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성들은 착한 남자를 조선시대 유물쯤으로 생각한다. 그녀들은 착한 남자의 헌신과 해바라기 사랑에 식상해할 뿐. 착한 남자들을 뒤로하고 새롭게 등장한 것은 나쁜 남자다. 자상한 듯 무심한 듯 종잡을 수 없는, 고약하지만 매력적인 기질은 여자들의 애간장을 녹일 만큼 아찔하다. 나쁜 남자가 내게도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커피다.
우선 수려한 외모부터. 보기 좋게 태운 피부는 남성스러우면서도 분위기가 있다. 있는 그대로도 훌륭하지만 그의 패션 감각은 매력을 부가시킨다. 어떤 날은 크림을 얹어 부드럽게, 어떤 날은 캐러멜을 입고 달콤하게, 어떤 날은 얼음을 휘감고 쿨하게 등장하는 그를 볼 때마다 날마다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기분이다. 재력은 또 어떠한가. 그는 데이트마다 새로운 차를 타고 등장한다. 고급 세단 부럽지 않은 도자기 잔부터 스포츠카 저리 가라 할 머그컵까지.
데이트도 언제나 버라이어티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에 분위기를 잡기도 하고 커피숍에서 오랜 친구처럼 함께 수다를 떨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입맞춤. 선수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내 생에 그렇게 황홀한 입맞춤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장점만 가진 나쁜 남자는 없다. 나 역시 그의 매력에 빠져들수록 단점에도 눈을 뜨게 되었다. 우선 그를 만난 뒤부터 난 눈에 띄게 몸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케이크·도넛 같은 친구들을 데려올 때마다 나의 S라인은 점점 H라인이 되어 갔다. 가장 큰 단점은 내가 잠자는 꼴을 절대 못 본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있을 때는 물론이거니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왔을 때도 내가 잠을 자지 못하도록 엄포를 내린다. 그에게 푹 빠져서인지 잠깐만 그를 만나도 내 몸은 그의 각성 효과에 격렬히 반응한다.
그때마다 난 그를 증오했고 마침내 그와의 이별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그를 만났을 땐, 다가올 고통을 알기에 자책감만 커졌다.
그렇게 나는 커피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수백번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 여자들이 나쁜 남자인 줄 모르면서 만나던가. 그녀들은 그가 언젠간 상처를 주고 떠날지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내게 정착해 착한 남자가 될지 모른다’는 뻔한 희망들을 품고 살 뿐이다. 나 역시 그중 한 명인 듯싶다. 커피에게 뒤통수를 맞을 때마다 그를 증오하고 다시는 찾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여전히 유혹에 흔들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는 여전히 그의 개과천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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