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몇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무렵인가 그랬으니까 아마 여덟살쯤이 아니었나 싶다. 맥락상 아홉살이나 열살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긴 하지만 대충 여덟살이라고 해두자. 굉장히 추운 날이었다. 12월이었다. 매년 12월 말일이 우리 엄마 생일이다. 요즘은 관계가 역전되는 바람에 은퇴한 아버지가 엄마한테 구박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 아버지는 참으로 기세가 등등했다. 아버지 말이라면 엄마가 꼼짝도 못했다. 나는 매니큐어 바른 손으로 지은 밥은 안 먹어, 이러면서 엄마가 차린 밥상을 과감하게 뒤집어엎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니까 말년에 구박데기가 된 거예요, 아버지. 평소에 잘하셨어야지.”
아무튼 그날은 엄마 생일이었다. 무뚝뚝하기로는 서울 구의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아버지가 딱히 무슨 이벤트를 준비했을 리 없다. 대신 티켓 한 장을 엄마한테 건네시더라. 금강제화 상품권이었다. 얼마짜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상품권이 뭔지, 어떻게 써먹는 건지 그런 걸 알 나이는 아니었지, 나도. 돌아보니 그 시절에 우리 엄마는 무척 검소했던 것 같다(지금은 전혀 안 그렇다). 변변한 구두나 옷 한 벌도 없었다. 혜숙이 누나라고 불렀던 식모도 있었고 마당도 집을 빙 두를 만큼 컸으니까 꽤 넉넉한 살림이었을 텐데 굳이 그랬던 이유는 시대적 분위기 탓이었을까, 아버지가 구두쇠이기 때문이었을까. 차라리 내 옷이 더 많지 않나 하고 느꼈을 정도이니 이 글을 마주하신 형제자매님들도 얼마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날 저녁, 그러니까 엄마 생일날 저녁에 우리 모자는 오랜만에 단둘이 외출했다. 구의동에서 59번 버스를 타면 종각역에 있는 와이엠시에이(YMCA) 앞까지 한번에 갈 수 있다. 약간 딴 얘기지만 당시 나는 (노홍철씨 덕분에 유명해진) 와이엠시에시 아기스포츠단 회원이었고 새벽마다 수영을 배우러 다녔기 때문에 금강제화며 종로서적이며 종각역 근방의 지리를 잘 알았다. 한 시간 동안의 수영 강습 후에는 롯데리아에서 불고기버거와 핫도그를 먹고 학교에 갔다. 나중에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와이엠시에이 수영반은 들어가기도 어렵고 강습료도 비쌌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 키가 엄마보다 작은데 내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그게 신경 쓰였던 엄마가 “애들 키 크는 데는 수영이 끝내준대”라는 말을 어디선가 듣고 와서 악착같이 집어넣은 거다.
뜸 들이는 압력밥솥처럼오래 구두를 바라보던 그녀가그냥 빈손으로 가게를 나왔다왜 안 샀냐 물어도 웃기만 했다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오면, 지금도 그대로인지 모르겠지만 종로2가에서 인사동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금강제화 매장이 하나 있었다. 삼층인가 사층짜리 건물 전체에 구두가 진열돼 있었고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직원들이 손님만큼이나 많았던 곳이다. 엄마와 나는 추위에 곱은 손을 꼭 붙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환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멀끔하게 생긴 청년 한 명이 살갑게 인사를 하더니 “뭐 찾으시는 거 있습니까, 손님” 하고 물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닐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 신발 사러 왔어요”라고 내가 대뜸 말하자 그는 씩 웃으며 엄마를 소파에 앉혀놓고 이런저런 모양의 구두를 보여주었다. 구두를 구경하던 엄마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눈을 돌리니 마침 창밖에는 슬슬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엄마 멀었어? 나 배가 몹시 고파.” ”우리 아들, 뭐 먹고 싶은데. 우동. 그래? 알았어.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말은 그랬지만 조금 기다려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뜸 들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압력밥솥 같은 표정으로 구두 하나를 들고 아까부터 고심하는 기색이었거든. 나야 구두가 예쁜지 안 예쁜지 다 비슷비슷해 보여서 알 턱이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그냥 사면 될걸 왜 망설이는 건지. 얼른 우동이나 먹으러 갔으면 좋겠구먼. 어라, 근데――, 한참을 망설이던 엄마가 “미안해요, 다음에 다시 올게요” 하고 직원한테 인사를 하는 거다.
“왜, 엄마?” 내가 물었지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잡고 빈손으로 매장을 나섰다. 아까 그거 왜 안 샀냐고 또 물어도 웃기만 하셨다. 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우리는 근처 포장마차에 들러 우동을 먹었다. 김밥도 주문하고 소주도 한잔, 은 아니고 사이다를 시켰다. 그게 전부 얼마였을까. 짜장면이 600원이었으니까 다해 봐야 3천원 정도였겠다.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건 자정 즈음이었다. 아버지가 퇴근 전이라 나는 안방에서 티브이(TV)를 봤다. 그러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니, 잠들락 말락 했는데 문득 엄마가 이모랑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목소리는 나직했고 나도 잠결이어서 전부 또렷하게 들렸던 건 아니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엄마가 왜 구두를 안 샀는지. “글쎄, 내가 상품권이랑 만원짜리 한 장 들고 나갔거든. 근데 맘에 드는 구두를 사고 나면 차비뿐이 안 남지 뭐니.(웃음) 홍민이한테 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는데 구두를 사면 딱 차비만 남잖아. 쯧, 그래서 안 샀어. 담에 사지 뭐. 그래, 고마워. 형부는 아직 안 들어왔지. 별일 없으면 내일 밥이나 먹으러 와라 얘.”
한데 참 이상하지. 그날 잠결에 들었을 때는 그 말에 전혀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한참 지나서 언젠가 명절에 그 일이 생각나더라. 실은 형제들이 돈을 모아 그달에 엄마 환갑기념 해외여행을 보내드렸거든. 그 돈 마련하느라 이번달에 적자라며 엄살을 떠니까 엄마가 농담처럼 그렇다면 내 생일에는 키높이 신발을 사준다느니 뭐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때 갑자기 엄마랑 손을 잡고 구두를 사러 간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던 거다. 환한 조명을 받으며 진열된 갖가지 색깔의 구두들과, 포장마차에서 먹은 가락국수의 얼큰한 냄새와, 나직하게 웃으며 통화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무엇보다 당신이 한참 동안 들고 쳐다본 구두, 그런 것들이 말이다.
상품권에 적힌 금액보다 조금 더 비쌌지만 단돈 3천원이 ‘모자라’ 사지 못한 구두를 엄마는 나중에 샀을까. 물어봐도 되지만 그런 걸 물어본다는 생각만으로도 어쩐지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관뒀다. 그냥 올해 엄마 생일에는 구두를, 아니지, 구두상품권을 사드리자고 마음먹었다. 이번엔 예쁘고 비싼 걸로 사, 엄마.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