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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 집짓기, 고쳐라!

등록 :2010-11-25 13:10수정 :2010-11-27 12:11

또다른 집짓기, 고쳐라!
또다른 집짓기, 고쳐라!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건축 30년 연희동·20년 서초동 낡은 단독주택 꿈같이 수리하기
우리나라에서 집은 돈의 또다른 이름이다. 주거 자체보다 투기나 투자가 집의 목적인 양 여겨진다. 불온한 욕망에 사로잡힌 서민에게도 이런 현실은 마뜩잖다. 마치 사람이 집을 위해 존재하기라도 하는 듯 집에 사람이 몸을 맞춰야 하는 기이한 현실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값 추락세와 더불어 ‘아파트공화국’의 이데올로기도 저물어가는 조짐이다. ‘닭장’ 같은 아파트 대신 마당 있는 집을 꿈꾸고 드물게는 아예 팔 걷어붙여 내 집 짓기에 나서기도 한다. 꿈같은 내 집 짓기 대신 집 고치기도 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작거나 커진 헌 옷을 내 몸에 맞춰 수선하듯, 집도 그렇게 고쳐야 한다. 큰돈 들여 뻔쩍뻔쩍 화려한 인테리어로 힘주는 대신 생애주기에 맞춰 실속 있게 집을 내 몸에 맞추는 일이 진짜 집수리다.

<한겨레> esc는 ‘3억 한달 만에 내집짓기’ 머리기사(10월28일치)에 이어 내집짓기에 버금가는 효과를 낼 수 있는 집 고치기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한복판에선 집 한 채가 ‘수선’중이었다. 왕년에 아담하고 깜찍한 모습을 자랑했을 법한 하얀 이층집은 껍질과 뼈대만 남아 있었다. 집수리치고는 대공사다. 대지 50평(약 165㎡) 남짓한 집수리에 드는 비용도 1억7000만원으로 적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인 김화숙 원광대 교수(국립현대무용단 이사장)는 이 집에서만 30년을 살았다. 여러 가족이 함께 살다 60대에 이르러 홑가족으로 돌아왔다. 독신의 주인에게 여러 방으로 나뉜 2층집은 거치적거리는 애물단지일 뿐. 칸칸이 나뉜 휑한 집은 도리어 외로움을 키우지나 않았을까.

따라서 이 집 수리의 핵심 콘셉트는 ‘따로 또 같이’다. 혼자 살기에 편안하되 누구나 함께할 수 있는 집. 그래서 가장 먼저 담을 허물었다. 자그마한 마당 귀퉁이에 있던 나무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보내고, 자그마한 단풍나무 한 그루가 공사중인 집 귀퉁이를 지키고 있다. 담이 사라진 마당은 집 1층과 같은 높이로 이어지게 된다. 30년간 살며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된 이웃들이 주저 없이 이 집의 열린 1층을 드나들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1층은 열고, 2층은 삶의 공간, 옥상은 춤 마당으로

1층을 열어젖힌 대신 2층은 주인 김 교수만의 삶의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여러 칸의 방을 구분하던 벽을 허물어 홀로 머물러도 외롭지 않을 크기의 방과 욕실을 나란히 만들고 드넓은 창을 내어 연희동 나지막한 주택가의 광경도 집 안으로 흘러들어오게 했다. 2층 한가운데는 크게 구멍이 뚫려 있다. 이곳이 정돈되면 1층의 열린 공간은 높은 천장 덕에 시원해지고 2층의 주거공간은 1층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게 된다.


초록색 방수액이 짙게 칠해진 채 물탱크만 덩그러니 놓여 있던 옥상 역시 새롭게 태어난다. 무용으로 일가를 이뤄낸 김 교수에게 필수적인 공간이다. 이른바 ‘춤 마당’. 한쪽에 아주 작은 물길을 낸 옥상 공연장에선, 수리가 마무리되는 내년 초 김 교수의 제자들이 모여들어 신명나게 춤판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집들이 마을 춤잔치’다.

이 집 2~3평 정도의 지하실에 현장사무실을 내고 있는 이가 집수리를 맡은 김재관 무회건축연구소 소장이다. 김 소장은 “집주인의 개인사와 직업, 집이 위치한 동네가 가장 중요한 집수리의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벽을 허물고 구멍을 내면서 풀풀 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쓰고도 연신 웃음을 멈추지 않는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람은 다 다르죠. 모두들 특별한데 집은 다 똑같아요. 아이를 키울 때와 아이들이 모두 장성해 시집·장가를 갔을 때 집은 달라야 하죠. 그러니까 집을 고치면서는 사는 사람에게 딱 맞게 맞춤집을 만들어야 해요.”

김 소장이 지난해 수리한 대지 40평짜리 서초동 집(맨 위 사진)도 똑같은 원칙으로 공사를 마쳤다. 그 집은 이웃한 신축 건물 때문에 빛도 들지 않고 창문도 열기 어려웠다. 지하층과 옥탑까지 합쳐 거의 6층 높이에 육박하는 4층짜리 다세대주택이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들어섰기 때문이다. 서초동 집 역시 지은 지 20년이 넘은 오래된 낡은 집이었고, 서울의 여느 오래된 집처럼 ‘집 장수’가 지은 집이기에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집주인이 김 소장에게 설계를 부탁해왔고 김 소장은 집주인과 “스무 번 넘게 밥을 먹고 서른 번 넘게 술을 마시며” 설계를 완성했다.

집주인의 ‘생애 주기’에 맞춰 설계는 마쳤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바로 돈. 집주인 김명옥씨는 8000만원 정도의 수리비 예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시공회사에서 보내온 두툼한 견적서는 1억8000만원을 요구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우리가 돈이 부족해서….” “아닙니다. 제가 예산을 잘못 맞춰서….” 이런 말이 오갔고 아쉬운 마음에 김 소장은 견적서를 꼼꼼히 들춰봤다. “견적이 엉터리더라고요. 먼저 남겨 먹을 걸 다 계산해서 전체 액수를 정해놓고 거기에 세부 견적을 맞춰놨는데, 그래서 내가 해보자 하고 견적을 다시 짜봤더니 9000만원까지 떨어지더군요. 그래서 처음으로 제가 망치를 들게 된 거죠.” 건축가는 시공을 통해 설계를 현실에 구현해 내는 맛을 경험했고 집주인은 만족스러운 맞춤집을 얻어냈다.

집수리는 거주자 생애주기에 맞춰야

설계가 사람에 맞춰 잘 이뤄지고 예산이 적절히 맞아떨어졌다고 집수리가 늘 아름다운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창 공사중인 연희동 집의 경우, 내부를 철거하다 집이 무너질 뻔했다. 집의 하중을 떠받치는 내력벽이 곳곳에 매우 얇고 약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김 소장이 가까스로 확인해 임시 버팀목을 대놓고 작업중이지만, 옛날에 지은 집 중에는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설계도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집을 뜯어보기 전엔 확인할 길이 없고, 더구나 오래된 집일수록 중간에 몇차례 증축이나 수리를 거쳤을 가능성이 높아 애초 설계도가 있다 해도 무용지물이다. 또한 집주인이 몇차례 바뀌면서 증축이나 수리를 했는지조차 확인하기가 어렵다.

서초동 집도 김 소장이 설계를 맡기 전 그 동네 토박이는 ‘날림집’이라고 공언했다. “이 동네 집은 거의 집 장수 장씨가 지었어. 벽 두께가 요래 요래(두 손을 거의 닿을 정도로 붙이며). 말하자면 다 날림이야. 모르긴 몰라도 속은 다 썩었을걸? 벽두 조심하슈, 벽이 요렇거든.” 이는 집수리 전 반드시 기존 설계도를 확인하거나 실측을 거쳐야 할 이유이면서 동시에 집수리가 필요한 이유도 된다. 1970~80년대에 지은 주택들이 많고, 특히 이런 집들은 구조와 설비가 노후화한 까닭에 안전을 위해서도 수선이 긴요하다. 오래된 집이 낡은 것은 집 장수들의 날림공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개발과 재건축을 이끌어내려는 목적으로 낡은 채로 방치해온 까닭도 크다.

무조건 맡기기만 해선 안 돼…집주인 스스로 살펴야

김 소장에게 동네 주민들의 상담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좁은 골목을 사이로 마주한 2층집 주인은 지붕에 물이 샌다고 김 소장에게 하소연했다. 집 전체를 완전히 수리하고 두차례나 방수 공사를 했는데도 물이 새어들어와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핀다는 것. 김 소장이 들여다보니 문제의 원인은 너무나 단순했다. “청소를 잘 안하고 방수 공사를 해서 그런 거더라고요.” 모래알 같은 작은 먼지가 앉은 채로 방수액이 뿌려져 생긴 미세한 틈이 물의 이동 통로가 됐던 것이다. “문제 있는 곳을 수리할 땐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그냥 방수액만 뿌려대니 해결이 안 된 거죠.”

집수리 현장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빌라에서도 사람이 찾아와 대뜸 물었다. “담 고칩니까?” 사연인즉, 30여가구가 사는 빌라 옹벽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옹벽을 치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보니까 나무가 자라면서 뿌리가 커져서 옹벽이 터진 거더라고요. 어차피 다시 옹벽에 난 금을 때워봤자, 나무를 뽑지 않는 한 뿌리는 다시 자라게 돼있잖아요. 그래서 벽을 아예 없애자고 한 거죠.” 김 소장은 빌라와 동네를 갈라놓은 옹벽을 치워 주민들을 위한 작은 공원을 만들기로 하고 900만원에 계약할 예정이라고 했다.

얼마 전 김 소장은 한 행사에서 집수리 상담을 받았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미 집수리를 시작한 사람이었다. “공사가 중단됐어요. 운 나쁘게 구청에 걸렸지 뭐예요. 증축신고를 안 하고 공사를 했다고요.” 김 소장이 ‘왜 그랬냐’고 되물으니 “목수 경력 30년인 업자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말라고 해서” 그랬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불법행위를 했으니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구청으로부터 발부된 이행강제금을 낸 뒤 불법 부분을 철거해서 원상복구하세요. 그리고 다시는 불법하지 마세요”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며 웃었다. 그가 상담자에게 알려준 건 ‘증축신고 절차’였다.

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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