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10월 트래펄가 광장에서 연설하는 에멀린 팽크허스트(왼쪽)와 21세기 ‘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현실문화
1908년 10월 트래펄가 광장에서 연설하는 에멀린 팽크허스트(왼쪽)와 21세기 ‘나쁜 페미니스트’ 록산 게이. 현실문화

 사이행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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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페미니스트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사이행성·1만5800원싸우는 여자가 이긴다에멀린 팽크허스트 지음, 김진아·권승혁 옮김/현실문화·1만8000원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쁜 여자들’의 책이 동시에 출간되었다. 미국 퍼듀대 교수이자 소설가, 문화비평가,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인 록산 게이가 2014년 펴낸 <나쁜 페미니스트>와 20세기 초 여성운동가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자서전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 팽크허스트는 메릴 스트립이 출연한 영화 <서프러제트>(suffragette)로도 유명하다.

에멀린 팽크허스트(1858~1928)는 나대지 말고 조신하게 행동하며 집안을 예쁘게 꾸미라는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 여성상에 저항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딸을 보며 “남자로 태어나지 않아서 안됐어”라고 말했다. 그 순간 딸은 자는 척했어도 의식만큼은 깨어났다.

빈민구제위원으로 활동하던 팽크허스트는 빈곤과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삶을 접했고 투표권을 가지면 여성의 삶이 나아지리라 믿었다. 비폭력 평화운동을 벌였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자 투쟁 전략을 급선회했다.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합을 만들어 동지들을 규합했으며 유리창 깨기, 방화 같은 전투적인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였다. 걸핏하면 연행되었고 경찰의 곤봉과 말발굽에 진압당했다. 당시 여성운동가들은 국왕의 마차에 몸을 던져 죽었고, 옥중 단식 때는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

팽크허스트는 응답하지 않는 ‘진보 남성’ 의원들에게 실망하며 계급불평등보다 성별불평등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공산주의에도 극심한 반감을 가져 말년에는 보수당원이 되었다. 1928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보수당은 21살 이상 모든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었다.

1974년 아이티계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록산 게이 교수는 2014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 되어 테드 강연 무대에 올랐다.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기보다는 나쁜 페미니스트를 택하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단점 많고 불완전하기에 모든 면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페미니스트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장르의 팝음악에는 여성 비하적 가사가 등장하는데 “제길, 하필 그런 노래가 너무나 중독성 있어서” 자신도 모르게 존재를 깎아내리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만다는 것이다.

‘높은 페미니스트 왕좌’에 올라가면 하나같이 완벽한 인간처럼 굴어야 하지만 “한두번 대차게 말아먹으면 사람들이 달려들어 가차 없이 끌어내린다”. 사람들이 인신공격처럼 ‘너, 페미니스트 그런 거 아니야?’라고 묻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는 페미니스트의 ‘금기색’인 분홍색과 남자를 좋아하고, 패션지 <보그>도 즐겨 본다.

이렇게 상대를 무장해제한 다음이 본론이다. 그는 ‘합법적 강간’이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 나이 어린 성폭력 피해자보다 18명 가해 남성들의 장래를 우려하는 ‘기자 쓰레기’에 분노한다. 성폭력을 희화화하는 코미디언의 농담에 울분을 터뜨리며 이것은 여성혐오고, 표현의 자유일 수 없다고 한다. 여자들의 ‘예스’와 ‘노’를 구분하지 않는 ‘강간 문화’보다 ‘성기 문화’가 문제라며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코미디, 드라마, 문학, 영화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성폭력, 성차별, 인종차별, 외모차별 에피소드가 그는 전혀 웃기지 않다고 한다. 이 모두 일상의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웃에 살던 한국 학생들이 다른 집으로 이사하자, 관리 직원은 오래 참았다는 듯 말한다. 아파트에 밴 “그 지독한 냄새”를 빼느라 너무 고생했다며. “그 사람들 어떤지 아시잖아요.” 한국에서 한국인들은 ‘표준’이지만, 미국으로 이동하면 냄새나는 유색인종이 된다. 이것이 인종차별의 법칙이다.

그는 아이티 출신으로 미국에 사는 뚱뚱한 흑인 여성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다만 10대 시절 숲속에서 어떤 일을 겪은 한 여자아이에게 폭식은 생존본능이었고, 자신이 무언가를 먹으며 몸을 크게 만들 때마다 점점 더 안전하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불현듯 연상된다는 그 사건은 책에 솔직하고 아프게 기술돼 있다. “페미니즘은 나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팽크허스트와 록산 게이는 모두 ‘참한 여자가 되라’는 가부장의 명령에 저항한다. 읽다 보면 사회가 오히려 옛날보다 후퇴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100년 전 팽크허스트는 딸들을 비롯해 인종과 계급 불문 무수한 ‘여성동지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게이의 에세이에서 자매애를 발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페미니즘을 전개하는 일은 외로움을 각오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곧 편안해지지 않을까. ‘페미니스트라면서 너는 왜 이렇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가’라는 공격형 질문을 받아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으니까.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해시태그(#) 페미니즘에 차마 동참하지 못했던 불완전 페미니스트들이 반갑게 ‘나는 나쁜 페미니스트다’라고 나올 수도 있겠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