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다루는 책을 쓴 김동현 작가의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다. 지금까지 우주선을 타고 지구를 벗어나 우주를 다녀온 사람의 숫자가 500명이 좀 넘는다고 한다. 우주 공간에서 그들은 거대한 내적 충격을 동반한 공간 경험을 했다. 찬란한 별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경이로움과 함께 무한한 검은 우주에 대한 공포감을 느꼈다고 한다. 우주 속의 한낱 작은 먼지에 불과한 지구, 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푸른 별 지구를 바라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최대치를 체험했다.
지구로 귀환한 그들을 조사했더니 체험담과 이후 삶의 스토리에서 놀라운 공통점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구로 돌아온 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직업을 바꾸었다. 그리고 인생관이 두드러지게 바뀌었다. 가치의 대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그들은 포용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전과는 달리 타인에 대해 관대하고 평화적인 사람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했다. 지구 바깥의 공간에서 자신의 좁은 틀과 시야가 변화된 것이다. 한번 상상력을 동원하여 먼 우주 공간에서 지구를 바라보자. 우주의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한 작은 별 지구 위에 온갖 국경선과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을 만들고 서로 싸우며 다투는 인류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우리 각자는 자신의 박스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 박스는 자신이 몸담은 시간과 공간에서 형성된 모든 경험과 기억과 관념들로 구성된다. 사람마다 박스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편협한 개구리의 관점을 가지고서도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이며 언제나 옳다고 여기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논란이 되기도 하는 혐오와 차별 역시 자신의 박스에 갇힌 속 좁은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어떻게 자신의 박스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첫째는 멈춤이다. 질주하는 자동차처럼 달리고 있는 삶과 일상의 흐름을 잠깐 멈추는 일이다. 이 멈춤은 고요와 정적을 일으킨다. 나아가 우리를 피정으로, 명상의 자리로, 성찰의 경험으로 안내한다. 자연의 음향 풍경을 기록하는 음향생태학자 고든 헴프턴은 이렇게 말한다. “정적은 무언가의 부재가 아니라 모든 것의 존재함이다.” 홀로 있는 순간을 가질 때 자신의 박스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고 그것이 허상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타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자신의 틀을 벗어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박스, 나보다 더 큰 박스, 다른 에너지장을 지니는 박스를 경험할 때 나의 박스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한다. 경청은 다른 이의 존재를 존중하는 것이요, 나의 박스를 열어젖히는 거룩한 혁명이다.
빅히스토리를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나의 작은 스토리와 우리 역사도 중요하지만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 넓은 시야가 열린다. 주어진 박스를 벗어나 자신을 바라보는 이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자기 배려만이 아니다. 타자 역시 배려한다. 박스 해체하기, 이는 평화의 출발점이다.
황산 인문학 연구자·씨올네트워크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