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옷이나 집안 인테리어 소품 등을 직접 만들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다양한 원단이 인기를 얻고 있다. 기성품보다 훨씬 저렴하게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원단 시장뿐만 아니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서 나라 안팎의 다양하고 예쁜 디자인의 원단과 옷본까지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게 1970~80년대에 유행한 재봉과 다른 점이다.
잔꽃무늬 가득한
영국 리버티 원단
아이들 한복 만들기 유행
북유럽 자연주의 스타일
포인트 인테리어로 선호
올해 초 설을 앞두고 ‘영국 원단’ 열풍이 불었던 것도 이런 인터넷 쇼핑몰의 발달과 맞물려 있다. ‘리버티’라는 영국 브랜드가 만든 이 원단은 잔꽃무늬가 가득한 파스텔 톤의 천으로, 남녀 아이들의 한복을 지어 입히는 것이 전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저고리는 잔잔한 꽃무늬의 영국 원단으로, 치마나 바지는 하늘하늘한 시폰이나 비단 또는 ‘깨끼’ 원단으로 만드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인형옷처럼 예뻐 삽시간에 입소문을 타고 유행이 번졌다. 문제는 수십만원에 이르는 비싼 가격. 엄마들은 기꺼이 외국 인터넷 사이트 직구(직접구매)를 통해 좀더 값싸게 원단을 사들였다. ‘리버티 한복’이 인기를 끌자 국내에서도 ‘짝퉁 리버티’ 원단이 판을 쳤지만, 이를 사본 사람들 대부분이 “진짜와 가짜가 색감이나 꽃무늬 디자인에서 한눈에 차이가 난다”고 입을 모았다. 외국 원단을 직접 구매하는 것이 인기몰이를 한 이유다.
요즘 젊은 엄마들 사이에 인기가 높은 원단은 영국 원단이나 북유럽 원단들로서 여전히 외국 제품들이 많다. 작은 꽃무늬가 반복적으로 인쇄돼 있는 ‘리버티’ 원단뿐만 아니라 큰 꽃무늬의 ‘로라 애슐리’, 양귀비 꽃무늬나 흑백의 기하학적 무늬, 동물 그림으로 이름이 높은 북유럽 디자인 제품 ‘마리메꼬’, 원숭이나 부엉이, 단순한 꽃무늬가 있는 ‘킨더스펠’, 앤절리나 졸리나 귀네스 팰트로 등 외국 영화배우들이 아기 용품으로 사용한다고 알려진 ‘스와들 디자인’ 등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모두 단순한 디자인이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감성을 풍기는 디자인들로서, 여기에서 영감받은 국내 브랜드에서도 비슷한 디자인 제품들을 많이 내놓고 있다. 잔꽃무늬가 많은 원단은 아이들 옷이나 인형 옷, 또는 반려동물 옷 같은 작은 제품을 주로 만드는 반면 큰 꽃무늬가 많은 ‘로라 애슐리’ 같은 원단은 소파 천이나 커튼, 침대보같이 넓은 면적의 제품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북유럽 디자인 가운데 단연 인기가 높은 핀란드 브랜드 ‘마리메꼬’의 지난해 국내 원단 판매량은 2012년에 견줘 181% 증가했다. 회사 쪽은 “지금까지는 커튼이나 패브릭 액자 주문이 가장 많았지만 최근에는 인테리어 소품을 직접 만들기 위한 원단 구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밝혔다. 1964년 이 회사 디자이너 마이야 이솔라가 만든 대표 패턴인 ‘우니코’(양귀비)는 올해 탄생 50주년을 맞아 검은색과 흰색의 새로운 무늬를 선보였다. 1960년대 말 데님과 어울리는 줄무늬로 디자인한 ‘타사라이타’ 패턴도 셔츠나 나이트가운, 속옷에 쓰이면서 많이 팔린다. 벼룩시장의 니트 손뜨개 소재 받침대에서 영감받아 만든 ‘라풀리사’(Lappuliisa)는 반복적인 둥근 무늬와 색감이 복고풍 느낌을 강하게 준다. 동물 시리즈는 특히 액자나 커튼으로 많이 쓰는데, 열대 숲이 우거진 뒷마당에 사는 북극곰을 주인공으로 한 ‘나누크’, 사슴이 뛰어노는 어린 시절의 고향집 근처 숲을 형상화한 ‘카우니스 카우리스’도 커튼이나 액자용으로 써서 세련된 인테리어 포인트를 줄 만하다.
이처럼 큰 무늬가 아로새겨진 원단들은 캔버스에 덧씌워 스테이플러로 고정하거나 직접 커튼으로 만들어도 좋다. 커튼을 만들 때는 굳이 바느질하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길이보다 조금 더 길게 천을 재단한 뒤 재봉용 원단 테이프로 덧대 다림질하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다음 커튼 링으로 천을 집어 봉에 걸면 손쉽게 커튼을 만들어 걸 수 있다. 소파나 매트리스 커버를 바꿀 때도 번거롭게 재봉틀로 박거나 손바느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원단을 탄탄하게 잡아당겨가며 상자를 포장하듯이 감싼 뒤 옷핀으로 꼼꼼하게 마무리하면 된다. 커버로 쓰던 천은 지겨워지면 테이블보 등으로 고쳐 써도 된다.
바느질을 즐겨 하는 엄마들은 인터넷 쇼핑몰, 외국 직구, 블로그 공동구매, 원단 시장을 다양하게 이용한다. 5살·3살 딸을 둔 김정숙(38·회사원)씨는 동대문종합시장에서 주로 원단을 구매한다. 아이를 낳은 뒤 싸개, 베개, 인형, 옷 같은 신생아 용품이 많이 필요했는데, 완제품을 사는 것보다 원단을 구해 직접 만드는 편이 훨씬 싸고 모양이나 품질도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 전부터 바느질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주변에도 육아용품을 직접 만들어 선물하곤 했다. 그는 “바느질에 입문할 땐 인터넷 사이트에서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실제 소량을 구매할 때 인터넷 사이트와 원단 시장의 가격차는 많이 나지 않아 시장에서 필요 없는 원단을 많이 사서 충동구매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천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땐 인터넷으로 1야드(1마, 원단폭×약 90㎝)가 안 되는 좁은 면적 단위로 끊어 파는 제품을 사는 것이 안전하다. 비슷한 원단을 몇가지 묶어서 파는 원단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거나 인테리어 정보를 주고받는 주부 사이트의 벼룩시장, 중고 물품 거래 사이트를 뒤져보는 것도 좋다.
인터넷 블로거 모아모아(대화명·41·회사원)는 동대문종합시장 원단 상가에서 자투리 원단을 주로 사는 편이다. 블로그에 직접 조리한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릴 때 그릇 받침으로 깔거나 배경 소품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다. 워낙 만드는 것을 좋아해 소품이나 조카들 인형을 만들 때 간단하게 손바느질을 한다. 대량으로 구매할 건 아니지만, 동대문시장을 주로 이용하는 건 자투리 천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아모아는 “각 가게에서는 롤천을 절단해서 팔고 남은 자투리 천을 파는데, 이것을 잘 흥정해서 몇천원 단위로 싸게 살 수 있다. 도안과 같이 구입할 수 있는 패키지 상품도 있어서 시간이 되는 엄마들은 시장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배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대문종합시장은 꽤 복잡하다. 5000여평 대지에 3개 동 7층 규모, 동대문쇼핑타운은 1개 동 5층 규모로 매장 수가 4300여개에 이를 정도다. 서울 지하철 1호선, 4호선 9번 출구에 있으며 A·B·C동과 쇼핑타운으로 나뉘어 있다. 갈 때는 자기한테 필요한 물건들을 정확하게 알고 가는 것이 좋고 동대문시장에 대한 블로그들의 정보를 꼼꼼하게 뒤져놓고 출발해야 헤매는 일을 줄일 수 있다. 워낙 넓기도 하려니와 가게마다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층별로 생각해놓는 것이 편하다. 지하 1층은 뜨개실, 재봉실, 의류 부자재, 솜 등이 있으며 원단으로 봉제를 해주는 가게가 밀집해 있어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1층은 타월, 레이스, 침구, 의류 부자재, 바느질 부자재 등이 많다. 2~4층은 각종 공단, 체크무늬 면, 니트, 모직, 리넨, 폴라폴리스, 안감, 방수 원단 등이 있고, 5~6층은 원단을 비롯해 액세서리 부자재 등이 있다. 핸드폰으로 간판 사진과 원단 사진을 찍어올 때는 주의해야 한다. 완제품 사진 촬영을 금지하는 곳이 많아 눈으로 열심히 보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디자인을 참조하면 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