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에서 난민팀 역대 첫 메달리스트가 탄생한다. 11살에 카메룬을 떠나 영국에서 복서의 꿈을 키운 신디 은감바(25)가 그 주인공이다.
은감바는 4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의 노스 파리 아레나에서 열린 여자 복싱 75㎏급 8강에서 프랑스의 다비나 미셸에게 5-0(30-27 30-27 29-28 30-27 29-28)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이에 따라 은감바는 최소 동메달을 확보했다. 올림픽 복싱은 동메달 결정전을 따로 치르지 않고 준결승에서 패한 선수 두 명 모두에게 동메달을 준다.
은감바의 메달은 난민팀의 역대 첫 메달이기도 하다. 난민팀은 2016 리우올림픽 당시 처음 구성돼 2020 도쿄올림픽, 2024 파리올림픽까지 세 차례 연속 출전했지만 그간 메달은 획득하지 못했다. 2024 파리올림픽에 난민팀으로 출전한 선수는 육상, 수영, 태권도 등 12개 종목 37명이다. 이들은 시리아, 이란, 에티오피아, 아프가니스탄, 수단 등 출신으로 내전 등으로 난민이 됐다.
올림픽 누리집 인터뷰와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 보도를 보면, 카메룬에서 태어난 은감바는 축구를 좋아하는 활발한 아이였다. 비닐봉지, 양말, 천 조각 등 주변에 있는 재료로 공을 만들어 차곤 했다.
그는 11살이던 2009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고, 서류 문제로 수용소로 보내지면서 영국에서 추방당할 뻔하는 등 어려움을 겪으며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했다. 이때 복싱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그는 우연히 동네 아이들이 복싱하는 모습을 보고 관심을 갖게 돼 15살에 복싱을 시작했고, 빠르게 유망주로 성장했다.
성소수자인 은감바는 2021년 난민으로 인정됐다. 그는 18살 때 커밍아웃했는데, 동성애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카메룬으로 돌아가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공개된 ‘나이키’와 인터뷰에서 은감바는 “난민 운동선수도 다른 선수들과 똑같다. 신분 증명 서류나 시민권이 다르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라고 말했다. 은감바는 “복싱 링에 처음 올랐을 때 압도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굉장히 들떴다”며 “그때 나는 복싱을 위해 태어났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이키는 올림픽 난민 재단과 협력해 난민 선수를 후원한다.
은감바는 영국 대표팀과 함께 훈련했지만, 시민권을 부여받지 못해 2024 파리올림픽에 난민팀으로 출전했다. 그는 개막식에서 난민팀 기수로 오륜기를 들고 입장하기도 했다.
동메달을 확보해둔 은감바의 목표는 금메달이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음 경기에서 해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은감바는 한국시각으로 8일 오전 5시18분 파나마의 아테이나 빌론과 결승 진출을 두고 맞붙는다.
은감바는 2024 파리올림픽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지은 뒤 언론 인터뷰에서 “난민 최초로 메달을 따게 된 것은 내게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난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전 세계 모든 난민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계속 열심히 하고, 자신을 믿으세요.”
김윤주 기자 k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