 것”이다. 그리고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가장 큰 모순·과제는 무엇인가를 추궁하는 일”이다.

윤 교수는 일본인의 아이덴티티를 구성하는 세개의 기둥을 ‘서구 숭배사상’, ‘천황제 이데올로기’, 그리고 ‘아시아 멸시관’으로 본다. 서구 숭배와 아시아 멸시는 동전의 양면이며 그 내실은 이질적인 타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장치가 바로 “일본의 고유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내셔널리즘의 중핵을 형성하고, 대내외적으로 억압적·배타적 기능을 담당”해온 천황제다. 그 메커니즘 속에서 일본인들에게 가장 어둡고 부정적인 존재로 각인된 것이 조선과 조선인이다. 따라서 천황제와 조선 문제는 표리관계에 있고 이는 근대 일본의 사상적 핵심줄기를 이룬다.


윤건차 교수
일본은 패전 뒤 천황제를 청산하고 공화제 민주주의를 수립했어야 했다. 하지만 어정쩡한 항복 절차를 통해 일제 지배세력과 결탁한 점령자 미국은 냉전 교두보로서의 일본 통치 편의를 위해 천황제를 존속시켰고, 천황제에 대해 가장 완강하게 반대한 공산당과 재일조선인들을 힘으로 누르고 기시 노부스케를 비롯한 전전 지배세력을 부활시켰다. 이러한 일본의 이른바 ‘역류’정책은 역시 미군이 점령했던 당시의 한반도 남쪽에서 일어난 좌파 분쇄, 대구 10월항쟁,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 유혈진압, 이승만 및 친일파의 권력 장악과 정확하게 대응한다. 자이니치의 시각으로 일본, 한국에서 진행된 사태를 동시에 파고드는 이런 광역 교차조감이야말로 이 책의 최대 장점으로 꼽을 수 있다. 3배의 시야 확대 효과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의 사상적 최대 과제는 남북통일국가 수립. 이 불발된 과제 역시 결국 분단을 초래한 일본의 식민 지배라는 원죄와 미-일동맹의 전략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나 전후 일본 지식인들은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전후 ‘민주화’에 앞장선 난바라 시게루, 심지어 ‘전후 민주주의의 리더요 승리자’라는 마루야마 마사오조차 조선과 조선인 문제엔 철저히 눈감았다. 자이니치 문제에 동정적이었던 다케우치 요시미도 중국 침략에 대해서만 얘기했을 뿐 자이니치와 조선 문제는 피해갔다. 그들의 자기중심적 ‘대국주의’는 만주 침략부터 패전까지의 이른바 ‘15년 전쟁’을 문제삼지만 그 이전 청일전쟁 전후부터 조선을 무자비하게 유린한 과거는 무시해버리는 데서도 드러난다. 윤 교수는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와다 하루키 교수마저 천황제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족과 국민국가를 ‘허구’로 간단하게 규정하면서 비폭력, 관용, 공생, 화해를 강조하는 일본 지식인들한테서 “식민지와 민족문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려는 자세”를 엿보고 “가해 책임을 보류하는 공동환상”을 발견한다.

한·일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한때 행복한 연대를 달성했다. 그러나 그 뒤 역사교과서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국 뉴라이트의 대두와 일본 보수세력의 조응 등을 통해 재확인됐듯이, “일본이 과거 조선 침략·식민지 지배·남북분단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어떤 사죄나 배상도 하지 않았고 과거 청산도 거의 안 된 상태”는 지금도 여전하고 변할 전망도 없다. 윤 교수는 <화해를 위해서>라는 책으로 일본 보수 지식인들의 찬사를 받은 박유하씨의 주장에 대해 “논리 전개는 조잡하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해·곡해가 많다”며 남북분단과 그것이 가져다준 고통에 대한 공감이 전무한 ‘사이비 우파 심정주의’라고 비판했다. 그는 <아사히신문> 등이 환호한 박씨의 주장이 “사죄 거부야말로 화해의 첫발”이라 주장하는 우익 파시스트 사토 가쓰미의 주장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며 섣부른 화해론을 경계했다. 그가 생각하는 궁극적 해결책은 일본에 반성과 사죄를 계속 요구하되 그것이 성취될 것이라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올바른 길을 찾아 남북이 평화적 통일을 이룬 뒤 잘 사는 것이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지은이와 함께 | 윤건차 교수

“‘한반도를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으로’ 노무현 구상 옳았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금의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우선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현실조건, 현실의 모순과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 윤건차(65) 교수가 한반도 남북과 일본 3개 나라, 그리고 자이니치의 역사적 사상체험을 그토록 천착해온 이유다.

그는 일본의 사상적 핵심 문제인 천황제와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서로 연동돼 있다며 “남북통일이 일본의 천황제 폐지보다 더 빠를 것”이라고 예견했다. “남북통일은 정치, 물질적 문제이지만 천황제는 마음의 문제다. 일본인들 마음속에 내면화한 천황제 문제 해소는 자체적으론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그는 해고가 줄을 잇는 신자유주의 모순 아래서도 제대로 시위조차 하지 못하는 무저항의 일본 사회보다는 시끄러운 한국 사회가 “훨씬 더 건강하다”고도 했다. 그는 또 한반도를 동아시아 공동체의 핵으로 세우려 했던 노무현 정부의 구상은 옳았다며, 남북한의 변화가 일본의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한국)에선 한반도 문제만 생각했으면 좋겠다. 일본이나 미국, 중국으로 눈을 돌리지 말고 한반도를 좋은 나라로 만드는 일에 우선 전념했으면 좋겠다.” 남북끼리 먼저 잘해야 다른 문제들도 풀린다는 얘기다. “재일조선인의 인권 옹호와 남북의 융화·남북통일을 돕고 한반도를 하나로 생각하는 사고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명박 정권 들어 ‘조선적’ 자이니치에 대한 규제가 너무 강화됐다며 걱정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조선적 자이니치들이 1만명 이상 한국을 왕래했다. 거의 규제가 없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뀐 뒤 규제가 강화되면서 조선적 자이니치 입국자가 거의 없어졌다.”

윤 교수는 민주당으로의 일본 정권교체를 거의 확정적이라 보면서, “그래도 대북정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민당이 처지가 궁색해질 때마다 북을 이용해왔기 때문에 일본 국민들의 대북 인식은 매우 나빠져 있다. 민주당도 그런 ‘대북 파시즘’을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진보세력이 집권하고 있다면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뒤 일본의 대북정책을 어느 정도 변화시킬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불가능해 보인다며, 지지율을 높일 필요에 쫓기면 대북정책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강경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한도 자세를 바꿔야 한다면서 “북한도 나쁘다. 너무한다”고 했다.

윤 교수는 자신의 첫 시집 <겨울숲>을 “먼 여행 떠난 아내 윤가자를 그리워하며” 펴냈다. 5년이나 걸린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의 집필 강행군 속에 평생의 반려자가 폐암으로 지난해 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통한의 극한이며, 인생 최대의 실패였다.”

그는 잡지 <정황>(조쿄)의 지난해 12월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문·사회과학에서 쓸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인생의 만년을 맞이하는 가운데 일상의 슬픔, 추억을 문장화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오히려 시대와 사상, 다양한 생각 등을 응축해서 표현할 수 있는 시가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

“일본어에 저항할 때/ 거기에 조선말이 있다/ 익숙해진 일본어 세계를 가슴이 답답하다고 생각할 때/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듯이 조선말로 향한다”(<우리말>)

우리말을 곧잘 하는 그는 아직 우리말 글은 마음먹은 대로 쓰지 못한다. “정년이 5년 남았는데, 그때까지 자이니치 정신사에 대해 쓰는 걸 마지막 일로 생각한다”고 했다. 자이니치 1세는 이미 쓸 사람이 없고, 3세는 잘 모르니 2세인 자신이 할 수밖에 없는데, 2세로서도 거의 마지막 작업이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오는 9월부터 숙명여대에서 한 학기 동안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를 교재 삼아 일본, 한-일관계에 대해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강의할 예정이다.

한승동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