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이 잘해서 너무 기특했고 같은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결승에서 간발의 차로 금메달을 놓쳤지만, 여자 사브르 대표팀 맏언니 윤지수(31)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후배들을 이끌고 출전한 세번째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 사브르 역사상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화려한 퇴장을 준비하고 있다.
윤지수, 최세빈(23), 전하영(28), 전은혜(27)로 구성된 여자 사브르 대표팀은 4일 밤(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단체전에서 우크라이나를 만나 석패했다. 42-45, 단 석 점 차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표팀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윤지수에게 이번 올림픽은 마지막 도전이었다. 여자 사브르 대표팀은 2016 리우올림픽 단체전에서 5위에 올랐고,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윤지수는 여자 사브르 대표팀의 성장 그 한가운데 있었고 마침내 파리에서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윤지수는 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과 만나 “한국 여자 사브르 최초로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이 모든 세대를 거슬러 제가 후배들과 함께 은메달을 목에 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 올림픽에서는 피스트 위가 아닌 아래에서 헌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혀 아쉽지 않다”며 “이 친구들이 앞으로는 다음 올림픽을 가야 한다. 제가 그 자리를 욕심을 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 올림픽에서 후배들이 금메달을 딸 수 있게 선배로서 도와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윤지수는 이날 결승전에 나서지 않았다. 금메달이 걸린 중요한 자리였지만, 후배인 전은혜에게 먼저 출전을 권했다. 다음 올림픽에서도 도전을 이어가야 하는 후배에게 자리를 양보한 셈이다.
전은혜는 경기가 끝난 뒤 “언니가 먼저 교체를 하고 싶다고 얘기해줬는데 그게 너무 고마웠다. 저를 믿고 ‘은혜야 네가 들어갔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대표팀의 은메달은 한국 여자 사브르 역사상 최고 성적이기도 하지만,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윤지수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이번 대회가 첫 올림픽이었다. 윤지수에게는 후배들을 이끌고 도쿄올림픽에서의 동메달을 넘어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윤지수의 역할은 파리에서 끝났지만, 대표팀은 값진 은메달을 따내며 다음을 기약할 힘을 얻게 됐다. 한국 펜싱은 이번 대회에서 남자 사브르 단체전·개인전(오상욱)에서 금메달을,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 총 3개의 메달을 따냈다.
파리/장필수 기자 fee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