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에릭 잭슨이 지난 13일 베이징 스피드스케이팅 원형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신화통신 연합뉴스
미국의 에릭 잭슨이 지난 13일 베이징 스피드스케이팅 원형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신화통신 연합뉴스

미국에서 2월은 ‘흑인 역사의 달’이다. 1976년 미국 연방 정부가 공인한 이래, 해마다 2월이 되면 미국 전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지난 14일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에서도 경기 시작 전 흑인들의 ‘비공식 국가’인 ‘모두 소리 높여 노래하라’(Lift Every Voice and Sing)가 울려 퍼졌다. 하프타임 공연자로 나선 힙합가수 에미넴은 공연 후 한쪽 무릎을 꿇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2016년 풋볼 선수 콜린 캐퍼닉이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한 사건에 대항해 경기 전 국가 제창을 거부하며 무릎을 꿇는 시위를 해 인종차별 반대의 상징이 된 동작이다.

그러나 겨울올림픽으로 눈을 돌리면 흑인 역사의 달은 무색해진다.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에 참가한 미국 선수단 225명 중 흑인은 7명(3.1%)뿐이다. 지난해 여름 도쿄올림픽에서는 627명 중 129명(20.5%)이 흑인 선수였다. 여기에는 케빈 듀란트(농구), 시몬 바일스(체조) 같은 슈퍼스타들도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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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베이징 대회 참가 선수 전체 명단으로 확대하면 숫자는 더 줄어들 공산이 크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참가 선수에 대한 인종 통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4년 전 평창겨울올림픽 통계를 들여다본 <버즈피드>의 분석을 보면 전체 2952명의 선수 중 43명만이 흑인이었다. 1.45%다.

공과 뛸 공간만 있으면 되는 종목이 아니다

겨울올림픽은 왜 이렇게 하얄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상식적인 원인은 기후다. 눈이 잘 내리지 않는 저위도 국가는 겨울 종목 인프라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이번 베이징 대회에 선수를 낸 아프리카 국가는 다섯곳뿐이다. 에리트리아, 가나, 모로코, 나이지리아, 마다가스카르. 그나마도 선수는 한명뿐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서구 국가 중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편인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의 선수단 인종 구성을 설명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경제적·사회적 접근성 격차를 지적한다. 지난 4일 애리조나 주립대 글로벌스포츠연구소장 케네스 슈롭셔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겨울스포츠는 공과 뛸 공간만 있으면 되는 종목이 아니다. 이 종목들은 어떤 경우 골프나 테니스보다도 더 많은 경제력을 필요로 한다”고 지적했다. 겨울스포츠는 비싸고, 이는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약한 흑인들의 진입을 가로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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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타주립대와 아스펜 연구소가 2019년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자녀를 아이스하키 선수로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연 2500달러(한화 약 300만원)이다. 스키·스노보드는 2249달러(약 270만원)가 든다. 전체 스포츠의 평균 비용이 693달러(약 83만원)이니, 3배를 웃도는 격차다. 지난해 미국 고등학생 6000명을 대상으로 아스펜 연구소의 또다른 조사를 보면 흑인 응답자 중 학교 밖에서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 본 적 있다고 답한 비율은 1%에 불과하다. 백인은 4%, 히스패닉은 0%다.

조던을 꿈꿀 순 있지만, 미셸 콴은? 

이 같은 환경은 문화적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접근성이 낮으니 흑인 커뮤니티에는 겨울 스포츠의 재미를 알려줄 사람도 없고, 우상도 없다. 마이클 조던과 르브론 제임스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공터에 나가 농구공을 잡고 미국프로농구(NBA)의 꿈을 꿀 수 있지만, 숀 화이트나 미셸 콴을 꿈꾸긴 어렵다. 이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지원과 우상, 둘 모두 필요하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겨울올림픽 5개 종목 엘리트 체육 진흥을 위해 장학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2014년 기준 전체 440명 중 이 혜택을 누린 흑인은 단 한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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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겨울올림픽 최초의 흑인 여성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가 된 에린 잭슨도 본래 인라인 스케이팅 선수였다. 24살 때 막연히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빙판을 선택했다. 그는 앞서 <유에스에이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그 어떤 것도 어린 소녀들이 천문학을 공부하지 못하도록 막지 않는다. 그들이 누군가를 보고 우주에 대한 꿈을 키웠듯, 나도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