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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섬사람 생각하는 ‘유배’ 권하오

등록 :2020-11-27 07:59수정 :2020-11-27 08:45

유배와 성찰 권하는 남해안 섬 3
남해 노도·호도, 거제 지심도
경남 거제시 지심도로 들어오고 있는 여객선. 사진 강제윤 제공
경남 거제시 지심도로 들어오고 있는 여객선. 사진 강제윤 제공

‘구운몽’ 김만중이 머문 노도

어느 때부터 ‘자발적 유배’라는 단어가 유행어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자신을 스스로 유폐시켜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유배지로 섬이 당연하게 거론되는 것은 왠지 씁쓸하다. 유배는 죄지은 자들이 받는 형벌이고 유배지는 죄인들을 가두는 감옥이다. 그런데 어째서 자발적 유배지는 섬이어야 할까? 육지 사람들에게 섬은 여전히 감옥처럼 느껴진다는 뜻인가? 섬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응급 환자가 제때에 치료받지 못해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기도 하고 일 년에 100일씩 여객선이 끊기기도 하는 불편한 교통 속에서 살아가는 섬사람들. 실상 섬은 죄지은 자들의 감옥은 아닐지언정 죄 없이 무고한 자들의 감옥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섬은 자신을 스스로 유폐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공간이기도 하다.

경남 남해군 노도를 방문한 ‘섬학교’ 회원들. 사진 강제윤 제공
경남 남해군 노도를 방문한 ‘섬학교’ 회원들. 사진 강제윤 제공

남해의 섬 노도는 조선시대 대표적 한글 소설 <구운몽>의 작가이자 노론의 거두였던 서포 김만중(1637-1692)의 마지막 유배지였다. 서포는 끝내 노도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섬뿐만 아니었다. 조선은 경기와 충청을 제외한 모든 땅을 유배지로 활용했다. 그중에서도 섬들은 중죄인들의 유배지로 쓰였다. 서포는 소설가로 알려졌지만, 그의 정체성은 결코 소설가가 아니었다. 노론 명문가 출신의 정치인이었다. 문묘(공자를 모신 사당)에 배향된 동국 18현(문묘에 종사된 유학자 18명) 중 2명이 서포의 집안이었고 숙종의 첫 왕비 인경왕후는 조카였다. 서포도 대제학, 도승지, 예조, 병조 판서, 좌참찬, 우참찬 등을 역임한 최고 권력자였다. 서포는 그가 속했던 당파가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뒤 유배자가 됐다. 노도는 20여명이 살아가는 남해 앵강만 안의 작은 섬이다. 노도에는 서포가 살던 집터와 사후 잠깐 가매장되었다는 허묘 자리도 남아있다. 그런데 노도에서 전해지는 서포의 별칭이 유별나다. ‘노자묵고 할배.’ 유배 당시 노도 사람들에게 서포는 팔자가 좋아 일을 안 해도 놀고먹을 수 있는 신세 좋은 할배였을 뿐이다. 날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섬사람들에게 서포는 얼마나 부러운 대상이었을까? 감옥에 사는 유배자를 부러워했던 섬사람들. 유배를 자처한 나그네는 오늘 또 노도에서 어떤 존재인가?

가는 법 남해 앵강만 벽련마을 선착장에서 출항. 하루 4회 왕복. 9시·12시30시·14시30분·16시30분. 문의 선장 010-4045-2720·매월 둘째, 넷째 수요일 휴항.

호도에서 바라본 마을과 무인도. 사진 강제윤 제공
호도에서 바라본 마을과 무인도. 사진 강제윤 제공

작은 기차 모노리가 있는 호도

기차가 다니는 섬.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남해군 호도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짧은 철도가 있고 가장 작은 기차가 있다. 모노레일. 농사용이나 관광객을 위한 모노레일이 있는 섬들은 더러 있지만 호도의 모노레일은 오로지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아름답다. 7가구 11명이 사는 작은 섬 주민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들이라서 이들이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이어진 비탈길을 오르는 일은 힘겨웠다. 경상남도가 선착장에서 마을까지 모노레일을 깔아준 뒤 어르신들의 나들이가 한결 쉬워졌다. 호도 사람들은 이 모노레일을 ‘모노리’라 부른다. ‘모노리’는 참 고마운 기차다.

호도 주민 교통 편의를 위해 운행하는 모노레일. 사진 강제윤 제공
호도 주민 교통 편의를 위해 운행하는 모노레일. 사진 강제윤 제공

호도는 남해의 동남쪽 끝자락 미조포구에서 10분 거리인데 마을 끝에서 끝까지 10분도 안 걸릴 정도로 섬은 작다. 2가구가 어선업을 하고 1가구가 펜션 하나를 운영 중이다. 나머지 노인 가구들은 미역, 톳 등의 자연산 해초 채취와 마늘, 고추 농사 등을 지으며 살아간다. 마을 공동체에서는 해산물의 종자를 바다에 뿌려 키우는 자연 양식과 마을 펜션도 운영하고 있다. 조도는 섬 주변 해역 어장 환경이 좋아 어선업만으로도 충분한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지금은 2가구뿐이지만 10가구까지도 어업 소득이 가능할 정도로 어장이 좋다. 이장님은 노인들이 이승을 뜨고 나면 섬이 무인도가 될까 걱정이다. 그래서 섬에서 어업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는 이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한다. 호도에서 며칠 머물며 새로운 삶을 꿈꾸어 보는 것은 또 어떨까?

가는 법 남해 미조항에서 출항. 하루 6회 왕복. 7시30분·8시30분·11시10분·12시·13시30분·15시30분·17시10분(11월~이듬해 2월). 문의 기관장 010-4519-5833

지심도에 핀 동백꽃. 사진 강제윤 제공
지심도에 핀 동백꽃. 사진 강제윤 제공

찬란한 동백의 섬, 지심도

거제의 섬, 지심도는 동백섬이다. 섬 전체가 원시림이고 그중 대부분이 수백년생 동백나무다. 이즈음부터 섬은 전체가 동백의 화원이다. 지심도는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할 정도로 작다. 하지만 숲길은 걷고 또 걸어도 마냥 좋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섬의 길. 섬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지심도는 아픔이 많은 섬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 일본군은 조선인 10여가구의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지심도에 포진지를 관리할 병력 100여명을 주둔시켰다. 해방 후에 주민들은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국방부가 다시 토지 소유권을 빼앗아가 버렸다. 주민들은 건물만 불하받아 소유권을 가지고 50년 동안 국방부에 토지 임대료를 내며 살아야 했다. 자기 땅에 세 들어 살았던 셈이다. 지심도에는 일본군 주둔 시절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포진지, 탄약고, 서치라이트 보관소 등이 길가에 있어 모두 관람할 수 있다. 주민들이 사는 집도 그 시절의 유물들이다. 겉모습만 바뀌었지 건물의 골조는 그대로다. 길을 가다 마주하는 민박, 식당들 모두가 근대 유산들이다. 어떤 집은 헌병 소장이나 일본군 장교 사택이었고 또 어떤 집은 헌병 주재소, 통신소 , 일본군 병사 식당이었다. 단무지 공장이었던 집도 있고 강제노역을 위해 끌려온 조선인 징용자 숙소로 쓰인 집도 있다. 지심도 전체 15채 중 13채가 일본군 주둔지 유물이다. 그런데 이중 발전기를 돌리던 일본군 전등소 소장 사택만 안내판이 붙어 있고 다른 건물들은 설명조차 없다. 포진지나 탄약고뿐만 아니라 지심도의 주택들 또한 전쟁을 준비하던 일제의 만행을 밝혀줄 귀중한 사료다. 문화재로 등록되어 일제 침략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어야 마땅한 유물들이다. 알고 가면 달리 보일 것이다.

지심도 옛 일본군 전등소장 사택. 사진 강제윤 제공
지심도 옛 일본군 전등소장 사택. 사진 강제윤 제공

지심도에도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가 있지만 길가에는 전봇대가 없다. 경관을 망치는 주범인 전봇대와 전깃줄이 없으니 바다 경관이나 숲의 경관이 더없이 자연스럽다. 2009년 이전까지 지심도는 자가발전으로 하루 4시간만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발전소 건설 사전 답사차 섬에 온 업자들이 아연 도금 전봇대를 세우겠다고 했다. 주민들이 발전소를 못 짓는 한이 있더라도 전봇대만은 안 된다고 반대하여 결국 지중매설을 관철했다. 주민들이 지심도의 소중한 경관 자원을 지켜낸 것이다. 그동안 주민들은 3번의 화재를 진압했고 자비를 들여 질척거리는 진창길을 예쁜 보도블록으로 포장도 했고, 쓰레기들을 치워가며 섬을 가꾸고 지켜냈다. 그런데 2017년 국방부로부터 지심도 토지 소유권을 이관받은 거제시가 관광개발을 내세워 주민 강제 이주를 추진해서 논란 중이다. 국가가 주민들을 곤경에 빠뜨린 셈이다. 지심도 주민들은 이제 자기 땅에서 유배자가 될 처지에 놓여있다. 이 겨울, 동백의 숲도 거닐고 곤경에 빠진 주민들도 응원하러 지심도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가는 법 거제 장승포항에서 출항. 하루 5회 왕복. 8시30분·10시30분·12시30분·14시30분·16시30분. 지세포항에서 유람선이 다닌다.

글·사진 강제윤(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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