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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몸통 흔드는 꼬리’가 판교 발전의 동력

등록 :2021-04-09 05:00수정 :2021-04-0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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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남짓 펼쳐진 ‘모바일 시대’에 자주, 그리고 꾸준히 쓰는 용어가 있습니다. ‘플랫폼’이라는 단어죠. 사업적 측면에서 ‘사용자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터전’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스마트폰을 쥐고 무언가를 하는 시간은 점차 늘어왔어요. 길을 걷는 사람들이 ‘유동 인구’를 형성했다면, 이제는 모바일 환경 속 ‘트래픽’이 그 못지않게 중요해진 거죠. 마켓 셰어(Market Share)의 시대에서 타임 셰어(Time Share)의 시대로 바뀌어 온 겁니다. 사람들의 시간을 점유한 인터넷 기업들은 뭐든 다 해낼 기세죠.

앞서 열렸던 피시(PC)와 인터넷 시대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일상을 통째로 ‘컴퓨팅’ 하진 못했었기에 충격파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세계적으로도 스마트폰 등장 이후 인터넷 기업들의 위상은 훨씬 높아졌죠.

기존 대기업들 상당수는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모바일 플랫폼을 대단치 않게 생각했어요. ‘우리가 가진 매장들의 매출이 한국 소비 시장을 대변해. 온라인이나 모바일은 한계가 있지’, ‘그 조그만 스크린에 광고를 띄워? 콘텐츠 열람을 거슬리게 하는 날파리 같아’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죠.

지금 와서야 모바일 환경이 플랫폼과 동일시 되지만, 이만큼 큰 영향력을 이렇게 빨리 갖게 될 거라 짐작한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피시 시절부터 인터넷 업계에 종사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모바일 환경이 이렇게까지 중요해지리라 상상한 사람은 거의 없더라고요. 정통파 오프라인 플랫폼 사업자들은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겠죠. 이른바 언더도그(Underdog)로 보는 시선이었습니다.

플랫폼 비즈니스를 ‘한낱 앱(App)’으로 치부하던 기존 대기업들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우리도 앱이나 하나 만들어볼까?’라며 생각을 고쳐먹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비슷한 실패 사례들이 나왔습니다. 이용자에게 딱히 필요도 없는 기능을 살뜰하게 집어넣은 만물상식 서비스가 먼저 떠오르네요. 실사용자들은 외면했지만, 그 회사의 ‘힘 있는 부서’를 파악하고 싶을 때 유용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위치에 무슨 기능이 자리 잡았는지만 보면 됐으니까요. 하나의 앱에서 통합적으로 편하게 쓰고 싶은 기능들이 계열사별 여러 앱에 담기기도 했죠. 한 유통업체를 이용할 때 할인 쿠폰 앱과 결제 앱, 장보기 앱 등 세 가지를 따로 구동시켜야 했던 놀라운 경험이 기억납니다. 계산대 앞에 서서 앱 사이를 달리다 보면 한겨울에도 손끝이 후끈했어요.

비슷한 일은 공공 영역에서도 일어났죠. 여러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들이 내놓은 앱 중 괜찮은 반응을 얻은 게 얼마나 될까요. 1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만든 앱이 월간 이용자 수 ‘0명’을 기록했다는 뉴스를 보고 ‘그 돈 날 줬으면 멋진 서비스를 만들어서 실리콘밸리 벤처 자금을 끌어왔겠다’라고 생각했었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절실하지 않아서’가 결정적 요인 아니었을까요? 세상의 뿌리 깊은 불편함을 포착해 사업 기회로 삼은 스타트업들은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필사적인 기세로 덤볐어요. 반면 ‘앱 하나 해볼까’라는 쪽은 그걸 안 해도, 혹은 망해도 생계에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언더도그들이 오래 묵은 규제나 법률도 시대에 맞게 바꾸려던 모습과는 정반대였죠.

게다가 모바일 비즈니스는 시각적으로 작은 공간에서 펼쳐지다 보니, 그 생리를 잘 모르는 대기업들은 작은 앱 아이콘 뒤에서 수많은 운영진과 개발자들이 유지보수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그깟 앱’ 이라며 쉽게 본 거죠. 고착된 질서가 흔들리면서 모두의 삶은 조금 더 편해졌습니다.

어느새 대기업으로 성장한 인터넷 기업들도 많아졌습니다. 과거 스타트업일 때의 기민함은 많이 사라졌죠. 태생은 벤처지만, 이제는 모험을 회피하는 경우도 자주 보입니다.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진 기득권이 된 겁니다. 이런 약한 고리들을 신흥 강자들이 파고들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는 판교 기득권에 몸담고 있지만, 꼬리가 몸통을 흔들 때도 있어야만 모두의 삶이 조금씩 좋아질 테니까요.

아이티 기업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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