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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1.25 19:33 수정 : 2007.01.25 19:33

<한반도경제론-새로운 발전모델을 찾아서>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지음. 창비 펴냄. 2만원

이대로 종속적 기업전체주의국가로 전락하는가
공공성 작동하는 ‘신진보주의 발전모델’고민
역동적 갈등 조정하는 정치 처방으로 정책정당 필요조건
‘민족경제’ ‘지역경제’ 구상은 분단 극복으로까지 인식 확장

한국의 이른바 ‘진보개혁세력’은 실패했나. 한국 민주화의 분수령이 된 1987년 이후 정치적으로 부분적 헤게모니를 관철해온 그들은 지금 이념과 능력을 의심받고 있으며 도덕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경제적 발전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들은 87년체제가 얻어낸 협소한 민주주의 틀 안에서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냉전의 해체, 지구화, 중국의 변화, 기술혁신, 인구구조 변화 등 세계사적 변화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기존 보수주의 담론을 극복하는 새로운 담론 창출에 실패했다. 지금 한국사회 담론과 제도적 규칙에서 헤게모니를 쥔 쪽은 보수주의적 정치담론과 지배질서다. 박정희식 발전주의모델 온존 속에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가 결합돼 미국중심주의, 시장중심주의, 성장주의, 경제주의, 기업주의, 갈등없는 통합, 엘리뜨주의 담론이 지배하는 질서가 성립됐다.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추동했던 ‘민족주의와 계급주의’로는 대응방안을 찾을 수 없었고, 민주개혁정부는 단순히 정책의 구상과 집행에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런 보수주의적 담론구조 극복에 실패했다.

보수주의적 담론과 지배질서는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은폐하고 배제하며 신자유주의적 욕망구조와 미국적 힘의 질서에 순응하는 개별화된 주체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공적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부는 오히려 그런 추세를 부추기고 있다. 세상이 온전할 리 없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는 민주공화국의 공적 성격은 회복되지 못하고 소수 재벌 및 외국기업들의 헤게모니에 종속된 기업전체주의국가로 전락할 위험이 매우 크다. 한국사회는 지금 이런 보수주의적 담론이 지향하는 종속적 기업전체주의국가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분단극복과 동아시아 평화공동체에 기여하는 민주공화국의 헌법적 정체성을 유지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시장·경쟁·성장 긍정하고 출발

이런 자못 비장한 시대인식을 피력한 주체는 ‘한반도사회경제연구회’.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부른 동아시아 통화(외환)위기 뒤 개방화에 대한 대안연구를 위해 모인 ‘동아시아-한반도경제연구회’를 확대 정비한 이 모임은 2005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현실에 부합하는 국가전략 비전에 대한 다양한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지 않고는 정부의 실패, 국가의 실패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런 문제의식속에 소속 회원 19명이 2006년 상반기부터 토론과 심포지엄을 거듭한 끝에 <한반도경제론>(창비)이란 책으로 묶어냈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이들이 내놓은 것은 ‘신진보주의 발전모델’이다. 이 대안적 담론의 핵심정신은 “‘역동적으로 만들어가는 공공성(dynamic republic)’이 작동되는 사회경제적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공공성, 공적 질서란 다수 시민의 공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인데, “과거 낡은 진보의 관점처럼 정체된 균형이나 통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갈등이나 혁심적 경쟁 속에서 균형과 질서를 이루는” ‘민주적 발전’을 지향한다. 그 핵심개념은 연대·혁신·개방이다. ‘진보주의’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기본적으로 시장과 성장, 경쟁, 세계화를 긍정하는 바탕 위에 그로 인한 갈등을 공공성, 공익성, 덕성을 강조하고 논쟁적·토론적 민주주의를 활성화함으로써 역동적으로 승화해 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사회적 갈등을 생산적으로 조직하는 정치의 긍정적 기능을 부정하고 비용절감과 효율성의 관점에서 접근해 정치를 엘리뜨들간의 합리주의적 타협으로 축소한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치관’이며 참여정부가 바로 그 오류에 빠져 있다. 시민배심원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 국민소환제, 독일식 비례대표제 등을 도입하고 정책정당이 뿌리내리게 해야 한다는 게 필자들의 정치분야 처방이다.

남북한 경제통합의 새 이정표를 세운 개성공단. 지난해 2월 공단내의 신원 제1공장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재봉틀로 작업하고 있는 모습. 개성공단 가동은 남북경협이 단순교역과 위탁가공 중심의 초보적인 수준에서 직접투자 국면으로 전환했음을 뜻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신진보주의 담론의 연장선 위에 ‘한반도경제론’, ‘한반도경제 구상’이 서 있다. 한반도만의 구상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한계를 넘어서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방적 경제권을 형성하자는 것인데 국민경제, 민족경제, 지역경제를 포괄한다. 국민경제는 남한의 국내체제 혁신과 선진화, 민족경제는 남북한의 점진적 통합, 지역경제는 동아시아 연대와 지역혁신과 각각 조응한다. 이들은 서로 각각이면서 또한 하나로 묶여 있다. 한반도경제권의 외연은 남북한과 중국 산둥성, 동북3성, 러시아 극동, 일본의 환동해지역 등을 포괄한다. 민족만을 주체로 삼지 않는 개방형이다. 기존의 한반도경제전략들이 일국체제를 기반으로 했던 것과는 달리 처음으로 복합적 지역공동체를 상정한 시도라는 평가도 있다.

한반도경제론의 기둥은 남북한 경제통합이다. 국가발전모델, 대외전략, 남북통합, 산업·기업·금융, 사회정책, 지역발전 등 모두 6부로 구성된 이 책 제3부는 한반도 경제통합 방략들을 단계별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 방략은 북한체제 붕괴가 아닌 내부개혁, 남한과 주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한 점진적 통합, 소프트랜딩 전략이다. 그것은 곧 실현 가능한 현실적 한반도통일방안이기도 하다.

북 붕괴보다 내부개혁 이끌어야


한반도경제권이 형성되면 가장 직접적 효과는 7000만명이 넘는 인구의, 내수규모가 최소효율규모에 도달한 자립성 높은 새 경제권의 출현이 될 것이다. 남한사회의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문제를 보정하고 막대한 군사비를 생산과 복지용도로 상당부분 돌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또 국가위험도를 대폭 낮춤으로써 투자유입과 경협확대를 유발하고 한반도를 인적·물적 소통거점이 되게 만들 것이며, 주민들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것이다.

남한 반쪽만으론 ‘한반도경제’는 물론 성립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신진보주의 담론’의 만개와 ‘신진보주의적 사회’의 실현을 위한 물적 토대 구축도 남북한 통합이 선결되거나 병행되지 않고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