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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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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말씀하셨다. “보라, 씨 뿌리는 사람이 밖에 나가 씨를 한 줌 쥐고 뿌리는데, 더러는 길에 떨어져 새가 와서 쪼아 먹었고, 더러는 돌짝 밭에 떨어져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함으로 결실을 내지 못하였고,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숨통이 막히고 벌레들에게 먹히었고, 그리고 다른 씨들은 좋은 땅에 좋은 열매를 맺으며, 그것은 60배, 120배의 크기가 된다.”(도마복음 9)

씨를 뿌리는 사람이란 하나님이며, 자연(道)이다. 씨는 모든 곳에 심어진 신성(불성)이다(열반경). 씨가 열매를 맺고 안 맺고는 어디까지나 뿌려진 씨를 받은 땅의 몫이다. 즉, 마음의 몫이다. 좋은 땅에 좋은 열매라는 것은 길에, 돌짝 밭에, 가시덤불에 떨어진 ‘이원성의 마음’(에고)을 버리고 옥토인 ‘비이원성의 마음’(아봐타)에 신성한 씨의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다. 내적으로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둘이 아닌 진리 깨달음의 열매(천국)를 맺는다.

옥토인 하나의 본래 마음(참나)을 배양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맹자). 그러나 주객과 자타를 이원적으로 분별하는 마음(거짓 나)은 본성을 잃어버려 악한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하나(원)와 조화’ 내지 부조화가 실존적으로 선이냐 혹은 악이냐를 결정한다. 그러나 마태(13장 19절)는 ‘씨의 비유’를 서구의 이원론적 사유인 악한 자와 선한 자로, 누가(8장 12절)는 하나님과 마귀로 나누어 대립구조로 추가하여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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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자와 선한 자, 하나님과 마귀는 한 에너지의 양면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하나이다. 마귀는 마음이 분별(탐욕)에 사로잡혀 있을 때 ‘업상념파(業想念波)’를 인격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는 전체성의 하나님이 아닌 객관적인 대상의 하나님을 마귀요,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였다(요한복음 8장 44절). 전체성의 하나님(부처님)은 이원성의 탐욕, 분노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탐진치의 삼독 때문에 가려진다. 우리의 본래 성품인 전체성의 파란 하늘(신성, 불성)이 흘러가고 있는 구름(에고)에 가려져 있는 것과 같다.

하나의 진리 차원에서 볼 때 본질적인 인간의 마음(신성한 씨)은 죄인이 아니라 고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며 잘 가꾸어야 할 옥토이다.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이 몸 이대로 어디에 있든 이미 구원받았기에 감사하다’는 것이어야 한다. 임제 선사는 ‘자신이 이미 하나님(부처님)이라면, 앉아있는 곳은 어디든지 천국(극락)이다’(임제록)고, 황벽 선사는 ‘조건부의 감사가 아니라 참된 생명 속에 그대로 감사이며 ‘나’, 오직 예배할 뿐이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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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하나님 외 다른 것이 없으며’(마가복음 12장 32절), 거듭날 때 지금 여기에서 충만하게 있는 천국(신성)을 체험할 수 있다(요한복음 3장 3절)고 한다. 불경에서도 ‘모든 것이 다 부처님(극락) 아님이 없다’(관무량수경)고 하여 ‘하나의 진리’(일원론)을 설명하고 있다. 일원론은 현대물리학에서 ‘에너지가 곧 물질이요, 물질이 곧 에너지이다‘는 것으로 증명하고 있으며, 하나님(부처님)과 인간은 평등 무차별하다(화엄경). 구원(천국)은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아담의 타락에 따른 예수의 대속을 믿어야 한다는 이원론의 교리는 하나의 진리를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우주 만유는 오직 하나의 신성(불성)뿐이며, 인간의 본래성품인 신성의 생명은 옥토의 마음(신성한 씨)이다. 자기의 본래 마음(신성, 불성)이 무한한 사랑, 지혜, 만능을 갖추고 있는 ‘예수의 마음’, ‘부처의 마음’과 둘이 아님을 자각하는 자는 지금 여기서 좋은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된다, 우리는 지금 범부로 보이지만, ‘하나의 진리를 깨달은 자’(원)가 볼 때 신성(불성)으로 보이는 존귀한 자이며(천상천하유아독존), 기도와 참선을 통하여 본래 마음을 회복하여 생사해탈의 행복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구자만 박사(개신교장로· 신흥지앤티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