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나는 동네와 계절감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지은 주택.
사람 냄새 나는 동네와 계절감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지은 주택.

작년 늦은 봄이었다. 옛집의 일부를 털어내다 지붕을 떠받치는 2층 벽체의 구조가 불안정한 것을 뒤늦게 발견해 철거 범위를 넓히기로 하고 다시 공사를 시작하던 때였다. 매수계약을 맺어주었던 공인중개사에게서 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반가운 목소리로 “정말 잘되었다”고 거듭 축하하는데, 나는 멈춰 있던 현장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는 걸 얘기하는 줄 알았다. “네. 감사합니다.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어야죠. 소음 때문에 이웃들이 불편할까 그게 걱정이에요”라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동네가 국토교통부의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되었는데 우리 집도 그 범위 안에 들어간 것이다. 쉽게 말해 아파트를 지어 올릴 수 있는 재건축 지역으로 정해졌다는 얘기다. 중개사무소에 들러 자세한 것을 물어봤더니 조합이 설립되면 원조합원 자격으로 우선 분양권을 받게 되고 소유하고 있는 대지 면적에 따라 건축비를 부담하거나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단독주택을 갖고 있으면 아파트 두 채도 받게 된다고. 큰돈 벌게 되었으니 축하받을 만하다고. 공인중개사도 모르는 ‘알짜배기 정보’라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한 수 가르쳐달라고 한다. 지금이라도 설계를 바꿔 다세대 주택을 짓게 되면 소유 지분이 많아져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게 될 거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아파트 불패 신화’가 싫어

사실 아파트는 경제 고도성장기에 서울 같은 대도시에 모여들었던 인구를 수용하기에 효율적인 주거 형태다. 정부는 제한된 좁은 땅에 높은 건물을 지어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었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진 강남이나 목동 같은 신도시에는 사대문 안에 있던 오래된 학교들을 옮겨와 ‘명문학군’을 형성했다. 사람들이 모이니 상권이 생겨나고 지하철 노선이 들어서 ‘역세권’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면서 건설사들은 이익을 챙겨 덩치를 불려왔고, 꺾이지 않고 계속 치솟는 아파트값의 마법을 경험한 소유자와 그 달콤함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지켜보며 동경했던 이들에게 ‘아파트 불패 신화’라는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 생겨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그리 축하받을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싫다. 아이가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도 없고 위, 아래,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막을 방법이 없다. 새로 짓는 아파트는 가구당 주차면적이 넓어졌다고 하는데도 어쩐지 주차장은 늘 복잡하다. 네모반듯한 콘크리트 상자 안에 거주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했다는 최신 설계는 내 마음대로 넓은 주방을 만들 수도 없었고 주어진 대로 살다 보면 늘어나는 살림살이를 보관할 수납공간은 늘 부족했다.

내 짧은 상식으로 무엇보다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터무니없이 비싼 아파트 가격. 대기업 재벌 계열 건설사들의 다단계 하청을 통한 이윤 추구, 분양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여기저기 새어나가는 예산, 거기에다 아파트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소비자들의 굳건한 믿음이 더해져 만들어진 거품이라고 생각한다. 물가가 요동을 쳐도, 정권이 바뀌어도, 아니 하늘이 두 쪽 나도 아파트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 말이다. 과거에 아파트로 돈 버는 것을 경험했고 지금도 아파트는 비싸니 앞으로도 더 오를 거라는 믿음. 투자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 된다는 단순한 계산. 그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고도성장기는 다시 찾아오기 어렵고 과포화 상태인 주택 시장에서 공급은 이미 수요를 넘어섰다. 끊임없이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건설사와 건설 경기 부흥을 통해서라도 지지율을 유지하려는 정부 여당이 맞잡은 손바닥 위에서 오로지 아파트만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이 춤추고 있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지론일 뿐이다.

언젠가 이 부조리와 답답함에서 탈출해 천장이 높은 집을 지어 화단에 꽃도 심고 마당과 집 앞 골목을 비질하며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살고 싶었던 게 내 삶의 로망이었다. 그런데 새집을 짓고 있는 동네를 밀고 또 아파트를 짓겠다니. 나에겐 청천벽력이었다.

지금 우리 동네 이웃들은 소규모주택정비사업을 원하는 사람들과 또 다른 공공 주도 방식인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둘로 나뉘어 다투는 모양새다. 서로 자기들이 추진하는 사업의 속도가 더 빠르고 용적률을 높여 소유주들의 이윤을 더 극대화할 수 있다며 주민들을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고 있다. 어떤 방식이 될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아파트 단지가 만들어지긴 할 것 같다. 나처럼 아파트가 싫어 떠나온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했다. 공인중개사는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사장님. 그래도 그 집 적당한 시기에 잘 사신 거예요. 정 아파트가 싫으면 분양받고 나중에 실거주 기간 채운 뒤에 팔면 되죠.”

뜨거운 여름, 땀 흘리며 쌓은 추억

주민 동의율을 채워 빠르면 5~6년 안에 재건축을 진행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덜컥 겁부터 난다. 내심 천천히 가길 바란다. 새집 짓는 데 들어간 정성과 노력이 아깝고, 아직 친해지지도 못한 이웃들과 보내고 싶은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 아쉽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독립할 때까지만이라도 이 집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영원한 것은 없어 집과 동네가 사라질 날이 분명히 오겠지만 작년 뜨거운 여름에 땀 흘리며 집을 지었던 기억과 우리 가족이 이 집에서 살며 겪게 될 추억들은 오래가길 바란다. 내일 다가올 걱정을 미리 할 필요는 없지만 언젠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사람 냄새 나는 동네를 찾아 다시 집을 지을 거라 다짐한다. 한번 해보았으니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고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를 떠나 나만의 집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강추한다. 너도 한번 지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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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마칩니다. 필자와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글·사진 임호림(어쩌다 건축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