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안 쓰는 쇼핑백을 정리하다가 문득 눈길을 끄는 문구를 발견했다. “모든 사람은 그들의 첫번째 닥터마틴을 기억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은 닥터마틴이 진행했던 ‘처음 그리고 영원히’라는 광고 캠페인으로, 소비자에게 첫 닥터마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 신발이 누구에게나 영원한 패션 아이템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취지였다.

이를 보면서 5년 전 나의 첫번째 닥터마틴 부츠가 떠올랐다. 대학에 입학한 첫달, 친구들과 홍대와 명동을 누비다 닥터마틴의 대표 디자인인 ‘1460’모델(사진)을 샀다. 새 신발이 흔히 그렇듯, 발 전체를 감싸는 딱딱한 소가죽 때문에 처음엔 뒤꿈치와 발목을 비롯한 여러 군데 물집이 생겼다. 군대에서 딱딱한 군화를 길들이는 고통과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나름의 과정을 겪고 나니 발목 부분 가죽도 부드러워지고 또 어느 신발보다 튼튼하고 편했다. 보통 ‘닥터마틴’ 하면 군화·전투화라는 디자인의 범주를 많이들 떠올린다. 생김새가 군화와 닮은 것은 탄생 배경 때문이다. 독일군이었던 브랜드의 창립자가 2차 세계대전 중 발을 다치게 되었다. 당시의 군화가 자신에게 편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공기가 들어간 밑창을 고안한 것이 지금의 닥터마틴이다. 패션을 좋아하는 남자라면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레드윙이라는 브랜드 또한 1·2차 세계대전 때 미국 군대에 군화를 납품하는 주요 회사로서 전쟁을 거치며 호황을 누렸다.

광고

우리나라에서도 등산화 브랜드 트렉스타가 인도, 스페인, 미국 군화시장 진출에 이어 지난해부터 국내에 신형 군화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구형 군화의 무겁고 불편하다는 단점을 고어텍스와 인체공학 시스템을 이용해서 개선했다는 점에선 닥터마틴과, 민간업체 패션 브랜드가 군에 납품하면서 매출이 더욱 상승했다는 점에선 레드윙과 비슷하다. 하지만 확실한 차이점이 있으니, 제화법이다. 닥터마틴과 레드윙은 지금까지도 갑피와 밑창을 꿰매는 제화기법인 웰트 제법으로 만들어지는데, 내구성은 좋지만 무겁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트렉스타의 신발은 밑창 틀에 고무액을 부어서 말리는 방식으로 가벼운데다 반영구적이다. 아쉬운 점은 트렉스타는 아직 젊은이들에게 패션 브랜드로 주목받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구형 군화를 신다가 등산화 스타일의 신형 군화를 보급받은 한 친구는 외박 때 일부러 구형을 신고 나온다고 했다. 신발에 ‘광’도 나고 클래식한 디자인이 폼이 난다는 이유다.

한국에서도 1970~80년대 닥터마틴과 레드윙을 생산했고, 납품하고 남은 하자 제품들이 시중에 깔리기도 했다. 아는 사람만 신었던 그때부터 대중적인 브랜드가 된 지금까지 이토록 오랜 시간 다양한 연령층에게 이 브랜드의 군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쟁과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도, 회사의 규모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은 꾸준히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켰다는 것이다. 닥터마틴과 레드윙은 초창기의 제화법이나 디자인을 아직까지 지켜내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각도로 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브랜드의 생명은 꾸준함이 좌우한다. 지금 트렉스타를 비롯한 신발 브랜드들도 꾸준히 자신들만의 역사를 응축해가며 성장하고 있다. 곧 국내 브랜드에서 ‘처음’ 구매한 부츠를 ‘영원히’ 기억할 때가 올 것이다.

남현지 디어매거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