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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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원 이야기 하나 – 어느 옛 암자

호젓한 암자에서 스승과 제자가 단둘이 살았다. 어느날 스승님이 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동안 눈에 거슬렸던 나무를 옮기자는 것이다. 열심히 땀을 뻘뻘 흘려가며 정성을 다해 옮겼다. 며칠이 지났다. 뿌리를 내렸는지 차츰차츰 잎이 생기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스승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저 자리가 아닌 것 같다면서 다시 옮기자고 했다. 그래서 또 옮겼다. 얼마 후 시들시들 하던 나무는 결국 죽었다. 나무가 죽은 것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이제 힘든 삽질을 더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에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며칠 후 또 곡갱이를 가지고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뛰어갔더니 이번에는 바위를 저쪽으로 옮기자는 것이였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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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마야사. 사진 원철 스님
청주 마야사. 사진 원철 스님

2. 정원이야기 둘 – 청주 마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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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교외 마야사는 새로 창건한 절이다. 어느 화가의 아뜰리에를 인수했다. 기존의 기본 조경을 존중하면서 거기에 당신의 취향을 더하여 10여년 동안 정원을 가꾸었다. 스스로 ‘가드너’(정원사)라고 부르며 정원관리를 수행 삼아 정원관리를 했다. 주변 경험자에게 묻기도 하고 조경잡지도 정기구독하고 정원에 관한 책도 다수 읽고 좋은 정원이 있다고 하면 수시로 찾아 다녔다.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도량이 안정감을 더했다. ‘힐링사찰’로 유명세도 그만큼 늘어났다. 이런저런 정원가꾸기 체험을 모아놓은 책도 서너권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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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마야사. 사진 원철 스님
청주 마야사. 사진 원철 스님

제일 큰 일은 풀과의 전쟁이라고 했다. ‘풀 코스’를 완주하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 또 기존의 나무와 나무가 너무 가까워 서로에게 방해되면 과감하게 잘라냈다. 제갈공명의 ‘읍참마속’보다 더 가슴 아픈 ‘내 팔을 잘라내는’ 고통이 뒤따르더라고 했다. 작은 나무들은 어울릴만한 자리로 옮겨 심었다. 옮기는 비용은 새로 나무를 사서 심는 비용에 비할 바가 아닌 엄청난 지출을 요구했다. 이식한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또 옮기다보면 죽는 경우도 더러 있기 마련이다. 차라리 그대로 둔 것만 못한 시행착오도 숱하게 치렀다. 입구의 빽빽한 참나무 동산은 과감하게 솎아내고 등성이 부분의 큰 나무만 일렬로 남겼다. 무조건 있는 그대로 두는 보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도 몸으로 배우게 되었다. 큰 은행나무의 튼튼한 가지에는 그네의자를 매어 두었더니 어린아이와 함께 오는 젊은 엄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산청 수선사. 사진 원철 스님
산청 수선사. 사진 원철 스님

3. 정원이야기 셋 – 산청 수선사

절집에서 개인정원의 원조라고 한다면 산청 수선사라고 할 것이다. 30년을 가꾼 조경으로 인하여 지역사회의 유명관광지가 되었고 입소문을 타고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소문대로 구석구석 손길 닿지않는 곳이 없었다. 다듬지도 않고 칠도 하지 않는 비규격적인 모양의 나무다리 그리고 너와를 올린 천연덕스런 정자가 어우러진 연못공간을 중심으로 하여 주변에는 잔디, 나무, 꽃, 자연석들이 적절하게 어우러지면서 찾아오는 이들에게 ‘힐링’ 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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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너 스님과 차를 한 잔 나누면서 그동안의 경험담도 들었다. 혹여 볼일이 있어 바깥으로 나가더라도 당일로 돌아왔다고 한다. 잡초를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쌓인 풀일거리는 곱절로 힘을 들여야 하는 까닭이다. 특히 여름에는 앞쪽에서 풀을 뽑으면서 지나가면 벌써 뒤쪽에서 풀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풀을 뽑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마음의 번뇌를 제거하는 수행으로 이어졌다. 현재의 아담한 넓이가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정원면적의 최대치라고 했다. 더 커지면 정원이 아니라 농장이 될 것이다.

순천 선암사. 사진 원철 스님
순천 선암사. 사진 원철 스님

3. 정원 이야기 마지막 – 순천 선암사

올봄에는 매화구경도 못가고 벚꽃놀이도 없이 보냈다. 봄 끝자락이지만 길을 나섰다. 순천지역에 생활 근거지를 두고 있는 오래 된 인연들과 ‘한국제일의 사찰조경’이라는 선암사를 찾았다. 유명한 ‘선암매’ 고목들이 흙기와 담장을 따라 줄을 지어 선 채 연푸른 잎새를 달고서 우리를 맞이한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매화를 대신한 ‘겹벚꽃’이 만개한 장관을 연출했다. 홑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주고도 남는다. 이제 나이 탓인지 은은한 빛깔엔 무덤덤해지고 강렬한 색감이라야 몸이 겨우 반응을 한다. 겹벚꽃의 강렬함은 홑벚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찐한 감동을 주는 것은 큰 키를 가진 붉디 붉은 영산홍이다. 한 점의 잎도 없이 꽃을 가득 달고서 서 있다. 아랫쪽 줄기와 가지에는 군더더기가 한 점도 없다. 그건 오랜 시간동안 가지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부지런한 손길의 반영을 의미한다. 감동을 주는 일은 그냥 되는게 없다. 무채색의 빛바랜 한옥 고택건물과 대비되면서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한동안 발길을 붙들어 맨다.

글 원철 스님(불교사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