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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것만 들으면

등록 :2021-02-24 10:09수정 :2021-02-24 10:10

이쪽의 생각, 저쪽의 사실

아이들에게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 대해 설명해주는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 사진 실상사 제공
아이들에게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 대해 설명해주는 실상사 회주 도법 스님. 사진 실상사 제공

매주 월요일은 실상사의 출가와 재가 대중들이 한 주 동안 살아온 얘기를 나눈다. 두루 소감을 말하고 마지막 도법 스님 차례. “지난 주에는 서진암에서 금대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새로 만들어보자고 걸어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산길을 헤치고 가보니 매우 거칠고 험해서 난감했습니다.” 더 설명하면 이렇다. 지리산에 있는 크고 작은 절들을 순례길로 개척해 보려고 실상사에서 서진암이 있는 맞은 편 산을 바라보고 대략 수평적인 선을 그려봤던 것이다. 알다시피 둘레길은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등산이 아닌 만큼 높낮이가 심하지 않고 무난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쪽에서 보고 생각했던 것 보다 그쪽의 사정은 아주 크게 달랐던 것이다. 경사도 심하고 험한 바위도 많고 거칠었던 모양이다. 도법 스님의 이런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지. 어디 숲길만 그러하겠어. 우리네 인생도 그러하지.

‘이쪽에서의 생각, 저쪽의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주 경험하는 차이다. 나는 이곳에서 저곳을 이러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면 그곳의 사정은 크게 다른 경우가 그렇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대략 삼십대 중반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오신 선남선녀 몇 분과 자리를 함께했다. 주로 경전과 자연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대화 중간에 한 분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 스님이 그 법인 스님이 맞으세요?” “네? 그 법인 스님이라니요.” 그 분은 그간 내가 참여했던 모임과 활동을 거론하면서 그 때 그 법인 스님이냐고 물었다. “네, 맞습니다. 왜 그러세요?” “그래요? 그런데 말로만 듣고 생각했던 스님을 여기서 보니 무섭게 생기지 않으셨네요. 그리고 말씀도 참 재미있고 부드러우시네요.” 아니, 내가 무섭게 생겼다고 생각했다니. 알고 보니 간간히 세간과 종단의 부조리에 항의하고 시위하는 기사와 글을 보고 나를 전투적인 강성 이미지로 짐작했던 것이다. 나는 가볍게 웃었다. “하하. 이제 현장에서 현품을 대조해 보니 괴물이 아닌 것이 증명되었나요.?”

세간의 이웃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종종 듣는다. 스님들은 참 좋으시겠다고. 왜냐하면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서너 달만 절에 머물러 살아보시라. 그런 막연한 말이 결코 맞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크고 작은 어려움과 인간 관계의 갈등과 불화가 절에도 존재한다. 하늘 아래 어느 땅도 바람과 소나기가 내리지 않은 곳은 없다. 다만 그 비바람을 어떻게 마주하고 사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스님들이 무슨 돈이 필요하냐고. 부양할 처자식도 없고 무소유 정신으로 사시는데 돈 쓸 일이 뭐가 있겠느냐고 말한다. 이런 차이와 괴리는 현장을 살피지 않고 자기 환경에서 나름의 생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의 막연한 이런 생각들은 이곳에 오면 사실과 어긋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때로 당연한 말이 막연한 말이 되고 막연한 말은 무책임한 말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삶의 현장을 그저 풍경으로만 보는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든다. 가령 도시에 사시는 분들이 농촌에 와서 이런 말을 한다. 나도 도시에서 내려와서 농사나 지으면서 한가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정말이지 현실을 몰라도 한참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다. 그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거나 가끔 둘레길를 걸으면서 보는 시골 풍경은, 그 때 비춰지는 눈에는 그림일지 모른다. 그러나 먹고, 입고, 자식들을 키우는 시골의 실제 삶은 힘겹고 힘에 부친다. 그러니 당신이 이곳에서 단 일 년만 살아보시라. 이쪽의 속사정을 모르면 그쪽의 생각은 늘 그저 생각일 뿐이다.

대안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가꾸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어느 분의 항변이 생각난다. 대안 공동체의 취지와 실제 경험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대개 도시에서의 힘든 삶, 자본과 위계의 사회를 비판한다. 그리고 농촌으로 내려와 새로운 마을을 이루고 있는 자신들의 결단을 설명한다. 또 예전의 삶터인 도시에서 느껴보지 못한, 귀촌해서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자랑한다. 이른바 자연과 마을에 대한 예찬이다. 설명이 끝나고 사십대 초반의 청중 한 분이 말한다. “제가 이런 대안 공동체 설명회에 다니면서 몇 가지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 분의 의문과 질문은 이렇다. 이런 모임에서 경험자의 말씀을 듣다보면 대안 공동체는 그렇게 완전하고 흠결이 없는 유토피아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분명 공동체에도 갈등과 어려움이 있을 터인데 그걸 진솔하게 말하지 않고 그저 “좋다, 좋다, 좋다”만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파트로 상징되는 도시에서의 삶은 늘 삭막하고, 인정 없고, 재미 없고, 긴장과 압박만 가득하고, 다툼만 있고, 그리하여 숨도 편히 못 쉬고 사는 것마냥 말하느냐고 항변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에도 이웃이 있고, 직장에도 웃음이 있고, 인정과 사랑의 관계가 있다고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당신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온통 의미 없고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한마디로 맺는다.“아파트와 도시에도 사람들이 숨을 쉬면서 이웃들과 나름 정답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상사 사부대중들과 실상사 농장에서 울력을 하는 필자 법인 스님. 사진 실상사 제공
실상사 사부대중들과 실상사 농장에서 울력을 하는 필자 법인 스님. 사진 실상사 제공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하! 우리들의 ‘금 긋기’는 이런 곳에서도 존재하는구나. 세상 일이란 게 무 잘라내듯 나눌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너무도 쉽게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고, 이쪽의 삶은 이렇고 저쪽의 삶은 저렇다, 라고 단언했구나, 하는 반성이 일어났다. 우리는 더러 도시와 지역, 보수와 진보, 자본과 자연 등의 단어로 삶을 나누고 단언하고 재단한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단언하면 더 이상 어떤 여지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삶의 일상과 실상은 두 개로 쪼개거나 하나의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다. 이쪽에서 바라 본 저쪽은 결코 이쪽에서 생각하는 대로의 모습만이 아니다.

그리고 각종 시위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각과 현장의 현실은 어떠한가? 철거민들의 항변과 시위, 성폭력에 억압당하는 분들의 항변과 시위, 노동현장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재발 방지법을 제정해 달라는 항변과 시위 등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 쪽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편견과 편향으로 정작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본심을 알아보고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는가. 또 처음에는 관심을 갖고 동조하다가 시위 기간이 길어지거나 다소 거친 모습이 표출되면 “이제 그만 하지”라며, 피로감과 운운하며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나 그쪽의 현장을 가보면 거칠어지고 오래 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그러니 부디 이쪽의 생각보다 당사자의 심정이 되어 그쪽을 바라보고 귀를 기울여야 할 것 아니겠는가.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을 새겨본다. 의역하자면, 현장에서 사정과 사실을 편견 없이 살펴보고 잘 알아서 진실을 세운다는 뜻이라고 하겠다. 그저 그것에 대해 어렴풋이 들은 지식, 몇 개의 이미지와 경험의 조합, 나의 정서적 취향 등으로 저쪽의 현장에 대해 섣부르게 빨리 짐작하거나 단언하지 말라는 뜻이다.

경전에는 새끼줄과 뱀에 관한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뱀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막상 가까이 가보니 그건 뱀이 아니라 새끼줄이었다. 평소 뱀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재생되어 새끼줄을 뱀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경험은 실은 해석된 경험을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늘 이쪽의 해석된 경험으로 저쪽을 보고 해석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삶의 오류는 이렇게 발생한다. 그러니 오직 편견 없는 시선과 현장의 경청이 이해와 소통의 답이다.

법인 스님/ 실상사 한주 &실상사작은학교 철학선생님 &전 조계종 교육부장 &전 참여연대 공동대표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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