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배지환. AP 연합뉴스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배지환. AP 연합뉴스

올해 메이저리그는 뛰는 야구가 대세다. 투수 주자 견제 제한(2회), 베이스 크기 확대(18인치) 등이 뛰는 야구를 주도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주자들에게 친화적인 규정’이라고 정의했다.

리그는 뛰는 야구에 능한 선수들이 유리해졌다. 한동안 파워에 가려졌던 스피드가 강력한 무기로 떠올랐다. 실제로 각 팀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공격적인 주루 플레이로 달라진 규정을 최대한 활용했다. 팀의 기동력을 높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 이전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으로 다가온 선수가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배지환(23)이다. 원래 배지환은 개막전 로스터 합류가 불분명했다. 그러나 피츠버그는 압도적인 스피드를 갖춘 배지환을 외면할 수 없었다. 배지환은 스프링캠프 19경기에서 팀 내 가장 많은 도루 4개를 기록했다. 피츠버그에 자신이 필요한 이유를 몸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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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환은 단순히 로스터에 포함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개막전부터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그 경기에서 배지환은 2안타 1볼넷 2도루로 종횡무진 활약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시즌 네 번째 출장에서는 메이저리그 통산 첫 홈런도 쏘아 올렸다. 심지어 장소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홈구장 펜웨이파크로, 악명 높은 그린 몬스터를 밀어서 넘겼다.

스타성도 과시했다. 배지환은 4월12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뜨렸다. 피츠버그가 경기 막판 동점을 허용한 상황에서 나온 귀중한 홈런이었다. 상대 투수가 지난해 월드시리즈에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아낸 마무리 라이언 프레슬리인 점도 이 홈런을 더 돋보이게 하였다. 경기 후 배지환은 “직접 끝내고 싶었다”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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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파이리츠 배지환. AFP 연합뉴스
피츠버그 파이리츠 배지환. AFP 연합뉴스

배지환은 휴스턴을 비롯한 강팀들을 상대로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5할 승률 이상 팀들을 만났을 때 성적이 23타수 8안타(0.348)로 더 좋았다. 4월27일 LA 다저스와의 경기에서도 이 면모가 드러났다. 배지환은 3안타 3도루로 다저스 배터리의 혼을 빼놓았다. 피츠버그 선수가 3안타 3도루 경기를 선보인 건 2010년 6월16일 앤드류 매커친 이후 약 13년 만이다. 이날 도루 3개를 더한 배지환은 4월이 지나기 전에 이미 두 자릿수 도루를 완성했다. 현지 시각 4월 마지막 경기에서 도루 하나를 더 추가한 배지환은 도루 11개로 4월을 마쳤다. 이는 피츠버그 개막 첫 달 역대 2위(1위는 1983년 리 레이시가 작성한 13도루)다.

피츠버그는 배지환의 스피드가 팀에 엄청난 에너지를 안겨준다고 바라봤다. 최근 팀 역사상 최초로 1억달러 계약을 따낸 브라이언 레이놀즈(28)는 “배지환이 누상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기반으로 팀이 역동성을 띠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츠버그는 팀 도루 41개로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시즌 초반 피츠버그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원동력은 바로 ‘러닝 게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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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배지환은 27경기에서 11도루를 성공시켰다. 시즌 62도루 페이스다. 한국 선수의 단일 시즌 최다 도루는 2010년 추신수의 22도루로, 이 기록은 전반기가 끝나기 전에 경신될 가능성이 크다. 참고로 현재 내셔널리그 도루 1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다. 아쿠냐는 도루 13개로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배지환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격차다. 지금까지 한국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공격 부문 타이틀을 획득한 적은 없었다. 주전 유격수 오닐 크루스(24)의 발목 골절로 출장 시간이 늘어난 배지환은, 도루의 전제 조건인 출루만 꾸준히 해낸다면 도루왕 타이틀을 노려볼 수 있다.

지난해 우리는 김하성(27)을 통해 수비의 가치를 깨달았다. 그리고 올해는 배지환을 통해 스피드의 묘미를 즐기고 있다. 그동안 한국 야수의 성공 기준이 오직 공격이었다면, 두 선수는 야구의 다양한 매력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배지환은 이번 시즌 메이저리그의 변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대변한다. 배지환의 야구가, 메이저리그가 추구하는 야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창섭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pbbles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