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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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여라.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부처를 죽이라니, 스승을 죽이라니. 모든 생명에 폭력과 살생을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붓다가 내린 오계 중 첫째 덕목이다. 그런데 그 제자인 임제 선사는 붓다를 만나면 망설이지 말고 죽이라고 말한다. 또 지고한 인품과 지혜를 가진 그 어떤 스승일지라도 만나게 되면 가차 없이 죽이라고 말한다. 상식과 윤리를 저버리는 무지막지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궁금하지 않은가? 임제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또 이상하지 않은가? 임제의 이런 선언을 지금 불자들이 탁월한 안목이라고 인정하는지. 여기에 <전등록>에서 말하고 있는, 목불을 태워버린 단하소불(丹霞燒佛)의 고사를 드러내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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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하 선사가 어느 절에 하룻밤을 지내려고 하는데 너무 춥다. 그래서 법당의 목불을 태워 따뜻하게 잤다. 다음날 이를 발견한 스님들이 노발대발 단하를 다그친다. “부처를 태워 사리가 나오는지 보려고 했소” “아니, 어떻게 목불에서 사리가 나온다는 게요” 단하의 의도가 환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물질과 권세와 명예에 갇히는 것도 위험하지만, 견해와 신념에 갇히는 것은 더 위험하다. 견해와 신념은 특정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게 한다. 보라, 이념과 문자에 갇혀 무오류를 주장하는 학자와 운동가와 종교인들을. 또 보라, 유튜브 채널이나 시위 현장에서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경직과 과잉, 그 위험성이 떠오른다. 붓다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진리에 의지하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임제는 한발 더 나아가 붓다의 의중을 확연하게 전했다. 살불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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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말한다. 그러하자면, 우리가 그 진리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하지 않겠는가.

글 법인 스님(지리산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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