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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사랑이라는 습관

등록 :2022-09-24 11:00수정 :2022-09-24 11:36

김금희의 식물 하는 마음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거실 바닥에 누워 벽면을 채우고 있는 식물들을 올려다볼 때면 자랑스러움과 대견함,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존재에게서 느끼는 감격과 심지어 경이가 차오른다. 물론 내가 여행을 떠난 사이 물을 주러 왔던 엄마는 “그만 사!”라는 일침이 담긴 메모를 남겼지만. 하지만 변명하자면 나는 좁은 발코니 탓에 새 식구 들이기를 이미 포기하고 있었다. 적어도 허기 같은 소유욕을 무작정 채우려는 사람이 아니라는 얘기다.

종종 칠십 개나 되는 식물을 어떻게 다 돌보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대단하다는 듯이, 신기하다는 듯이. 그러면 좀 겸연쩍어지는데 그리 대단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이 식물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처음에 식물 집사가 됐을 때는 어느 포트에 물을 줬는지 기록해두거나 비슷한 물주기를 가진 식물들을 끼리끼리 놓아 관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각별한 매뉴얼도 없으니까. 언제 발코니에 나갔는지도 헷갈리고 화분들마다 세심히 고려해서 돌보지도 못한다. 그런데 그러면 이 많은 식물들이 대체 어떻게 우리 집에 살아남아 있는 것일까.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가 그다지 하는 것 없이 식물들이 주는 혜택만 누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이제 완전히 생활의 일부가 돼 더 이상 일이 아니게 됐을 뿐이다. 일부러 살피려는 목적을 가지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면 자연히 식물들에 시선이 간다. 식물의 상태를 관찰하려는 것이 아니라 긴 밤의 꿈을 마치고 내가 일어났으니까, 새날이 시작됐으니까 가닿는 눈길이다. 식물들의 삶은 동물과 달리 호흡이 길다. 절화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지에서 잘려나온 꽃이 얼마나 천천히 시들어 가는지. 그러니 하룻밤 사이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그래도 아침마다 시선을 주면 조금씩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다.

창가로 이사 간 브룬펠시아는 물이 부족하면 잎이 축 처진다. 마치 어떤 기대를 품고 팔을 벌렸다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내린 사람처럼. 그러면 나는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싱크대 앞에 서 있다가 물뿌리개가 아니라 바가지에 그냥 물을 담아 부어준다. 큰마음 먹을 필요도 없고 물 줄 채비를 본격적으로 해서 일과를 부담스럽게 시작할 필요도 없다.

물을 주고 오는 길에 또 다른 화분이 눈에 띄면 싱크대로 데려가 샤워를 시킨다. 그러고 도로 화분대에 갖다놓는 것은 너무나 귀찮은 일이므로 일단 싱크대에 둔 채 요리를 시작한다. 간단한 볶음밥이나 달걀토스트가 내가 자주 해 먹는 아침 메뉴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기름이 화분에 튀기도 하고 냉장고에서 막 꺼낸 재료들과 화분들이 뒤섞여 뭔가 뒤죽박죽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 가장 자연스럽고 흔한 우리 집 풍경이기도 하다. 주방 개수대는 물을 흠뻑 준 뒤 그 물이 다 흘러나올 때까지 식물이 대기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이고 동시에 인간인 내가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하는 공간이니까.

정성스럽게 닦고 살피며 잎 하나 떨어질까 창가에 식물을 고이 모셔놓는 마음도, 고무 ‘다라이’에 손 가는 대로 화초들을 심어 골목에 내놓고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엄중’ 경고를 써놓는 마음도, 잠이 덜 깬 채 계란 껍데기를 치우다 화분을 툭툭 치고 지나가는 내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같이 사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아침을 시작해 오후를 지나 밤이 될 때까지 식물과 관련된 편편의 일들이 습관처럼 흘러간다. 빨래를 걷으러 나갔다가 분무기를 잠깐 뿌려 혹시 유칼립투스에 그 원수 같은 응애가 생기지 않았는지 알아보고(응애는 거미줄 같은 가는 줄을 친다), 제라늄이 마른 꽃을 달고 있으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녹슨 전지가위를 이용해 간단히 잘라준다. 수도꼭지를 튼 김에 항상 물을 반기는 고사리들에도 슥 뿌려주고, 좀체 흙이 마르지 않는 무늬스킨답서스 화분을 지나가면서는 손가락을 찔러 잠깐 상태를 살펴본다. 글을 쓰러 내 방으로 들어올 때 손에 잡히는 용기에 물을 받아와 딱 그만큼만 화분에 물을 주는 것, 노트북 충전하는 김에 식물등 한번 켜주고 뒷문장이 이어지지 않을 땐 책상에서 일어나 집을 서성이며 화분 위에 알비료를 조금씩 두는 것.

결국 식물을 기르면서 내가 하는 일이란 대체로 다른 일상들과 겹쳐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것이야말로 가장 오래갈 마음이 아닐까. 준 것을 특별히 기억하지 않는 완전한 습관으로서의 돌봄, 혹은 사랑 같은 것 말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엄마가 챙겨주었는데도 몇몇 식물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잎이 바싹 마른 식물들을 안타깝게 보고 있다가 나는 그냥 거기에 평소처럼 물을 주었다. 예상대로 유칼립투스 멜리오도라는 잎이 완전히 말라 있었고 예상도 못했지만 라일락 역시 그 풍성한 잎이 다 지고 앙상한 가지를 내보이고 있었다. 시간이 며칠 더 흐른 지금 다행히 라일락은 다시 녹색 잎을 터뜨렸지만 유칼립투스 멜리오도라는 여전히 잎과 가지가 말라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물을 주고 전지가위를 든 날에는 가지도 잘라주었다. 이런 행동들이 아무 소용 없을 정도로 이미 고사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가능한 한 힘써보는 것 또한 나라는 사람의 습관이다. 돌아오지 않더라도, 얻는 것이 없더라도 아주 천천히 손에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것, 그 역시 우리가 아는 사랑의 일면이니까.

김금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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