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프레더릭 와츠가 그린 <희망>(Hope·1886년작)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두 눈을 붕대로 감은 한 여인이 낡은 류트(기타와 비슷한 고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여인은 미지의 별 위에 앉아 슬픈 듯이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자세히 보면 현이 다 끊어져버리고 마지막 남은 한 줄을 만지며 연주하고 있다. 멀리서 아주 작은 별빛 하나가 빛나고 있다. 절대 절망의 이미지를 자아내는 이 그림에서 우리는 희망의 낯선 기호를 발견하게 된다. 점점 줄이 끊어지고 줄곧 실패가 반복되었지만 아직 한 줄이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현 하나마저 끊어질 때까지 노래를 멈추지 않는 그 몸짓 속에 희망의 진정한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이 점점 우울해지고 무기력감을 느낀다. 이런 때일수록 내면의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희망의 빛줄기를 열고 지탱하는 방법이 있을까? 그 첫째는 말을 바꾸는 것이다. 체념과 불평의 말을 던져버리고 긍정과 상호 응원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이다. 둘째는 실천이다. 자신의 몸을 움직여 실행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
나는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러스킨의 일화를 좋아한다. 비 오는 날 그는 진흙탕 길을 힘겹게 걸어 강의실로 갔다. 학생들 역시 질퍽이는 길을 걸어와 강의실이 어수선했다. 강의를 시작하자 곧 러스킨은 학생들에게 물었다. “오늘 비가 내려 강의실로 오는 길에 우리는 매우 곤란을 겪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한 학생이 대답했다. “그 길을 고쳐야지요.”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당장 나가서 길을 고칩시다.” 러스킨은 강의를 중단하고 학생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그 길을 반듯하게 고쳤다. 실천의 중요성을 이처럼 강력하게 가르친 강의가 어디에 있을까? 이후 그 길을 ‘러스킨의 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년 전 우리 가족은 실천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을 경험했다. 아들이 저녁 산책길에서 주머니에 끼워둔 가죽장갑을 잃어버렸다. 나는 아들을 되돌려 보냈다. 결코 찾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며 귀찮아했지만 산책한 경로를 따라 갔다 오게 했다.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내가 나섰다. 아들이 걸었던 길을 지도를 통해 확인하고 다시 그 길을 추적했다. 경로를 아는 이상 확률이 높다고 보았다. 게다가 누가 이 코로나 시대에 다른 사람의 장갑을 주워 가서 자기 손에 끼겠는가? 집에서 150m 떨어진 빵집 앞 보도블록 위에 떨어져 있는 장갑을 발견했다. 기적처럼 장갑이 되돌아왔다. 집안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기적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건 기적이 아니다. 확률 게임의 일종이다. 그보다도 나는 이것이 실천의 힘이라고 믿는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정지한다. 하지만 무언가 행동하면 그 행동이 상황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때로는 가시적인 성과를 얻을 수 없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실천했다는 그 흔적을 자기 몸에 지니게 된다. 희망은 작은 실천을 통해 밝아진다. 그 작은 몸짓이 희망이다.
황산/인문학연구자, 아트앤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