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에서 유통구조가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해방 이후 복간된 신문과 잡지에 간간이 실리기 시작한 한국 만화는 대본소(貸本所)라 불린 만화방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대본소란 만화책 판매본(販賣本)이 아닌 대여본(貸與本)을 직접 생산하고 유통하는 공간으로 일본식 표현인 ‘대본옥’에서 온 용어다. 대본소는 1990년대 중반 만화대여점이 급격히 늘어나기 전까지 만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주된 공간이었다.
만화평론가인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는 “1950년대 중반 만화대여노점에서 시작된 대본소는 1958년을 전후해 전국적으로 급격히 늘었다. 초기 주된 소비층은 어린이였고, 스포츠물·학원물·역사물·순정물 등 본격적인 장르만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대본소가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인기를 얻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1964년 창간된 어린이잡지 <새소년>은 1965년 7월호에 ‘만화, 얼마나 보나’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 서울 효제초등학교 3~5학년 어린이 266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4학년 어린이의 74~75%가 대본소를 즐겨 찾는다고 밝혔다. 당시 중학교 입시의 영향으로 5학년 학생은 전체의 40%만이 대본소를 즐겨 찾았다.
대본소를 통해 안정적인 유통이 이뤄지자 출판사, 작가, 작품 등이 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인기작가와 전속으로 계약한 만화전문 출판사가 생겨났고, 부엉이문고, 크로바문고, 제일문고 등이 가장 활발히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출판사들의 자유경쟁은 오래가지 않았고, 독점 업체가 등장했다. 1967년 진영출판사를 중심으로 여러 출판사가 한데 모여 ‘합동’이라는 업체를 만들어 판매와 유통을 독점했다.
독점의 폐해는 시대를 막론하고 비슷했다. 합동은 독점적인 자본력으로 경쟁 출판사의 등장을 막았고, 만화의 질적 저하가 이어졌다. 이런 상황은 1972년 <소년한국일보>가 언론사의 힘으로 만화시장에 진입해 양강구도가 될 때까지 지속됐다. 독점체제가 깨진 첫해 <일간스포츠>에는 고우영의 <임꺽정>이 연재되며 성인만화의 서막을 알렸다. 특히 임꺽정은 장편 극만화의 시초이기도 했다. 경쟁의 효과는 가시적이었다. 1975년 <소년한국일보> 공모전을 통해 허영만씨와 <아기공룡 둘리>의 작가인 김수정씨 등이 데뷔했고, 1979년엔 <공포의 외인구단>의 작가 이현세씨가 데뷔했다.
1980년대는 한국 만화의 르네상스 시기로 평가받는다. 핵심은 새로운 유통구조를 가져온 새 매체였다. 1982년 10월 만화전문지 <보물섬>의 창간은 만화 역사의 중흥을 이끈 사건이다. 그 전까지 만화는 매체의 일부를 차지하는 콘텐츠에 불과했으나, 보물섬은 만화만 수록한 첫 월간지였다. 김수정의 <아기공룡 둘리>와 이진주의 <달려라 하니> 등도 보물섬이 낳은 작품들이다. 보물섬의 성공은 다른 만화전문지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만화광장>, <주간만화>, <만화왕국>, <르네상스> 등이 속속 창간됐고, 작가들과 장르도 다양해졌다. 만화전문지의 탄생은 작가들로 하여금 ‘잡지 연재’와 ‘단행본 출간’ 등의 이중 수입구조를 가능케 했다.
보물섬이 한국 만화의 르네상스 시기를 열었다면, 이현세 작가가 1983년에 발표한 <공포의 외인구단>은 작품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퇴물 야구선수들이 냉혹한 조련을 거쳐 최강의 팀으로 거듭나고, 삼류 인생을 살던 주인공 오혜성이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엄지를 일편단심으로 사랑한다는 내용은 당시 암울했던 시대 분위기와 어우러져 열광적인 인기를 끌었다. 박인하 교수는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 만화방은 극만화 일색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1990년대 만화 유통의 변혁을 이끈 두 가지 흐름은 ‘도서대여점의 급증’과 ‘일본 만화의 직수입’이었다. 1980년대 해적판으로 유통되던 일본 만화는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인기에 힘입어 국내로 직수입되는 작품이 급격히 늘었다. 일본 만화가 주로 유통된 공간은 만화방보단 도서대여점이었다. 200~300원에 한 권씩 만화책을 빌릴 수 있었던 도서대여점이 전국적으로 늘어나 1998년 1만1223개에 달했다. 박인하 교수는 “도서대여점이 확대되고 일본 만화가 밀려오면서 한국 만화가들은 잡지 연재, 단행본 출간 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출판사들은 일본 만화를 출간하면서 상대적으로 좋은 시절을 보냈다”고 평가했다.
도서대여점은 인터넷 보급으로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장 큰 원인은 불법복제물의 범람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만화책을 스캔한 불법복제물이 퍼져나갔다. 반면 새 매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가들도 있었다. 웹툰 1세대인 정철연 작가는 2001년 개인 사이트를 통해 생활 속의 일화를 소재로 <마린블루스>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성격의 <스노우캣> 등도 인기를 끌었다. 강풀 작가가 2003년 다음에 연재한 <순정만화>가 인기를 끌면서 웹툰의 장르가 다양해졌다. 2005년 네이버가 웹툰 사업에 뛰어들면서 웹툰 시장은 포털업체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포털이 서비스하는 웹툰은 만화의 대중화를 이끌고, 신인 작가들이 데뷔할 수 있는 문턱을 낮췄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 웹툰은 올해 3월 자체 추산 결과 순방문자가 1700만명에 이르렀고, 조사기관인 코리안클릭은 다음 웹툰의 같은 시기 순방문자가 190만명이라고 발표했다. 현재 네이버에서 126개, 다음에서 64개의 작품이 연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가 한국 만화 유통구조가 급격히 변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박인하 교수는 “네이버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다음이 아니라 모바일이고, 이 분야의 선두주자가 카카오다. 엔에이치엔이 지난 3월 웹툰에서 발생하는 광고수익을 작가들과 배분하겠다는 피피에스(Page Profit Share) 정책을 발표한 것도 카카오를 겨냥한 것”이라고 말했다. 엔에이치엔은 웹툰에 광고를 삽입하고, 수익을 네이버와 작가가 나눠 갖는 정책을 지난 3월20일 발표했다. 일방적으로 포털업체가 책정한 원고료를 받아온 작가들로선 이례적인 일이다.
서찬휘 만화평론가는 “게임처럼 결제가 편하고,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소셜펀딩이나 만화가들이 조합을 만들어 직접 유통에 나서는 것도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웹툰 유통구조의 새판을 짜야 한다”고 밝혔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