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4개월 전인 1952년 당 대회에서의 스탈린. 이렇게 미화되지 않은 사진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삼인 제공
사망 4개월 전인 1952년 당 대회에서의 스탈린. 이렇게 미화되지 않은 사진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삼인 제공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의 스탈린 대원수.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삼인 제공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의 스탈린 대원수.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삼인 제공

스탈린-독재자의 새로운 얼굴
올레크 V. 흘레브뉴크 지음, 유나영 옮김/삼인·3만5000원

“나는 귀관이 폭격으로 한국인이 다친다든지 비행대가 안개 때문에 임무 수행을 못할까 봐 우려하는 걸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일본군이 수많은 우리 인민을 공격하고 있는 마당에 한국인을 왜 걱정합니까? 볼셰비키 비행대가 조국의 명예를 진정으로 수호하고자 하는데 구름 몇 점 따위가 대수입니까?”

1938년 조-중 국경지대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교전에 즈음해 비행대 투입에 우려를 표명하는 현지 군 지휘관한테 스탈린이 한 말이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 한국인의 죽음이 무슨 상관이냐는 거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1930년대 ‘대약진’ 때 폈던 논리와도 같다. 중화학공업 육성을 위해서 농촌은 착취해야 할 식민지 취급을 했다. 집단농장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농민은 잡아들여 때렸다. 1929년 10월 7.5%였던 집단농장 소속 농민가구는 넉 달 뒤 52.7%로 늘어났다. 결과는 농촌 황폐화. 대기근과 겹치기는 하지만 1932~33년 사이 500만명에서 700만명이 죽었다.

 보로실로프의 아내 예카테리나와 함께 남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스탈린(맨 오른쪽은 경호원). 나데즈다는 이로부터 몇 달 뒤 자살했다.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삼인 제공
보로실로프의 아내 예카테리나와 함께 남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스탈린(맨 오른쪽은 경호원). 나데즈다는 이로부터 몇 달 뒤 자살했다. 러시아 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 삼인 제공

<스탈린>의 지은이 올레크 V. 흘레브뉴크가 기술하는 스탈린은 오로지 ‘대의명분’을 위한 인물이다. 대약진에서 농민은 대일전쟁에서의 한국인과 다름없었다. 대의명분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자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일진데, 정작 프롤레타리아는 소외됐다. 1934년 키로프 피살에서 비롯하는 대숙청. 반대파, 나아가 집단지도체제의 측근들을 방해공작, 간첩활동 죄목으로 총살했다. 1937년 하반기 총구는 ‘반소분자’와 외세 앞잡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소수민족’으로 향한다. 1년 반 동안 160만명을 잡아들여 그중 70만명을 쏴 죽였다. 1940년대 소연방국 당 중앙위 비서 57%가 35살 이하였고, 정부, 군대, 기업체 간부들은 30~40살 젊은이로 채웠다. 앞잡이는 비밀경찰인 엔카데베와 그 우두머리 예조프. 한때 그의 이름을 붙인 도시, 공장, 집단농장이 생겼으나 숙청이 마무리되자 총살됐다. 스탈린의 대의명분이란 독재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보로실로프
보로실로프

지은이는 스탈린의 무능과 겁쟁이 같은 면모를 거듭 밝힌다. 1941년 6월 독일군 내침 보고를 받은 그는 4시간 뒤에야 응전을 명령했다. 연서명한 명령지에 그의 이름은 없었다. 경험 많은 장군들이 숙청된 까닭에 지휘관들은 젊었고 스탈린 역시 ‘전쟁 초짜’였다. 후퇴는 허용하지 않았고, 이를 허락했을 때는 너무 늦었다. 붉은군대는 차례로 궤멸했다. 그는 군사 정치위원 제도를 되살리고, ‘명령 227호’로 후퇴저지 부대를 창설했다. 뒷걸음질 친 병사와 지휘관은 즉결처분됐다. 개전부터 넉 달까지 1만여명이 그렇게 죽었다. 그가 전선을 방문한 것은 1943년 8월2일 단 한 차례. 선전에는 탁월해 독일군에 포위된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열었다.

스탈린은 인문학 소양이 없었다. 단적인 예가 사후 서재에 남겨진 책 397권. 스탈린이 직접 책 여백에 주석을 달아 그가 읽은 것으로 추정되는 책 중에선 레닌의 저작이 72권으로 가장 많았다. 누군가 틀을 벗어난 제안을 할 때마다 “이 문제에 대해 블라디미르 일리치가 뭐라고 말했을지 봅시다”라며 책을 뽑아들고 소리 내 읽었다고 한다. 원전인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은 13권. 그밖에 선전물과 교육물이 많았는데, 그중 25권이 자신이 쓴 것이었다.

1932년 아내 나데즈다 알릴루예바
1932년 아내 나데즈다 알릴루예바

러시아 연방 국립문서보관소 선임연구원인 지은이는 편지, 메모, 보고서, 일기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자료를 활용해 스탈린의 생애 74년에 걸친 일대기를 꼼꼼하게 기술한다. 스탈린이 뇌출혈로 쓰러져 장례식이 치러지는 1953년 3월1일부터 6일까지 엿새 동안의 이야기를 번갈아 곁들여 74년의 시차를 서서히 좁혀가는 형식이다. 최근 푸틴 체제에서 다시 부는 스탈린 신화화 움직임에 대한 반작용으로 읽힌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