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로그인
컨텐츠

등록 : 2008.03.14 20:15 수정 : 2008.03.16 15:04

배 밑바닥 선창에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짐처럼 빈틈없이 눕히고 남은 공간은 앉혀서 꽉꽉 채운 채 대서양을 건너는 노예선. 노예들은 6명씩 긴 체인으로 묶이고 다시 2명씩 발에 족쇄를 찼다. 서울대학교출판부 제공.

〈대항해 시대〉
주경철 지음/서울대학교출판부·2만3000원

‘유럽 무역사’ 독보적 연구가 주경철 교수
바다 통한 세계구조의 일대전환 분석
“서구 지배는 우월함 아닌 공격성 때문”

세계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는 중국 인구 폭발에는 구황작물 고구마 도입이 중대한 구실을 했다. “광둥 동부 산지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고구마를 재배한다”는 1572년 기록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적어도 16세기 후반엔 중국에서 광범위하게 재배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고구마는 옥수수·감자 등과 더불어 아메리카 대륙이 원산지다.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 유럽인들이 필리핀에 가져갔고 그것이 아시아 각지에 다시 퍼졌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에선 고구마를 ‘사쓰마이모’ 또는 ‘가라이모’라 하는데, 대마도(쓰시마)에선 ‘고코이모’라고 한다. 고코는 ‘효행’(孝行)이라는 한자어의 일본식 읽기다. 따라서 고코이모는 흉년에 부모를 먹여 살린 효도 구근이라는 의미다. 우리말 고구마는 그 고코이모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의 〈대항해 시대〉(서울대출판부 펴냄)는 이 고구마의 동아시아 전래를 서세동점의 충격이 몰고 온 ‘문화의 교류’(제9장)의 한 사례로 다루면서 거기서 희망을 보려 한다. “이처럼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역사에서 새삼 희망을 찾을 수는 없을까?”

〈대항해 시대〉는 그러니까 실은 초점을 그 앞부분의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역사”에 맞추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제1부 ‘근대 세계구조의 형성’에 이은 제2부 ‘폭력의 세계화’가 생생하게 보여주는 그 구체적인 역사들은 고구마 전래가 사소한 에피소드로 여겨질 만큼 충격적이다. “근대의 세계화 과정은 폭력의 세계화”였으며 그 주역인 유럽의 해상 팽창은 “대부분 전쟁과 폭력, 충돌과 갈등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16세기 유럽무역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1년 동안 자료를 뒤진, 이 분야 독보적인 주 교수의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도 이 부분이다.



〈대항해 시대〉
비극은 어디서 비롯됐나?

동아시아에 고구마가 전래되던 시기 세계구조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정화의 대원정이 말해주듯 해상 강국이었던 중국은 그 무렵 북방 이민족의 위협과 농민봉기로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기는 등 나라의 무게를 북쪽으로 이동시키면서 바다를 버린다. 강력한 해금(海禁)정책을 내건 중국의 ‘해상 후퇴’가 시작될 무렵 유럽에서는 콜럼버스 이후의 ‘해상 팽창’이 본격화했고, “이것이야말로 근대사의 발전에서 결정적인 구조적 전환의 계기”가 됐다고 주 교수는 지적한다. 바다, 해양 세계의 발전을 통해 근대 세계사를 재해석한다는 책의 취지 그대로, 그리하여 “15세기 이후 전세계의 국제관계, 사회·경제활동으로부터 우리의 내면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다시 짜여졌다”고 본다.

그러나 그때까지 세계의 무게중심은 아시아에 있었다. 18세기까지도 유럽은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심지어 19세기 이후 약 200년간 유럽이 우위를 점한 것은 긴 인류의 역사로 보면 예외적인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그래서 20세기 말 거대 중국의 등장을 그 장기적 패턴이 복구되는 과정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유럽이 19~20세기 이후 결국 제국주의적 지배자가 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우리는 세계사를 유럽이 주도하고 다른 지역들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서구 중심 역사서술의 대상이었을 뿐이라는 시각에 익숙해져 있다. “유럽이 세계적인 헤게모니를 장악한 이 시대의 현상을 과거에 그대로 투사하여” 근대 초 이전까지의 모든 역사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논증한다. 진실은 항상 양극단이 아닌 중간 어디에 있을 것이다. 예컨대 1571년의 레판토 해전은 유럽 쪽 일반 시각과는 달리 동서 우열을 가린 결정판이 아니었다. 같은 맥락에서 비유럽 지역이 속수무책 일방적으로 당한 피해자일 뿐이라는 시각도 거부한다. 그것은 결국 유럽중심주의 역사관에 복무할 뿐이기 때문이다. 서유럽의 충격은 비서유럽 지역의 종교, 생태환경, 언어, 음식, 과학기술도 변화시켰다. 하지만 현재를 낳은 그런 변화는 피해자들의 주체적 대응 없인 불가능했다. 주 교수는 아마 거기서 희망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서유럽 문명이 지배력을 장악한 것은 그것이 다른 문명에 비해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공할 정도로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제3부 ‘세계화·지역화된 문화’는 바로 그런 문제를 다룬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관련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