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Y 염색체’를 지닌 알제리 이마네 칼리프(25)와 대만 린위팅(28)의 파리올림픽 복싱 여자부 출전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두 선수의 출전 자격을 박탈했던 국제복싱협회(IBA)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우마르 크레렘프 국제복싱협회 회장은 3일(한국시각) 엑스(X)에 영상을 올려 칼리프와 이탈리아 안젤라 카리니(25)의 경기에 대해 “안젤라가 우는 것을 보고 참을 수 없었다. 여성 스포츠가 파괴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었다”며 “국제복싱협회는 여성 복싱과 남성 복싱을 명확하게 구분한다”고 했다. 그는 또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회장을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 “사악한 자”라고 부르며 “우리는 올바른 가치를 위한 성평등을 지지한다”고 했다. 그는 이날 영상 마지막에 “토마스 바흐는 기저귀 찰 준비를 하라”며 카메라를 주먹으로 치기도 했다. 국제복싱협회는 카리니에게 올림픽 금메달 포상금에 해당하는 상금(총 10만달러)을 수여하기로 했다.
크레렘프 회장이 이처럼 원색적인 말까지 쏟아낸 배경에는 두 기관 사이에서 계속된 갈등이 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2019년 6월 국제복싱협회의 재무 구조가 불투명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인증을 정지했고, 2023년 6월에는 인증 자체를 철회했다. 또한 이번 대회를 앞두고 국제복싱협회가 별도 포상금 지급 계획을 밝히자, “자금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라며 반대했다. 윤강로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 원장은 “세계복싱계가 별도 조직인 세계복싱(WB)을 출범해 기존 국제복싱협회 회원국 중 상당수를 흡수하고 있다”며 “크레렘프 회장이 인증 취소 등으로 악에 받쳐있는 듯하다”고 했다.
이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 입장을 보면, 이 논란이 국제복싱협회 때문에 촉발됐다는 인식도 엿보인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성별 문제에 대해 두 선수가 2023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격당하기 전까지 여러 국제대회 여성부 경기에 참여했다는 점 등을 들어 당시 국제복싱협회가 내린 결정이야말로 “부적절했다”고 말한다. “해당 결정은 국제복싱협회 회장과 사무총장이 단독으로 내린 것”이며 “모든 규정 변경은 적절한 절차를 통해 과학적 증거에 근거해서 내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친러시아 행보를 보여온 국제복싱협회가 서구권이 강조하는 성적 다양성 등을 내세운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상대로 일종의 문화적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러시아 국적인 크레렘프 회장은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가 국제대회 출전 금지를 당하자 이를 무마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지난 5월 푸틴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대표단에 동행했고,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전통적 가족 가치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며 “스포츠는 인간을 단결케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이라고 했다.
크렘린궁도 직접 입장을 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현지시각으로 2일 해당 경기에 대해 “국제 올림픽 운동이 체면을 잃고, 때로는 변태에 가까운 유사 자유주의적 표현의 희생자가 됐다”며 “러시아는 여전히 올림픽의 오랜 이상과 고전적인 올림픽 세계관을 지닌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더 선호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런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다”고 했다.
러시아는 올림픽이 가족의 가치를 파괴하며 참가국 전체의 전통적 문화를 존중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 등을 들어 모스크바와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일종의 대안 대회인 ‘세계우정게임’(World Friendship Games)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