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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 뒤 깨달은 것들…‘그대 없음’을 더이상 감추지 않습니다

등록 :2021-04-19 13:53수정 :2021-04-19 15:00

사별 경험 책으로 낸 4인 권오균·이정숙·김민경·임규홍씨
정신적 스트레스 1위 배우자 사망…배우자 먼저 보내고 마주한 삶
“네가 복이 없어서” 편견·무시…홀로 자녀 키우는 어려움 이중고
상실 후 깨달은 것들 “이토록 가버릴 줄 알았다면 더 행복하게 살걸”
사별자들이 생전의 배우자와 사진을 찍을 때 자주 하던 포즈를 각자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오균·이정숙·김민경·임규홍씨. 조현 기자
사별자들이 생전의 배우자와 사진을 찍을 때 자주 하던 포즈를 각자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오균·이정숙·김민경·임규홍씨. 조현 기자

살다 보면 원치 않은 고통에 직면할 수 있다. 시험에 낙방하거나 해고·실직을 당할 수도 있고, 질병이나 사고·상해로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 워싱턴의대의 토머스 홈스와 리처드 라헤 교수가 정신적 충격에 따른 스트레스 점수를 매긴 적이 있다. 해고 47점, 질병 53점, 감옥 수감 63점, 이혼 73점 등이다. 최고의 스트레스 점수인 100점은 배우자의 죽음이다.

특히 노화로 인한 자연사가 아니라 사고나 질병으로 갑작스레 사별한 이들은 배우자의 육체적 죽음과는 다른 정신적인 극심한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그런 비극적 아픔의 사례는 희귀병처럼 드문 게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늘 발생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음을 입 밖으로도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적 충격에 따른 여러 후유증에다 사회적 편견에까지 맞서야 하는 사별자들은 감당해내기 어려운 고통에 ‘또 다른 죽음’을 경험한다.

그런 사별자들이 그 아픔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인터넷 사별 카페에서 만나 아픔을 나누다가 의기투합한 4명이 <나는 사별하였다>(꽃자리 펴냄)를 출간했다. 결혼 32년 만에 암으로 아내를 잃은 임규홍(65) 교수, 결혼 22년 만에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약사 이정숙(49)씨, 결혼 17년 만에 간암으로 남편을 보낸 초등학교 영어 전담 강사 김민경(50)씨, 결혼 16년 만에 난소암에 걸린 아내와 사별한 어학원 연구개발팀장 권오균(49)씨다. 최근 경기도 의왕시의 한 교회에서 이들을 만났다.

감당할 수 없는 아픔

암으로 배우자를 잃은 세 사별자는 암 투병 중인 배우자가 생사를 넘나드는 과정을 함께하면서 이미 파김치가 됐다고 한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서도 기적을 고대했으나,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환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이들에게 당하는 고통까지 가중됐다. 권오균씨는 “간증치유집회에서 무조건 믿음으로 간증해야 병이 낫는다고 해서 아내는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시겠다고 했다’고 간증을 한 뒤 죽어갔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나마 사투를 벌일 때는 함께여서 견딜 수 있었지만, 배우자가 떠난 뒤 그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김민경씨는 “유일하게 잠을 잘 때만 아픔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잔 것 같아 깨어나 보면 30분밖에 지나 있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사별 뒤 명절 때 시가에 갔다가 남편을 닮은 형제들은 있는데 정작 남편은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방 한구석에서 남몰래 통곡하다가 시어머니에게 들켰다. 집에 돌아온 그는 ‘슬픔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아 다음 명절부터는 아이들만 보내겠다’는 문자를 보냈고, 시어머니도 이해해주었다. 그는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과 짬뽕을 시켜서 마치 남편과 마주 앉은 것처럼 한 그릇을 앞에 두거나 소주를 두 잔 따라 놓고 홀로 건배를 하며 상실감을 달래곤 했다.

임 교수는 “멀리 특강을 갈 때도 운전을 해주는 등 늘 엄마처럼 돌봐주던 아내가 사라지고 나니 내가 마치 고장난 차처럼 변해버린 것 같았고, 죄인이 된 것 같아 사람들도 만날 수가 없었다”고 고백했다.

사별동기는 함께 비를 맞고 아픔을 나누면서 강한 유대감으로 서로를 치유한다. 조현 기자
사별동기는 함께 비를 맞고 아픔을 나누면서 강한 유대감으로 서로를 치유한다. 조현 기자

사회적 편견까지 이중고

사별자들은 상실의 고통에다 사회적 편견에까지 맞서야 한다는 게 그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임 교수는 “여성 사별자들이 시집에서 ‘네가 복이 없어서 내 아들이 죽었다’는 어른들의 악담으로 또 한번 충격을 받곤 한다”고 전했다.

사별 뒤 2주 만에 새로운 학교로 발령을 받은 김민경씨가 동료 교사들에게 사별 사실을 말하지 못한 것도 편견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였다. 그는 교사들 사이에서 가족에 관한 대화가 나올 때마다 움츠러들었고, ‘영혼 없는’ 대답을 하느라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이정숙씨는 41살에 과부가 된 엄마가 홀로되어 겪는 일들을 지켜봤기 때문에 남들의 편견 어린 시선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남편이 죽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누군가가 남편에 대해 묻자 “외국에 장기 출장을 갔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왜 그런 거짓말을 했는지’ 후회하며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뒤 아는 언니와 왈츠학원에 갔을 때 다른 수강생이 “왜 남편과 함께 오지 않느냐”고 묻자 “사별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이에 너무도 당혹해하는 그 수강생을 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삶이 왜 이렇게 거지 같은 거야?”라며 엉엉 울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그는 사별을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상태에선 사별을 딛고 일어서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번에 공동 필자들에게 “나는 사별하였다”라고 당당히 고백하는 선언을 책 제목으로 삼자고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정숙씨의 남편 1주기 추모제. 이정숙씨 제공
이정숙씨의 남편 1주기 추모제. 이정숙씨 제공

한줄기 빛이 된 사별 카페
 

사별자들은 집중력 장애, 몸살, 불면증, 대상포진 등 온갖 후유증을 앓았다. 그런 이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찾은 한줄기 빛이 바로 인터넷 사별 카페였다. 김민경씨는 “불면증으로 잠 못 들 때 사별 카페에 들어가면 한밤중에도 글이 올라온다. 같은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올린 글을 보며 아픔을 나눴다”고 했다.

비슷한 시기에 사별한 이들을 카페에선 ‘사별동기’라고 부른다. 사별동기들끼리는 더 강한 유대감이 있다. 사별동기들은 등산이나 독서 모임, 하루 만보 걷기 등을 하며 무너진 일상을 조금씩 회복해갔다. 자녀가 없는 권오균씨는 휴일에 집에 홀로 있을 때 특히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다. 어느 날 밤 극심한 우울감을 느낀 그는 이를 사별동기 단체 대화방에 고백했다. 그러자 그들이 밤 10시에 모두 나와 외로움을 달래줘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사별 카페에선 ‘슬기로운 과부생활’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조금씩 치유돼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민경씨가 카페지기로 있는 사별 카페.
김민경씨가 카페지기로 있는 사별 카페.

또 하나의 아픔, 사별자 자녀

사별자들은 양육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나 아빠를 잃은 아이의 상실감 또한 심각하다. 아빠를 잃은 아이는 잠자는 엄마가 숨을 쉬는지 확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고아가 될까 두려워하며 남은 부모의 생존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아이도 사회적 편견으로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정숙씨는 10살 때 아빠의 죽음을, 20살 때 엄마와 할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는 “‘아비 없는 자식’이란 소리를 듣지 않게 행동하라는 엄마의 말을 따르느라 ‘바른 생활 어린이’로 행동하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이어 “아빠가 죽은 게 아이 잘못도 아닌데, 세상의 편견까지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 가혹하다”며 “충고보다는 한번의 포옹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특히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죽음을 아이에게 말해주지 않거나 ‘아빠가 외국에 출장 갔다’는 식으로 거짓말을 하면 상처가 더 깊어진다고 한다. 따뜻하고 솔직하게 말해주고, 부모 중 누군가가 죽어도 아이의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해줘야 한다는 게 사별 선배들의 조언이다.

내미는 손, 받아주는 손

사별자들은 스스로 슬픔에 빠져 부모·형제도 상실의 슬픔을 겪는다는 것을 간과할 때가 많다. 이정숙씨는 “10살에 아버지를 잃었을 때는 너무 어려서 뭘 몰랐다 쳐도, 20살에 엄마와 할머니를 동시에 잃었을 때는 주위의 도움이 필요했는데도 언니들이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아 괜찮은 척했다”고 말했다. 그는 47살에 남편과 사별했을 때는 다르게 행동했다. 살아야겠기에 자신을 위로하는 이들을 거절하지 않고, 슬픔을 감추지도 않는 쪽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사별 15년차인 지인을 찾아가 품에 안겨 서럽게 울었다. 또 이웃 부부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받아들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밥을 삼켰다. 매일 안부를 묻는 언니들의 전화를 받고, 친구들과 여행도 갔다. 그는 “사별자의 형제자매와 이웃들은 사별자를 어떻게 도우면 좋을지 여러 차례 반복해서 구체적으로 묻고, 사별자들도 이들의 손을 뿌리치지 말고 받아주어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권유했다.

권오균씨는 요즘도 아내와 찍은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권오균씨 제공
권오균씨는 요즘도 아내와 찍은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랜다. 권오균씨 제공

상실 후 깨달은 것들

사별자들은 “이토록 빨리 가버릴 줄 알았다면 좀 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민경씨는 “직장 생활이 힘들다고 하소연하면 ‘힘들면 언제든 사표 써’라고 말해주는 내 편이 아무도 없는 세상에 버려진 느낌”이라며 “그때는 그걸 당연하게만 생각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임 교수는 “이렇게 일찍 갈 줄 알았다면 돈 한푼 쓰는 데 벌벌 떨지 말고 더 충분히 즐길 걸 그랬다”며 “이제 하고 싶은 건 미루지 않고 당장 한다. 얼마 전 제주 한달 살이도 했다”고 했다.

이정숙씨는 “남편이 남긴 메모를 보니 할 필요 없는 고민의 흔적들이 있었다”며 “그렇게 떠날 줄 알았더라면 쓸데없는 고민을 하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에겐 시간도, 통장 잔고도 있었는데, 가지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느라 가진 것들을 놓쳐버렸다”며 “남편도 나도 부족함 많은 사람이지만,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더 누리고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함께 있음을 소중히 여기고 더 행복하게 누리라는 게 이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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