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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숨소리 울려퍼지는 해안절벽에 서다

등록 :2017-03-15 20:24수정 :2017-03-15 20:54

[ESC] 커버스토리
조선 말 울릉도 재개척기 역사 서린 학포·태하마을
현포항에서 바라본 대풍감 해넘이.
현포항에서 바라본 대풍감 해넘이.

큰황토구미, 작은황토구미. 경북 울릉군 서면 태하리 태하마을과 학포마을의 다른 이름이다. 모두 ‘황토가 나오는 굴’이 있는 마을이어서 붙은 이름인데, 옛 주민들은 이곳 황토를 채취해 가구 등을 칠하는 데 썼다고 한다. 두 마을은 조선 말 울릉도 재개척기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자, 깎아지른 듯한 해안절벽 등 빼어난 경관을 거느린 포구다. 섬의 개척 역사를 알아보며 눈부신 해안 경치까지 감상하는 여행 코스다. 고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어 걸어서 두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섬의 서쪽 끝자락 해안이다.

순환도로(일주도로) 만물상전망대에서 고갯길을 내려가면 학포정류소가 나온다. 송담실버타운 입구, 도동에서 차로 40여분 거리다. 도로 밑 굴다리를 통과해 가파른 굽잇길을 15분쯤 걸어 내려가면 포구에 이른다. 굽잇길 위에서 내려다보는 포구 주변 절벽 경관이 빼어나다. 포구로 내려서면 마을 좌우로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무너져 내리며 형성된 절벽해안이, 학이 날개를 펼친 듯 이어진다. 포구 옆으론 아담한 몽돌해안도 있다. 학포란 지명은 마을 뒷산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었던 데서 비롯했다. 오래전 날개 부분이 무너져 학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고 한다.

학포마을 산왕각 옆의 민가.
학포마을 산왕각 옆의 민가.
10여가구가 모여 사는 이 포구가 주목받는 건 조선 말 울릉도 재개척 시기에 검찰사 일행이 첫발을 디딘 곳이기 때문이다. 울릉도는 고려 때부터 왜구의 침입이 잦았다. 조선 태종 때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워두는 ‘공도정책’(쇄환정책)을 시행한 뒤로는 수시로 수토관(수색·토벌 담당 관리)을 보내 섬을 관리해 왔다.

고종 때에 이르러 왜구들이 침입해 무단벌목을 해가는 일이 잦아지자, 고종은 다시 개척정책을 마련했다. 1882년 이규원을 ‘울릉도 검찰사’로 임명해 섬의 상황을 보고하도록 한다. 1882년 4월28일 평해(현재 울진)를 출발한 이규원 검찰사 일행 102명을 태운 배 3척이 이튿날 도착한 곳이 학포다. 이규원은 약 한달 동안 울릉도 전역과 해안을 답사하고 돌아가 지도와 보고서를 작성해 올린다.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4월부터 넉달 동안 16가구 54명을 이주시키면서 울릉도 재개척의 역사가 시작된다. 학포마을 팔각정 뒤 바위에 ‘검찰사 이규원’ 일행이 답사 당시 새긴 이름들이 남아 있다. ‘임오명 각석문’이다.

각석문 앞 왼쪽 바위절벽엔 반대쪽과 마주 뚫린 바위굴이 있다. 파도가 드나들며 거친 숨소리를 뱉어낸다. 주민들이 ‘가자굴(가재굴)’이라 부르는 비좁은 자연동굴이다. 각석문 앞을 지나 잠시 오르면 아담한 폭포 왼쪽 언덕에 자리 잡은 신당 ‘산왕각’을 만난다.

주민 재정착 거점 학포마을
마을 평안 빌던 산왕각 눈길
모노레일로 오르는 태하등대
추산·공암·대풍감 등 절경

학포마을 산왕각. 해마다 삼월삼짇날 주민들이 제를 올린다.
학포마을 산왕각. 해마다 삼월삼짇날 주민들이 제를 올린다.
학포마을 산왕각 붓글씨 현판.
학포마을 산왕각 붓글씨 현판.
주민들이 해마다 삼월 삼짇날 제를 올리며 마을의 평안을 빌어온 곳이다. ‘광서 10년’(1884년) 등이 붓글씨로 표기된 소박한 산왕각 현판은 낡아서 더욱 빛을 발한다. 산왕각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들머리 계단을 오를 땐 송이째 떨어져 나뒹구는 붉은 동백꽃들을 밟게 된다.

포구에서, 내려왔던 굽잇길을 잠시 올라 생태탐방로 쪽으로 산길 따라 고개를 넘으면 이웃마을인 태하리에 이른다. 이규원 검찰사 일행이 걸었고, 요즘도 주민들이 넘나드는 이 고갯길엔 지금 전호나물이 지천이다.

전호나물.
전호나물.
태하마을에도 각석문(광서명 각석문)과 신당(성하신당)이 남아 있다. 각석문은 마을 들머리 밭 옆에 놓인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1890년 새긴 것으로, 울릉도 재개척기에 울릉도에 공헌한 이들을 기리는 내용이다. 이규원 검찰사 일행을 비롯해, 흉년으로 신음하던 울릉도 주민들에게 300석의 곡식을 지원한 영의정 심순택 등의 이름과 공적을 적었다.

태하리 광서명 각석문.
태하리 광서명 각석문.
태하리 왼쪽 방파제에 이르는 바위절벽 나무데크길에서 화장실 사이 여러 곳에서도 직함과 함께 적힌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태하마을에선 지금, 당시 검찰사 일행이 타고 왔던 대형 목선 재현과 전시관 건립 공사가 한창이다.

태하마을 방파제에서 본 학포마을 쪽 해안.
태하마을 방파제에서 본 학포마을 쪽 해안.

태하마을 황토구미(황토굴).
태하마을 황토구미(황토굴).
마을회관 뒷산, 현재 마무리 공사 중인 계단길을 따라 5분쯤 오르면 전망대에서 학포 쪽으로 이어진 해안절벽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마을 오른쪽 해안절벽 아래 ‘황토구미’의 주황색 황토띠가 이채롭다. 하지만 몇 년 전 동굴 위 절벽이 무너져 내린데다, 해안산책로로 오르는 나선형 계단까지 훼손돼 지금은 출입을 막고 있다.

태하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경관이 태하등대로 올라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현포 쪽 해안과 대풍감이다. 옛날엔 40분쯤 걸어서 등대까지 올랐지만, 요즘은 대개 등대 아래쪽까지 설치된 ‘태하 향목모노레일’을 이용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왕복 4000원이다. 6분간 모노레일을 타고 오른 뒤 10여분 동백나무숲길을 걸어가면 등대 옆 전망대에 이른다.

태하 향목모노레일을 타고 내려다본 태하포구.
태하 향목모노레일을 타고 내려다본 태하포구.
태하등대 전망대 부근의 동백과 송곳산 쪽 해안.
태하등대 전망대 부근의 동백과 송곳산 쪽 해안.
현포리 포구와 노인봉·송곳봉(추산), 공암(코끼리바위)까지 해안경치가 아름답게 굽이친다. 전망대 왼쪽, 바다로 튀어나온 거대한 바위절벽이 대풍감이다. 육지로 떠나는 배가 순풍을 기다리며 정박해 있었다는 해안이다. 대풍감 절벽 주변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 자생지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현포리에서 출발해 태하등대와 태하마을을 거쳐 학포마을에 이르는 탐방로를 이용해 둘러봐도 좋다. 길이 4㎞에 3시간쯤 걸리는 ‘현포~학포 생태길’이다. 울릉군이 최근 ‘해담길’이란 이름으로 새단장을 시작한 둘레길 9개 코스 가운데 하나다.

울릉도/글·사진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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