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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벗님글방

독의 늪에 빠진 몸, 늪 식물이 해독시킨다

등록 :2020-10-06 08:30수정 :2020-10-0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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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당 일기 10: 습지의 약초

사진 픽사베이
사진 픽사베이

방사능 해독 약초: 갈대

아침 일찍 보물을 캐러 마을에서 가까운 백운 연못으로 향했다. 차 트렁크에는 삽과 호미, 괭이와 묵직한 쇠스랑까지 실었다. 보물을 캐는 것은 나 혼자하기엔 벅찬 작업이라 아내는 물론 딸까지 불러 동행했다. 조각가인 딸은 차를 타고 가며 보물이 무엇인지 궁금한 듯 자꾸 물었다. “아버지, 무슨 대단한 보물인데, 저까지 불렀죠?” “응, 가보면 알아. 네가 그래도 웬만한 남자보다는 힘을 좀 쓰잖아.”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연장을 꺼내 들고 연못 가로 내려갔다. 꽤 넓은 연못 가엔 갈대들이 깃발처럼 자줏빛 꽃대를 흔들고 있었다. 내가 먼저 삽을 들고 갈대 군락으로 내려서자 딸이 다시 물었다. “아니, 보물이 갈대 속에 묻혀 있어요?” 더 이상 감출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 갈대 뿌리가 오늘 캐려는 보물이야.” 딸은 갈대 뿌리도 먹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갈대 뿌리는 방사능을 해독해주는 신비한 약초거든.” “와 그래요? 이건 천기누설인데! 사람들이 알게 하면 안 되겠어요.” 딸의 말인즉슨 사람들이 알면 갈대 뿌리가 남아나겠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염려할 건 없다. 갈대 뿌리를 캐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니가 한 번 캐봐라!”

내 말을 듣고 난 딸이 삽을 들고 나섰다. 흔들리는 갈대 앞에 서서 삽을 대고 끙, 힘을 주었으나 땅은 열리지 않았다. 몇 번을 시도해도 삽이 잘 들어가지 않자 딸은 혀를 내둘렀다. 그 동안 나는 몇 번 갈대 뿌리를 캤지만, 갈대는 돌들이 많은 곳에 뿌리를 뻗기 때문에 캐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얼마 파지 않아 구슬땀을 흘리는 딸을 좀 쉬게 하고 내가 나섰다. 나는 쇠스랑을 이용했다. 한 뿌리를 캐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온몸은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아내와 딸까지 힘을 합쳐 세 시간쯤 낑낑거리며 캤을까, 마대 포대 두 개에 갈대 뿌리를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갈대는 여러해살이풀로 아주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다. 갈대는 늪, 냇가, 강기슭, 습지, 바닷가 기슭에서 떼를 지어 무성하게 자란다. 키는 2∼4미터쯤 자라고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으며 줄기의 속은 비어 있다. 장 앙리 파브르가 쓴 <식물기>를 보면,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돌풍에 쓰러질 듯 보이는 떡갈나무를 보고 갈대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처럼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아. 아무리 거세게 바람이 불어도 나는 바람 부는 대로 몸을 맡기면 되거든.” 그렇다. 떡갈나무처럼 큰키나무는 강풍이 불면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버린다. 하지만 가늘고 약해 보이는 갈대는 오히려 바람이 부는 대로 휘면서도 부러지지는 않는다. 갈대는 속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강풍이 불어와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갈대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하다. 고난과 시련의 강풍에 시달리는 이들은 갈대를 스승 삼으면 된다. 갈대처럼 자기를 비워 유연해지면 어떤 강풍도 해하지 못하리니!

갈대의 어린 순은 나물로 먹을 수 있다. 날것으로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기도 하는데 맛이 개운하고 담백하여 옛날 선비들한테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갈대 뿌리는 맛이 달다. 잘 씻어서 말린 뿌리는 불에 덖어서 차를 끓이면 숭늉처럼 구수한 맛이 난다. 갈대 순이나 갈대 뿌리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시인이나 예술가, 수행자들한테 좋은 식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앞에서 갈대 뿌리를 보물이라고 했는데, 갈대 뿌리는 갖가지 화학물질이나 중금속으로 인한 온갖 중독에 탁월한 효능을 발휘하는 해독제다. 돼지고기나 닭고기 등 고기를 먹고 체하거나 식중독에 걸렸을 때도 갈대 뿌리를 달여서 마시면 바로 독이 풀린다. 옛날 거지가 많던 시절, 거지들은 구걸한 음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면 냇가로 가서 갈대 뿌리를 캐서 달여 먹고 건강을 지켰다고 한다.

갈대 뿌리는 방사능 해독에도 도움이 되는 약초라고 했는데, 방사능에 중독되었을 때 갈대 뿌리를 달여 마시면 백혈구의 수가 늘어나고 면역력이 강화되며 골수의 조혈 기능이 높아져서 차츰 몸의 기능이 정상으로 회복된다고 한다.(블로그 <최진규의 약초학교> 참조) 암 환자가 방사선 치료를 받고 나서 갈대 뿌리를 차로 달여 마시면 방사선 치료로 인한 후유증이나 부작용이 훨씬 줄어든다고 하니. 원전 사고 등으로 방사능의 위협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우리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식물로 꼭 기억해 두면 좋겠다.

하여간 갈대는 물가에 서식하면서 지구의 오염된 물을 정화하는 소중한 식물이다. 더욱이 이 식물은 지구 생명의 일부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영약(靈藥)이기도 하니 우리가 아껴야 할 소중한 자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고마리. 사진 고진하
고마리. 사진 고진하

피부 주름을 개선하는 약초: 고마리

습지의 식물들은 대부분이 약초다. 숲이 우리 몸의 폐와 같다면 습지는 우리 몸의 간과 같다. 우리가 생태계보다 나이가 훨씬 적으므로 우리의 폐와 간이 각각 숲과 습지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간이 혈액 속의 독성물질을 말끔하게 정화시킨다면, 습지는 지구의 물에서 독성물질을 정화하고 제거한다. 갈대와 부들, 버드나무 같은 습지성 식물은 중금속이나 용해된 독성물질 같은 다양한 유독성 물질을 처리하는 필터 역할을 한다니, 습지의 식물들은 병든 지구를 치유하는 약초인 셈이다.(스티븐 헤로드 뷰너, <식물의 잃어버린 언어> 참조)

내가 사는 마을 한복판으로는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작은 개울이 지나간다. 폭우라도 쏟아지면 흙탕물이 개울에 자라는 풀들을 휩쓸고 내려가지만, 비가 그쳐 물이 줄면 습지 식물들은 눕혔던 몸을 일으킨다. 생명의 광원(光源)인 태양의 부축을 받으며 서서히 일어나는 것. 그 대표적인 식물이 고마리다. 우리 마을의 개울은 온통 고마리로 뒤덮였다.

고마리라는 이름은 ‘고마운’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물가에 살며 물을 깨끗이 정화해주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고마리는 수분이 촉촉한 곳이면 어디든 자생하는데, 주로 군락을 이루며 자란다. 잎이나 꽃은 메밀과 비슷하고, 8-9월이면 담홍색 꽃이 핀다. 멀리서 보면 흰색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흰빛 속에 담홍색이 섞여 매우 예쁘다.

고마리는 소나 염소 같은 가축이 아주 좋아하는 풀이다. 짐승이 좋아하는 풀이니 사람도 식용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방목하는 짐승도 없고 사람들은 그게 먹을 수 있는 양식인 줄 모르니 아무도 뜯어가지 않는다. 고마리는 맛이 좀 쓰고 맵지만 요리를 잘해 놓으면 밥상에도 올릴 수 있다. 우리 집에서는 어린 고마리 잎을 뜯어 비빔밥에도 넣어 먹고, 된장국이나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국거리로 넣는다.

고마리는 당연히 약성도 뛰어나다. 앞서 습지는 우리 몸의 간(肝)과 같다고 했는데, 습지에 자라는 고마리는 간의 해독에도 좋고, 숙취 해소에도 도움이 되며, 류머티즘에도 효능이 있을 뿐 아니라 지혈제로도 쓰이고, 식중독을 해독하는 데도 효험이 있다.

어느 날 우리는 고마리를 뜯어다 살짝 데쳐서 된장에 무쳤다. 고마리 무침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어 씹는데, 잎이 쫄깃쫄깃했다. 저녁을 먹던 아내가 말했다. “여보, 잎이 유난히 쫄깃거리는데, 그렇다면 고마리가 피부에도 좋은 게 아닐까요?” 그동안 우리는 식물이 자기 생김새와 맛과 향기 등 자기가 지닌 성질을 통해 그 쓰임새를 알려준다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곧 자료를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고마리는 피부 주름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소개되어 있었다. 고마리에서 추출한 성분인 엘라스타아제가 피부의 노화를 막아줄 뿐 아니라 피부 탄력을 유지해 준다는 것.(유튜브 <화산 TV> 참조) 이 자료를 함께 보고 난 후 아내가 말했다. “앞으로 고마리가 화장품 재료로 각광받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 후부터 아내는 개울가에 지천으로 널린 고마리를 뜯어다 자주 요리를 해 밥상에 올렸다. 나 역시 고마리로 만든 요리를 먹고 난 날이면 거울에 비친 내 피부를 살피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고진하 목사 부인인 야생초요리연구가 권포근씨가 만든 모시물통이 쌀국수 볶음. 사진 고진하
고진하 목사 부인인 야생초요리연구가 권포근씨가 만든 모시물통이 쌀국수 볶음. 사진 고진하

혈관을 깨끗하게 하는 약초: 모시물통이

우리 몸을 살리는 또 다른 습지 식물로는 모시물통이가 있다. 모시물통이는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물통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주로 그늘진 습지에 자생한다. 줄기는 곧게 서며 키 높이는 30∼50cm이다. 쐐기풀과의 모시물통이는 대극과의 깨풀과 비슷하나 잎에서 반지르르한 윤기가 나는 것이 다르다.

줄기에는 털이 없어 매끈하며 줄기 속에 물이 가득 들어 있는 듯 반투명으로 보인다. 나는 처음 다른 식물과 다른 반투명의 줄기를 보고 모시물통이는 우리 혈액을 깨끗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모시물통이는 혈관질환을 예방하는 식물이라고 되어 있었다. 또한 비뇨기 계통의 질환에도 효능이 있고, 당뇨병에도 뛰어난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모시물통이의 이런 효능을 알고 난 뒤 우리 가족은 모시물통이를 뜯어다 여러 종류의 요리를 해먹었다. 맛은 달고 서늘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대부분의 식물들이 단오가 지나면 독성이 있지만, 모시물통이는 전혀 독성이 없다. 우리는 모시물통이 잎을 뜯어 된장에 무쳐먹기도 했고, 모시물통이 잎과 줄기를 넣어 감자 크로켓도 만들어 먹고, 쌀국수 볶음도 만들어 먹었다. 잎과 줄기를 꺾어 냄새를 맡아보면 취나물 못지않은 독특한 향이 나는데, 요리를 해 놓아도 알싸하고 상큼한 향기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

이처럼 내 주변의 풀을 뜯어 요리를 해먹을 때마다 <풀잎>이란 시를 쓴 휘트먼의 시구가 떠올랐다. 어느 날 한 아이가 “풀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었다. 시인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대답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덧붙이는 말이 “나는 그것이 필연 희망의 푸른 천으로 짜여진 나의 천성일 것”이라고 노래했다(<나 자신의 노래 6>). 나는 휘트먼의 이 아름다운 시구를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풀들이 나와 너, 지구별을 살리는 ‘희망의 푸른 천’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겠다. 기후 위기의 상황을 맞아 설상가상 식량 위기가 도래할 거란 예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이즈음, 우리 가족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잡초에 깊은 관심을 두는 까닭은 이런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물가에 자라는 저 흔하디흔한 식물들은 우리를 살리려는 만물의 어머니 지구 여신[Gaia]의 자비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그리고 우리가 아껴야 할 소중한 행복의 자원이라고.

글 고진하 시인 목사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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