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은 소리를 채집한다. 업계에서는 붐맨이라고 불린다. 포털사이트적으로 설명하면 마이크 붐을 조절하는 음향기술자다. 드라마나 영화, 라디오에 필요한 소리들을 채집해 두었다가 라이브러리하고 그것들을 필요한 적재적소에 살포(?)해주는 일을 한다. 일이 없을 때는 솜털 보송보송하게 생긴 커다란 마이크 하나 달랑 메고 전국을 떠돈다. 소리 수집가로 살아가는 거다. 욜은 십수년 경험으로 사람들이 드문 자연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소리가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아갔다. 녹음실에서 동시녹음사와 땀을 삐질거리며 일할 때보다 자연에 있을 때 뼈에 피가 돌고 살이 살아있음을 느낀다. 일당 몇 만원에 채집해 온 소리들을 넘기는 이동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욜은 그것을 소리로 몸을 바꾸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동안 써온 욜의 일기는 기상천외 이동기다. 몇 개 열거하면 이렇다. ‘천둥 속에서 새 날아가는 거 따라가다. 새가 가끔 똥을 질질 흘렸다.’ ‘사공 노 젓는 소리 따라가다. 저녁엔 모닥불로 들어간다.’ ‘콧등에 앉은 나비가 콧구멍으로 머리를 쑤셔박았다. 바람 따라가다 길 잃다.’ 욜은 해녀의 숨비소리와 꼴 베는 소리를 녹음했고, 동승이 죽은 엄마 생각하며 중얼대는 꽃염불 소리를 녹음했다. 욜은 소리가 지나갈 때 그들을 절대 훼방 놓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욜은 자신이 채집하는 것은 소리의 질이 아니라 소리의 길이라고 믿는다. 요즘말로 욜도 쏘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소리가 태어나는 산통기를 목격하면 욜은 눈을 감은 채 러시아 민담을 떠올린다. ‘생각이란 벼룩새끼들 같아서 헤아릴 수가 없구나.’ 그럴 때 욜에게 인간은 폭력을 분비하는 생물에 불과하다. 물론 귀한 소리가 인간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가령 울음소리나 기도 소리 같은. 젊었을 적엔 생짜 무당의 굿 소리보다 잠꼬대를 몰래 녹음하려다가 달밤에 다듬잇방망이 맞고 줄행랑을 친 적도 있다. 물론 무당의 잠꼬대는 잘 따왔다. 좋은 소리가 산란한다는 풍문엔 안 가리고 배낭 싼 욜이지만 최근엔 일거리가 없어 방구들에 박혀 있기 일쑤다. 누워서 모은 소리들을 사포질하거나 뽀샵질하는 데 소일한다. 작곡가와 자신이 다른 게 있다면 소리를 사랑해주는 연인이 자신에겐 없다는 거 정도다. 얼마 전엔 지방청 취업알선부에 일거리 신청을 했다. ‘거, 바람 소리 하나 삽시다. 우리 의원님 체험 삶의 현장, 목소리 후광으로 바람 소리 잔뜩 들어가게. 오지에서 고생하시는 필링으로. 자클하게. 가능?’ 테크노가 발달해서 발로 뛰며 소리를 수집하는 사람은 생꼬 부린다고 안 좋아하는 생태계가 야속하다. 그래도 욜은 땡깡부리며 살고 싶다. 이 직업은 멸종해 가더라도 세상천지에 소리는 아직 살아 움직이니까. 욜은 관심 많던 철새 다큐멘터리 쪽으로 방향을 선회할까 한다. 선거철 철새정치인들. 이 당 저 당 옮기며 구린내 풍기는 소리나 잔뜩 녹음해 두는 것도 시절의 좋은 경험이 될 거라.

김경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