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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인간과동물

“비건이 붐이라는데, 우리만 안 터지는 걸까요?”

등록 :2019-12-04 13:59수정 :2019-12-0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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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⑦
‘비건먹방 양대산맥’ 초식마녀, 단지앙
유튜버 초식마녀(왼쪽)와 단지앙은 비건이다. 유튜브 채널에 비건 레시피와 먹방을 올려 ‘비건먹방 양대산맥’으로도 불린다. 지난 8월 처음 만나 ‘비건 또띠아 피자’ 먹방을 선보이는 두 사람. 유튜브 단지앙 갈무리
유튜버 초식마녀(왼쪽)와 단지앙은 비건이다. 유튜브 채널에 비건 레시피와 먹방을 올려 ‘비건먹방 양대산맥’으로도 불린다. 지난 8월 처음 만나 ‘비건 또띠아 피자’ 먹방을 선보이는 두 사람. 유튜브 단지앙 갈무리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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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는 박지혜씨와 프리랜서 장지은씨는 유튜버다. 온라인에서 박씨는 ‘초식마녀’로, 장씨는 ‘단지앙’'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유튜브 채널에서 먹방(먹는 방송)을 한다. 마라탕, 초코케이크, 라볶이, 버거, 크림 파스타, 혼술 등 메뉴가 특이할 것은 없다. 단 한 가지, 이들이 먹는 음식이 모두 비건식이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11월29일 서울 마포구 한 채식레스토랑에서 ‘비건 먹방 양대산맥’ 초식마녀와 단지앙을 만났다. 지난 8월에 처음 만났고, 이날이 다섯 번째 만남이라는 이들은 이미 친한 친구처럼 보였다. 지난 여름 단지앙의 유튜브를 처음 발견한 초식마녀는 망설이다 ‘반갑다’는 댓글을 남겼다. 처음엔 “무서운 사람일 수도 있으니” 조심스러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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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 초식마녀, ‘심야식당’ 단지앙

“비건 행사서 만났을 때 제가 막 들이대서 초식마녀님이 뒷걸음질 치면서 인사를 받았었거든요.”(웃음)

단지앙은 댓글을 보고 바로 SNS 메시지를 보내 약속을 잡았다. 초식마녀의 집에 초대받은 단지앙은 같이 비건 피자를 만들어 먹었고, 이 과정을 브이로그로 남겼다. 구독자들은 ‘드디어, 두 분이 합방을!’, ‘이 케미 무엇!’, ‘그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며 댓글로 환호했다.

11월29일 서울 마포구 한 채식레스토랑에서 애피와 만난 ‘초식마녀’ 박지혜씨와 ‘단지앙’ 장지은씨. 서로 다른 매력을 선보여온 두 사람이지만 비건이 된 계기는 비슷했다.
11월29일 서울 마포구 한 채식레스토랑에서 애피와 만난 ‘초식마녀’ 박지혜씨와 ‘단지앙’ 장지은씨. 서로 다른 매력을 선보여온 두 사람이지만 비건이 된 계기는 비슷했다.
초식마녀의 채널이 초록빛이라면 단지앙은 주황빛이다. 초식마녀가 영화 ‘리틀 포레스트’라면 단지앙은 ‘심야식당’이다. ‘초식마녀의 테이스티 비건 라이프(Tasty Vegan Life)’에서는 주로 냉장고 채소가 뚝딱뚝딱 하나의 요리가 된다. 단지앙의 채널에서는 비건식일 거라고 상상도 못 해본 음식들이 등장한다. 다른 매력의 두 사람이지만 이들이 비건이 된 계기는 비슷했다.

고양이 ‘태풍이’와 사는 초식마녀 지혜씨는 5년 전 유기견 ‘마요’가 집에 오면서 동물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 잘 모르고 낯선 존재였던 동물들이 “나와 되게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닫고 동물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전에도 채식 위주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올해 2월 철저한 비건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몇 편의 영상을 접하고 나서다. 공장식 축산 문제를 지적한 다큐멘터리 ‘도미니언’(Dominion), ‘카우스피라시’(Cowspiracy) 등 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너무 행운이죠. 동물들은 이 순간에도 도살장에서 죽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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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아 왔다’는 배신감

단지앙 지은씨가 잡식에서 돌아서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3년여 전 지은씨는 친구를 따라 채식을 시작했다. 그에게 채식식당 찾는 일은 온라인 게임 퀘스트처럼 재밌는 일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채식식당도 찾아보고, 고기가 안 들어간 메뉴도 찾아보고, 고기가 있으면 빼달라고 요구도 해본 거죠. 친구랑 그렇게 찾아서 맛있고 만족스럽게 먹고 나면 임무를 완수한 것 같아서 뿌듯하고 즐거웠어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왜 친구가 채식을 계속하는지 궁금했다. 그때 친구가 넌지시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 이야기를 건넸다. 동물 학대, 축산업의 폐해, 육식에 관한 영상을 본 그는 그 날로 비건이 됐다. “아니, 어떻게 내 눈을 이렇게 깜깜하게 가릴 수 있었지.” 지은씨는 대중매체와 사회에 ‘속아 왔다’는 배신감이 컸다고 말했다.

초식마녀의 채널이 초록빛이라면 단지앙은 주황빛이다. 비건식이라고 생각도 못해본 다양한 음식들이 그의 채널에서는 먹방의 소재로 등장한다. 유튜브 갈무리.
초식마녀의 채널이 초록빛이라면 단지앙은 주황빛이다. 비건식이라고 생각도 못해본 다양한 음식들이 그의 채널에서는 먹방의 소재로 등장한다. 유튜브 갈무리.
둘은 먹는 걸 ‘사랑’한다는 점도 비슷했다. 어떻게 먹방을 시작하게 됐냐는 질문에 지혜씨는 원래 잘 먹는 타입이라고 했다. “저는 제가 많이 잘 먹는 편인 줄 몰랐어요.” 요리 영상을 올리다가 먹는 걸 보여줬는데 반응이 좋아서 먹방을 시작하게 됐다.

식욕을 참을 수 없어서 밤 12시에도 라면에 채소를 듬뿍 넣어 끓여 먹는 그는 오히려 채식을 하고 나서 같은 양을 먹고도 살이 빠지는 경험을 했다.

지은씨는 평소에도 일상이 ‘먹방’이었다. 채식을 하기 전이나 후나 항상 잘 먹었다. “한끼 한끼 아까운 거예요. 내가 채식으로도 이렇게 맛있게 잘 먹고 있는데, 나만 이런가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었죠.” 그는 자신이 채식인이라 너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아니면 고기를 엄청 먹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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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온전한 즐거움의 맛

29일 저녁 7시 애피와의 인터뷰 자리는 이 탐식가들과의 저녁 식사자리이기도 했다. 유기농 채소요리, 통곡물빵, 채식 디저트로 유명한 식당에서 그들이 각각 고른 메뉴는 똑같이 ‘버섯 크림 스파게티’였다. 하루 20그릇 한정인 이 음식을 아직 주문할 수 있다는 말에 쾌재를 불렀다.

비건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고리타분하다, 엄격하다, 어렵다 그리고 금욕적이다. 먹방은 정반대다. 즐겁다, 자극적이다, 재미있다 그리고 탐닉한다. 얼핏 보면 상충하는 이 고정관념들이 이들의 식탁에서는 일맥상통했다.

대화는 고리타분해질 만하면 금세 흥미로운 맛의 세계로 돌아왔다. 자연식물식으로 만성피로와 염증, 우울증을 이겨냈다는 지은씨의 ‘간증’이 바로 파스타에 올려진 팽이버섯과 불맛에 대한 진지한 평가로 이어지는 식이었다.

단지앙의 채널이 주황빛이라면 초식마녀의 채널은 초록빛이다. 그의 채널에서 냉장고 속 채소는 뚝딱뚝딱 하나의 요리가 된다. 유튜브 갈무리
단지앙의 채널이 주황빛이라면 초식마녀의 채널은 초록빛이다. 그의 채널에서 냉장고 속 채소는 뚝딱뚝딱 하나의 요리가 된다. 유튜브 갈무리
이들에게 ‘비건의 맛’에 대해 물었다. 지은씨는 비건 채식을 ‘더 맛있고, 고급스럽고, 다양한 맛’이라고 평가했다. “사람들은 이미 아는 맛에서 열광하잖아요. 저는 그 아는 맛에서 이만큼을 더 아는 거예요.” 그는 채식을 하고 나서 맛의 스펙트럼이 더 다양해졌다고 했다.

지혜씨는 ‘온전한 즐거움의 맛’이라고 했다. “죄책감이 사라진 게 큰 요인인 것 같아요.” 처음엔 그 마음이 어디서 오는지 몰랐다. 밤늦게 먹어서 그런가, 입으로만 살 뺀다고 하고 어겨서 그런가 확실치 않았다.

그러던 것이 채식을 하고 나서는 명확해졌다. 그것이 동물을 먹었다는 것에서 오는 감정이었다는 것을. 짓누르던 죄책감이 사라지고 나서는 먹는 즐거움은 더 커졌다. “채식은 먹고 난 이후에도 온기가 남아있는 만족감 있는 식사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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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 얘기를 할 뿐인데…

좋아서 시작한 유튜브지만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채식으로 생겨났던 ‘인류애’가 댓글로 사라지는 경험도 종종 한다. “인신공격이 달릴 때도 있고, 고소당할까 봐 그런지 썼다가 지워지는 악플들도 있어요.”

비건에 대한 ‘단골 태클’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채식을 강요하지 말라’는 댓글도 그렇다. “음식이 너무 사적인 영역이다 보니까, 그냥 내 얘기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본인의 윤리성을 평가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지은씨는 자신의 정체성이 다른 사람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지혜씨도 비슷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보호를 하잖아요. 비건은 그런 방어기제를 건드리는 게 있어요.” 그럴 때는 차라리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하고 있다고 답하기도 한다. “일일이 부딪히고 살면 너무 피곤하니까.”

29일 저녁 애피와의 인터뷰 자리는 초식마녀, 단지앙 이 두 탐식가들과의 저녁 식사자리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똑같이 하루 20그릇 한정 메뉴인 ‘버섯크림파스타’를 주문했다.
29일 저녁 애피와의 인터뷰 자리는 초식마녀, 단지앙 이 두 탐식가들과의 저녁 식사자리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똑같이 하루 20그릇 한정 메뉴인 ‘버섯크림파스타’를 주문했다.
건강을 위한 채식도 ‘돈 있는 사람들만 하는 것’이란 편견이 있다. 지혜씨는 이 편견을 특히 억울해했다.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끝나고, 몹시 가난했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지 동물성으로 안 먹었잖아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육류 소비는 52kg으로, 지난 50년간 무려 10배 이상 증가했다. 이에 따른 생산량은 약 10배 증가했으며, 소·돼지·닭의 총 사육 마릿수도 7배 이상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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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원이면 일주일 치 채소 다 사

지은씨는 비건 채식이 ‘유기농, 제철, 로컬’ 채소를 선호하기 때문이란 지적을 내놨다. “아무래도 어느 지역 농부가 유기농으로 가꾼 채소 등은 리미티드 에디션이니까 비싸게 되죠. 국산 콩이 중국산 콩보다 더 비싼 것처럼. 더 좋은 재료를 구매하려다 보니 식비가 더 들 때도 있지만, 저 같은 경우 재래시장 가서 만원이면 제가 먹을 일주일 치 채소를 다 사요.”

오히려 비거니즘이 소비를 줄여줬다. “상상도 못 한 데에 동물성이 들어가요. 그러니까 제대로 알아보기 전까지는 함부로 안 사요.” 비건은 먹는 것뿐 아니라 입고, 쓰는 소비재도 동물성이 들어간 제품은 구매하지 않는다. 동물의 털, 가죽이 사용된 의류뿐 아니라 동물실험을 한 화장품도 쓰지 않는다.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제품을 충동구매하기 어려운 이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직 악플에 큰 상처를 받은 일은 없다. “이렇게 인기가 없어요. 아직 이슈가 안되어서 그런가….” 지은씨는 농담 반, 진담 반 아쉬운 마음을 내비쳤다. 단지앙과 초식마녀의 테이스티 비건 라이프(Tasty Vegan Life)채널의 구독자는 모두 3천여명 수준이다. “비건이 붐이라는데, 우리만 안 터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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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세끼도 기대해주세요”

‘악플’도 아쉬워하는 겸손을 보였지만 이들은 이미 국내 비건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이다. 지난 2월부터 채식일기를 그려온 지혜씨는 인스타그램에 연재하던 만화를 모아 내년 초 책으로 낼 예정이다. 지난 4월 유튜브를 시작한 지은씨도 지난 10월 KBS 시사교양프로그램에 출연해 최근 트렌드가 되는 채식문화를 알렸다.

생업이 따로 있는 이들이 유튜브에 들이는 노력은 단순한 취미를 웃돈다. 30~40분짜리 브이로그 영상 하나를 업로드 하려면 온종일 작업해도 사나흘이 걸린다. 지난 2월 완전 비건을 시작하며 새벽 5시에도 가뿐하게 기상했다는 지혜씨도 “채널 운영하면서 무리했더니 ‘비건 파워’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열심히들 하는 걸까? “알게 모르게 소외감, 고독감 같은 게 있어요. 채식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지만 유독 내 주변에만 없는 것 같고, 나 혼자 채식하는 것 같고.”

11월29일 서울 마포구 한 채식식당에서 ‘비건 먹방 양대산맥’ 초식마녀와 단지앙을 만났다. 지난 8월 처음 만났다는 이들은 벌써 친한 친구처럼 보였다.
11월29일 서울 마포구 한 채식식당에서 ‘비건 먹방 양대산맥’ 초식마녀와 단지앙을 만났다. 지난 8월 처음 만났다는 이들은 벌써 친한 친구처럼 보였다.
지은씨는 그래서 ‘덩치’를 불리는 야망을 품고 있다. 유튜브에 비건 종합채널을 만드는 것이다. “유튜브 채널에 비건 크루를 만들고 싶어요. 운동 비건, 먹방 비건, 요리 비건, 비건 디자이너 등 하나의 큰 채널을 만들어서 여러 크리에이터가 각자의 소재를 가지고 비건과 베지테리언에 대해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거죠.”

초식마녀와의 먹방이 그 야망의 첫 단추였단다. 지혜씨는 “단지앙처럼 야망은 없지만” 비건 예능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예능이나 드라마에 동물성 음식 먹는 거 너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비건들이 불편함 없이 맘 편히 즐길 수 있는 채식 예능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파일럿 프로그램이 내주 제주에서 촬영된다. 제주 오일장에서 비건 장을 봐서 직접 세 끼를 만들어 먹는 이야기란다. 채널에 올라갈 제목은 ’비건 세끼’다.

애피의 ‘저탄소 비건 식당’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2020년 1월 하루 동안 서울 해방촌에서 아주 특별한 비건 식당이 열립니다. 혼자가 아니라 다 함께 실천하는 비거니즘을 위해, 여러 비건이 모여 이야기하고 체험하는 식당입니다.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텀블벅 펀딩 바로가기: https://tumblbug.com/animalpeople_vegan

혼자가 아니야: 나, 우리, 지구 그리고 비건

김지숙 신소윤 기자 suoop@hani.co.kr

11월 어느 날 애피의 점심 도시락. 전날 반찬 준비를 못 하면 아침에 에어프라이어에 콩너겟을 튀겼다. 더 잘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부족한 내 모습’에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11월 어느 날 애피의 점심 도시락. 전날 반찬 준비를 못 하면 아침에 에어프라이어에 콩너겟을 튀겼다. 더 잘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부족한 내 모습’에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12시간 ‘돼지 먹방’이 내게 남긴 것_김지숙의 비거니즘 일기

혼자 하는 비건은 꽤 할 만하다. 입고, 먹고, 쓰는 걸 뜻대로 결정할 수 있는 1인 가구라서 집에서의 비거니즘은 나름 순풍이다. 송치 구두를 살까 말까, 울 스웨터를 입을까 말까, 콘택트렌즈를 쓸까 말까. 내적 갈등은 지속됐지만 비건이 새 기준이 되고 나서는 결정이 쉬워졌다. 두달 간 고기가 당기거나 그립지도 않았다.

다만 여럿이 모일 때면, 미묘한 지점에서 마음이 덜걱거렸다. 비건 지향 두 달, 우리는 더는 ‘건강해지려면 고기를 먹어야 돼’, ‘식물은 그럼 안 불쌍해’와 같은 노골적인 말을 자주 듣진 않았다. 최근 비거니즘이 많이 알려진 덕이다. 그런데도 비건이 채식한다는 걸 아는 사람도 어떤 음식을 먹고, 안 먹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어묵도 안 먹어? 우유랑 버터도 안 먹어? 계란은? 그럼 뭐 먹어? 순수한 질문에 친절히 답을 하면 될 일인데 어째서인지 종종 신경이 예민해졌다. 우유와 계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가 젖소와 암탉을 어떻게 착취하는지 열변을 토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외식 때, 어류가 들어간 국물을 허용한다는 말을 덧붙이고는 이상하게 입맛이 씁쓸했다. 이런 나의 ‘지향’ 상태를 설명하는 일이 변명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애피의 ‘채식 도시락’도 종종 완벽주의 덫에 걸렸다. 우리의 이실직고는 도시락 뚜껑을 열면서부터 시작된다. “이건 멸치 육수를 쓴 거야”, “장모님 비지찌개인데 돼지고기가 좀 섞였어”. ‘비건’이 힙해지기 전부터 60여 년 평생을 가장 생태적으로 살아온 조홍섭 기자마저도 “겉절이 좀 갖다 놓을까? 근데 젓갈이 들어가서…”라며 조심스러워하는 식이다.

도시락 준비가 어느 순간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별생각 없이 현미 즉석밥을 먹다가 비닐과 플라스틱 포장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허둥지둥 일과를 마치고 시든 파처럼 퇴근할 때면 마트에 가기 싫어서 새벽배송 앱을 켰다. 전날 반찬 준비를 못 하면 아침에 에어프라이어에 콩너겟을 튀겼다. 더 잘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부족한 내 모습’에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점점 도시락이 싸기 싫어졌다.

이렇게 내가 건더기와 국물, 플라스틱에 무너지고 있을 때, 11월25일 경기도청 공식 유튜브에서는 ‘12시간 돼지고기 먹방’이 생중계됐다. 여러 연예인, 방송인이 ‘먹방 주자’로 나와 삼겹살을 구웠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양돈농가를 응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돼지를 살리기 위해 돼지를 열심히 먹는’ 아이러니를 보면서 문득 이렇게 시들시들해질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29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비건 유튜버 단지앙의 한 마디가 마음에 꽂혔다. “자신을 향한 비건을 했으면 좋겠어요.” 20대 때 수영강사와 보디빌더로 활동했던 단지앙은 채식 초반 ‘완벽한 채식’에 대한 강박에 시달렸다고 했다. 동물성 음식은 단 한 방울도 허용치 않았다. 그러다가 심한 무력감이 왔고, 사회생활이 힘들어졌다고 했다.

그는 무려 1년간이나 그런 강박에 시달렸다고 했다. 나는 고작 비건 지향 2개월 남짓.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야말로 적이었다. 지구, 환경, 동물 다 생각하면서 왜 스스로한테만은 제대로 못 한다고 채찍질을 했던가. 악마는 역시 디테일에 숨어 있었다. 겨울 도시락 전투력을 키우기 위해 보온도시락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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