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현장이 있다. 그 현장에는 억울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이 현장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정동영 의원. 그는 ‘이쪽 편’에서는 진화와 각성이 동시에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얻을 정도로 그 자체가 놀라움의 아이콘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자칭 잉여청년 김호규다. 키 168㎝에 가슴둘레 120㎝. 작고 단단한 체구에 덥수룩한 수염까지. 그야말로 눈에 확 띄는 외모다. 더군다나 겉보기 등급과는 다르게 아직 26살이라는 요즘 청년 김호규. 트위터에서 이미 유명인이 된 그. 김남훈의 싸우는 사람들에서 가장 평범함의 근사치에 접근한, 그러면서도 가장 이질적인 인물을 지난 3일 신촌의 한 고깃집에서 만나봤다.
현장과 김호규는 굉장히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종의 마스코트 구실을 했다. 우스갯소리로 전방 3㎞에서도 눈에 띄는 외모는 때론 티브이 방송에서 용역으로 소개될 때도 있었지만 이쪽 편 입장에선 안구에 들어오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물어봤다. 왜 그렇게 열심히 현장을 다니냐고.
“공부는 좀 했어요.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에서 대구에서 1등을 한 적도 있고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법대로 진학했죠. 법대에 간 이유는 미선이, 효순이 장갑차 사건을 보면서 너무 억울했거든요. 그래서 내가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법대에 가면, 사시에 합격하면, 그럼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미선이 효순이 사건 보며뭔가 바꿀 수 있는사람 되고 싶어 법대생 됐죠”법대생. 그는 그걸로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은 조금씩 허물어졌다. 홍대 청소노동자,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두리반, 마리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이 사회의 부조리함이 만들어내는 비명소리를 들으며 말이다. 이 비명소리는 결코 그 현장에 법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법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더 힘들었다. “그래도 사시 공부는 계속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문장의 첫 음절이 성대에서 나오기 직전에 사라졌다. 생물학적인 나이가 조금 더 앞서 있다고 해서 무조건 조언하려는 것도 참 꼰대 같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전 지금까지 그냥 잘 먹고 잘살았거든요. 그런데 살짝 둘러보니까 내 주변이 너무 엉망인 것 같았어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그런 느낌이요.”
내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청소노동자의 식대 300원이었다. 그 분노의 트리거는 악당 레슬러는 ‘쨉도 안 되는’ 악당들이 이 세상에 정말 많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김호규는 광우병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연행되어 구치소도 들어가보고 이후 군대를 다녀온 뒤 자신의 삶에서 이런 트리거를 계속 마주치게 된다. 한편 그는 현장에서 아주 미력하지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편이 있다면 반대편도 있다.
특히 용역들. 현장에서는 멱살잡이도 하고 때론 유혈사태 폭력도 심심치 않다. 용역들을 저주하지 않냐고 몸쪽 돌직구를 던져봤다. “물론 좋을 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아주 죽이고 싶다, 그런 건 또 아니에요. 아주 윗대가리 빼고는 걔네들도 먹고살자고 등록금 좀 벌어보자고 나온 거잖아요. 가끔 지하철역에서 만나면 잘 지내냐고 인사도 해요. 그러면서 서로 쓴웃음 남기면서 사라지는 거죠.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임금노동자 1751만명 가운데 비정규직이 865만, 실업자가 80만이다. 이런 구조에선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은 실질적으로 실업자를 잡아먹으면서 노동시장이 유지되는 형국이다. 용역도 실업자와 비정규직 사이에서 그저 살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던져버린 이들인 것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면 “아이스라테 나오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자신의 시급 4000원보다 500원 비싼 음료가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1시간의 노동이 커피 한 잔보다 싼 현실.
그는 정치권에도 일침을 가했다.
“주인 없는 저수지처럼마구 20대 갖다붙이기짜증나요. 우리가 만만해요?”“주인 없는 저수지처럼 서로 마구 20대를 갖다 쓰려고 하는 것도 짜증이 나요. 특히 진보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은 절대선, 상대편은 절대악이라는데, 그거 정말 책임질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만만해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도 듣기 싫어요. 아프게 만든 건 바로 당신들이잖아요. 그리고 청춘을 아프다고 정의하는데요.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처럼 아픈 적이 없어요. 장담하죠.”
목소리의 톤이 불규칙해졌다. 20대에 대한 평가와 정의. 본인들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숱하게 저울에 올라가야 했던 그들. 짜증이 날 만했다.
“강정에 갔는데요. 레미콘 트럭 밑에 들어가서 아무리 버티고 있으려고 해도 조금 있으면 다시 원위치돼요. 현장에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아마 이기는 싸움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나만 돌아보며 살기는 싫어요.” 그도 지금의 20대처럼 자신의 삶에 대한 여러 불안과 의문을 갖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것. 그러나 20대가 넘어가야 할 불확실성의 바다는 너무 험하고 깊어 보였다. 그러면서 말 잘 듣고 착하고 공부 잘하던 아들이 요즘 삐딱선을 타는 것 같아 부모님께는 너무 죄송하고 할 말이 없다고 했다. 19살 이후의 삶이 오토바이, 프로레슬링, 격투기로 점철된 내 처지에서도 달리 할 말이 없는 부분. “고기 타겠어요. 어서 먹어요”라며 내가 오히려 말을 돌렸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계속 북아현동 철거민 돕기 바자회를 트위터에 올리던 그는 청계천 광장에서 광우병 반대 촛불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할 것 같다는 트위트를 보자 현장으로 가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건너편 테이블에선 예비 방송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스터디를 마치고 건배를 외치고 있었다. 어느 작가는 장래희망이 공무원이라는 대학생의 뺨을 올려쳤다는데 난 따귀보다도 그 평가행위 자체가 더 폭력적이라고 본다. 과연 어떤 사람의 삶의 선택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이 가능할까.
자칭 잉여청년 김호규. 그는 어떤 세상을 앞으로 보게 될까. 그의 인생과 그를 둘러싼 세상이 어떨지 말이다. 너무 궁금해 잠이 오질 않았다.
김남훈/프로레슬러·육체파 지식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