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처벌조항 효력이 상실된지 5개월이 지났다. 과거 임신중지를 경험했던 여성 상당수가 입법공백을 메꿀 임신중지 관련 정부입법안 핵심 내용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여성가족부 등이 주최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포럼’에서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진행 중인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접근성 제고 방안 연구’ 결과 일부가 발표됐다. 이 연구는 최근 5년간 임신중지 경험자 중 임신중지 당시 만 19∼44살이었던 602명에게 임신중지 의료접근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 등을 물었다.
응답자들은 평균적으로 임신 5.7주차에 임신 사실을 인지해, 7.1주차에 임신중지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중지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때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뚜렷했다. 비수도권 읍면 단위 거주 여성(8.16주)은 수도권 동단위 거주 여성(6.91주)에 비해 임신중지가 1.25주가량 늦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수도권 읍면 단위에 거주하는 20대 이하 여성인 경우 임신중지까지 10.94주가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다수 응답자들은 정부개정안에 담긴 임신중지 규제 사항들이 의료접근을 어렵게 하거나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보고 있었다. 정부가 지난해 발의한 임신중지 관련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의사가 개인의 신념에 따라 임신중지에 관한 진료를 거부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또 사회·경제적 사유로 임신중지를 할 때는 국가가 지정한 상담 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24시간의 숙려기간도 거치도록 했다. 여성계는 의사의 진료 거부권과 의무적인 숙려기간 등이 임신중지 시기를 지연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조사에서 의료인의 임신중단 진료 거부가 의료접근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69.4%였다. 임신중단 전 상담과 숙려기간을 의무화하는 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라고 보는 응답 역시 60.8%로 높게 나타났다. 응답자 76%는 비용부담으로 인해 제때 안전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임신중단 수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날 포럼은 낙태죄 폐지 이후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시스템이 공백에 놓인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포럼에 참석한 손문금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과장은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며 “임신중절과 관련해 의료상담 수가를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대표는 “보건복지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현장의 목소리를 근거로 구체적인 (임신중지) 가이드와 전달체계, 정보체계를 마련하는 일을 책임지고 마련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