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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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장 31절-32절)고 말씀하셨다. ‘진리(One)를 안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깨닫고, 진리와 하나(One)가 되는 것이며, 또한 이 때 둘이 아닌 절대적 차원의 참나(신·神)가 되어 자유를 누리게 된다.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를 통해 시공을 초월한 참나(One)는 물질적 존재가 아니라 근원적으로 존재 자체(진리)인 그리스도(부처)임을 자각하여야 하며(요한복음 15장 27절), 이러한 절대차원(One)을 체험하면 삶 전체는 구원의 기쁨과 사랑으로 넘치게 된다.

불교의 ‘성스러운 구함의 경’에서는 ‘사성제(四聖諦: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알지니 이 진리가 너희를 피안으로 인도하리라’고, 우빠니샤드는 ‘아트만(神)과 내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님을 앎으로써 해탈을 이룬다’고 한다. 이때 자신을 육체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거짓 나(ego)의 속박(감옥)에서 벗어나, 참나(One)를 회복하여 욕망, 두려움, 고통 등에서 영원히 자유롭게 된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다양성의 거짓 믿음을 벗어나 온전한 하나(One)가 되는 것이며, 본래 성품(신·神)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자유롭게 하는 진리는 신(부처)과 합일하는 부활의 체험이며, 죽음을 맛보지 않는 불멸(不滅)의 경지이다.

진리는 주객, 희비의 상반되는 쌍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하나의 경지이며, 양자역학의 주객이 둘이 아니라는 ‘관찰자 효과’(입자와 파동)로서 증명되고 있다. 즉, 해탈의 체험으로 ‘일체 걸림이 없는 자는 단박에 삶과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화엄경). 우리는 내적 평정의 획득 방법인 명상(기도)을 통하여 개체적인 나(거짓 나)로부터 본래의 보편적 생명(참나)을 회복하여 절대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주위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또한 완전히 깨어난 의식(One)으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며, 꿈과 같은 현상계로부터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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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자유인은 진리(대아·大我)를 바로 깨닫고, 시공간의 인과법칙에서 비롯된 ‘모든 고통과 욕망’(소아·小我)으로부터 벗어난 자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본 공자는 칠십이 되어 대 자유의 경지인 대아(참나)가 되었기에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해도 도리에 벗어남이 없다’(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하였다. 이렇게 모든 현상을 하나(One)로 바라보는 것만이 변화하는 것들에 대한 ‘순리로서 흥하게 하는 삶이며, 노자의 ‘온갖 것들과 겨누는 일이 없는 훌륭한 물처럼 되는 것이다’(상선약수上善若水). 부처는 일체의 상(相)을 여윈 공(空), 그러면서도 동시에 일체의 상(相)을 수용하는 공(空)의 지혜를 통해 진리의 자유를 찾았다. 이러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물질(色)이란 연기의 이치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므로 공(空)과 같으며, 만물의 본성인 공(空)은 인연에 의하여 물질(色)로 존재한다는 것으로(마가복음 4장 22절), 공(空)과 색(色)이 둘이 아닌 절대세계이다(이사무애·理事無碍).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눈에 보이는 물질(色)이 곧 눈에 안 보이는 에너지(空)와 같다’(E=mc²)고 하였고, 우주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으며, 집적된 형태가 물질(色)이고 약한 부분은 빈 공간(空)이라고 한다. 따라서 진리(One)를 깨닫고 보면 色(형상)이 바로 空(영원)이요, 공(空)이 곧 색(色)이다. 노자는 대 자유의 절대경지(One)인 도(道)와의 합일을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장자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음양의 조화를 파악하여 무궁한 경지에 노니는데 무엇에 의지함이 있겠는가!(소요유·逍遙遊)’라고 자유로운 道(One)를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나’라거나 ‘나의 것’이라는 이기적인 에고(거짓나·ego)의 감옥을 벗어난 자 즉 지각된 대상에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는 보편적 진리를 아는 자(참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구자만(신학박사·개신교 장로·신흥지앤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