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법관 제청자 프로필
김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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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갖춘 정통 엘리트, 시국사건엔 보수적 입장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

김황식 법원행정처 차장은 정통 엘리트 법관으로 꼽힌다. 1974년 서울민사지방법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한 김 처장은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 법정국장, 기획조정실장 등 행정처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 차장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광주일고 후배로, 능력을 중시하는 이 대법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김 처장은 실력과 따뜻한 인품을 두루 겸비하신 분”이라며 “법원 안에서는 그분이 대법관 되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겸손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법원 직원들의 신망도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광주지법원장으로 있을 때는 모든 직원들에게 법원 업무의 개선점, 업무 과정에서 느끼는 소회 등을 전자우편으로 주고받았으며, 법관상조회와 여직원회가 이를 모아 <지산통신>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김 차장은 1995년 친일파 후손의 토지환수 소송에 제동을 걸어 주목을 받았다.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이 국가를 상대로 “조선총독부에서 받은 토지 6200평을 돌려달라”며 낸 소유권 확인 소송에서 “강제징발 사실을 증명할 근거가 없으며 1975년 국가 명의로 소유권 이전등기가 된 뒤 10년이 지났으므로 소유권자는 국가”라며 원고패소 판결해 유사 소송에도 영향을 끼쳤다.

친일파후손 토지환수 제동 걸어 주목
조작의혹 ‘남매간첩단’ 사건 중형 선고

그러나 김 차장은 정통 엘리트 법관답게 시국사건에서는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94년 서울형사지법 재판장 시절, 이적단체 가입 혐의로 기소된 여성 노동자에게 유죄를 선고하기에 앞서 “폭력적 방법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하겠다는 피고인의 신념은 북한의 주장과 다를 바 없어 반국가단체 동조 혐의를 인정한다. 세상을 미움과 질시만으로 바라보지 말라”며 장시간 훈계를 했다.

같은 해 김 차장은 ‘남매간첩단’ 사건 1심 재판에서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판결 확정 뒤 “남매간첩단 사건의 조작을 도왔다”는 안전기획부 프락치의 양심선언이 나오고 안기부 조사를 받던 김씨가 변호인 접견 때 고문의 고통을 호소하며 자해한 사실이 알려지는 등 대표적인 조작 사례로 꼽히고 있다. 사법부의 과거사 반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은 김 차장에게 부담이 될 전망이다.

△전남 장성 △광주일고-서울대 △독일 마르부르크대학 수학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광주지법원장

김태규 기자


노동법 전문가로 꼽혀, 유일한 비서울대 출신

김지형 사법연수원 연구교수

김지형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많은 노동법 관련 저서를 펴내는 등 법원 안의 노동법 전문가로 꼽힌다.

그가 1993년에 펴낸 <근로기준법 해설>은 노동법 분야의 ‘교과서’로 통한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에 얽매이지 않고, 진보적인 법률 해석으로 노동법 분야의 새로운 해석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98년 3월부터 2001년 3월까지 사법연수원에서 노동법을 강의했으며, 이때 강의를 들은 연수원생들이 만든 노동법학회는 지금도 활발한 연구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 판사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노동사건에서 눈에 띄는 판결을 많이 내놓았다. 김 판사는 속옷 회사가 “해외연수를 다녀온 뒤 3년 동안 퇴직하지 않는다는 근로조건을 위반했다”며 퇴직 사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 기업이 노동자들의 이직을 막기 위해 부당한 근로계약 조건을 제시하고, 노동자가 이를 승낙해도 법적 효력이 없다는 판례를 남긴 것이다.

판례 벗어난 진보적 해석 돋보여
사용자 부당함 지적한 판결 많아

또 퇴직금 산정을 둘러싸고 서울 중구청과 환경미화원들이 벌인 소송에서도 “퇴직금 산정 때 가족수당을 평균임금에서 제외한 것은 부당하다”며 환경미화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 중구청이 ‘가족수당이 생활보조 및 복리후생 차원의 금품에 불과해 평균임금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나, 일정 요건을 갖춘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가족수당을 지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또 “공무원들이 징수 편의를 위해 영업자 지위를 승계하려는 업주에게 이전 업주의 체납 세금을 대납하도록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판결도 주목받았다.

유지담·배기원 대법관이 퇴임함에 따라 대법원이 서울대 출신으로만 채워지는 상황에서, 원광대 출신 김 판사의 대법관 기용이 그동안 조심스럽게 점쳐져 왔다. 서울 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김 판사가 제청된 것은 비서울대라는 점이 작용했겠지만, 노동법의 권위자라는 측면도 많이 고려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기욱 변호사는 “김 판사는 차분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노동법의 새로운 해석이 기대된다”며 “다양한 가치 반영과 소수자 보호를 위한 인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북 부안 △전주고-원광대 △독일 괴팅겐대학 수학 △헌법재판소 파견 △대법원장 비서실장

김태규 기자


사법개혁 소신 뚜렷, 기본권 보호 판결 많아

박시환 변호사

박시환 변호사는 사법개혁을 바라는 법원 내부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그 중심에 서 있었다. 1988년 강금실·김종훈 판사 등과 함께 우리법연구회를 만든 박 변호사는 93년에는 사법부 개혁을 요구하는 서울민사지법 판사들의 성명을 주도했다. 2003년에는 관행적인 기수에 따른 대법관 제청 행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사표를 던졌고, 그의 사직은 판사들의 서명운동으로까지 이어져 ‘대법관 제청 파문’의 도화선이 됐다.

기존의 권위를 거부하는 그의 ‘삐딱함’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빛을 냈다. 5공화국 시절인 85년, 인천지법 판사로 일하면서 거리시위와 유인물 배포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진 학생들에게 무죄를 선고한 뒤 강원도 영월지원으로 쫓겨갔다. 서울지법 동부지원에 근무할 때는 시위 단순가담자에 대한 구속영장이나 대학가 사회과학서점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잇달아 기각해, 공안 검찰로부터 ‘영장 5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5공때 시국사건 무죄선고뒤 좌천
대법관 제청 행태에 항의해 사표

96년에는 국가보안법 피의자에 한해 3차례 구속연장을 허용하는 법조항의 위헌법률 심판을 제청하는가 하면, 2000년에는 경찰의 잘못으로 영장실질심사 기회를 놓친 피의자를 직권으로 석방했다. 2002년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의 위헌법률 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처음으로 제청하는 등 ‘사법적극주의’의 소신을 보여줬다. 2000년 9월 서울대 법대 교수 22명과 박원순 참여연대 사무처장과 함께 <법률가의 윤리와 책임>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법원 안팎에서 ‘전략이 있는 운동가’로 통한다. 판결을 통해서 자신의 색깔을 뚜렷이 드러내고 사법개혁을 외치면서도, 소탈하고 원만한 성격으로 적을 만들지 않았다는 평가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변호사가 기수가 낮기는 하지만, 성격이 원만해 그의 대법관 제청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박 변호사는 변호사 개업 뒤 이용훈 대법원장과 함께 대통령 탄핵사건의 대리인으로 참여했으며, 2003년부터 최근까지 참여연대, 민변, 법원공무원노조, 변협 등 각계각층으로부터 대법관 후보로 추천됐다. 최근에는 부동산 투기 추문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대법원의 검증 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남 김해 △경기고-서울대 △전주지법 부장판사 △서울지법 부장판사 △변호사 개업(2003.9) 김태규 기자


꼼꼼한 원칙론자 주로 지역서만 근무

장윤기 법원행정처장 대행

장윤기 창원지법원장은 1975년 임관한 뒤 대부분 대구와 부산에서 근무하고 이 지역에서 탁월한 이론가로 꼽히는 ‘향토법관’이다. 이 때문에 이번 대법관 제청 때도 대구·경북 출신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유력한 후보자로 거론됐지만, 대법관 정수가 한명 줄어들면서 ‘대법관급’인 행정처장을 맡게 됐다.

법원 내부에서는 장 원장을 ‘꼼꼼한 학구파’로 평가한다. 97년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 인터넷을 배워 세계 각국의 법률자료를 법원 내부통신망에 소개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철저한 재판 준비와 부드러운 재판 진행으로 재판의 설득력과 승복도를 높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판결 성향도 원칙에 충실한 편이다. 돌연사한 노동자에 대해 누적된 피로·스트레스가 사망의 한 원인이 됐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권익 보호에 관심을 가졌다는 평가다. 반면, 지방노동위원회의 중재안을 거부하고 파업을 벌인 노조에 배상책임을 지우는 등 파업에 따른 책임을 엄격하게 묻기도 했다.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 없이 주로 지역에서만 법관생활을 해 사법개혁 등 최근 흐름에는 어두울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법원장으로 일하면서 법관들의 연구활동 지원과 직원의 복지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는 등 행정능력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도 있다.

△경북 칠곡 △경북고-서울대 △대법원 재판연구관 △부산고법 부장판사 △대구고법 부장판사

김태규 기자



기사등록 : 2005-10-19 오후 07:26:37기사수정 : 2005-10-19 오후 1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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