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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꺼내 든 ‘남녀평등복무제’…금단의 벽 깨기? 이남자 표심잡기?

등록 :2021-04-19 18:30수정 :2021-04-20 02:43

“안보군사적 고려 없는 젠더 갈등화 경계해야”
해병대 첫 여군 헬기조종사 조상아 대위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해병대 첫 여군 헬기조종사 조상아 대위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해병대 제공

내년 대선 도전을 선언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모병제 전환 및 남녀평등복무제를 도입하자는 자신의 제안을 연일 띄우고 있다.

박 의원은 19일 시비에스(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군대의 전투병과, 혹은 전방부대의 여성 군인 간부가 지휘관을 맡는 경우가 이미 생기고 있다. 여성이라서 불가능하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40일에서 100일 정도 사이에서 남녀 모두 군대를 다녀와서 충분히 예비군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현대화된 무기체계를 갖춘 정예강군 15만, 20만 정도가 있고 유사시에는 2000만명까지 군인들로 전환되는, 모든 국민이 모두 다 국방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병역제도”라고 설명했다.

남녀평등복무제가 젠더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박 의원은 “논란이 무서워서 제안하지 않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다”며 주무 부서인 ‘기득권 국방부’가 모병제 전환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성 징병제와 모병제를 절충한 박 의원 제안을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제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긍정적 반응, ‘남성 표심 잡기용 아니냐’는 박한 평가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온다. 여성 군복무 문제를 안보군사적으로 면밀한 고려 없이 젠더 갈등 관점으로 소비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여성계 일부서도 ‘성평등 위해 도입 필요’ 주장

여성 징병제를 비롯한 여성 군복무 문제가 공론장에 본격적으로 오른 것은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위헌판결을 내리면서부터다. 이러자 그해 12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복무할 수 있다”고 한 병역법 3조1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처음으로 제기됐다. 이후 동일한 헌법소원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헌재는 합헌 또는 각하 결정했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교수 시절인 2008년 쓴 논문(<징병제의 여성참여:이스라엘과 스웨덴의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에서 “군 가산점제 폐지 이후 군필자 보상 문제가 성별 논쟁으로 진전되면서 여성 징병제는 남성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출구가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 군복무 문제가 ‘남자가 복무하니 여자도 복무하라’는 불만 표출의 차원에서만 논의된 것은 아니다. 일부 여성주의 학자와 활동가들 또한 ‘성평등 차원에서 여성 군복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2003년 ‘페미니즘 저널 이프(If)’는 여성 징병제 이슈를 다룬 특집기사에 “여성에 대한 금단의 벽이 존재하는 남성 최후의 보루가 군대”라면서 병역의무를 남녀가 함께 해야 한다는 주장이 실렸다.

권 의원은 논문에서 여성 징병제를 시행 중인 이스라엘과 스웨덴의 사례를 짚으며 “징병제를 통해서든 아니든 군에서의 여성 수의 증가와 역할 확대는 당연한 경향성일 뿐 아니라 올바른 정책의 방향으로 인정되고 있다”고 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젠더법)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현재의 군 징병제는 남성은 역차별을 주장하게 만들고, 그렇다고 여성에게 부여된 특혜라고 보기도 어려워 양쪽 모두에 불합리한 측면이 있는 만큼 재설계를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lt;한겨레&gt; 자료사진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겨레> 자료사진

“군사안보 전략 부재한 여성 군복무 논의는 본말 정도”

박 의원 제안을 비판하는 쪽에서는 안보전략이 빠진 모병제와 여성 군복무 논의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병역제도는 안보 능력을 갖추는 것이 1차 목표다. 현재 박용진 의원 제안을 보면 부대 통폐합과 재배치 등 대규모 병력수급정책 변화가 수반되는 모병제가 안보전략상 왜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빠져있다. 모병제 논의가 그때그때 반짝했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이유”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남녀평등복무제에 대해서도 “모병제를 실시하면서도 동시에 전국민이 모두 군사훈련을 받아야 하는 안보적, 군사적 필요에 대한 설명이 없다. 안보 정책을 단순하게 젠더 이슈로 치환하게 되면 실효성 없는 정책이 될 뿐더러 불필요한 논쟁만 심화된다”고 했다.

여성 징병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노르웨이와 스웨덴 등 여성 징병제를 실시 중인 북유럽 국가 사례를 한국 현실에 그대로 대입하기는 힘들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성평등 정도가 실현된 수준과 군내 인권 및 처우 문제에 있어서 이들 나라와 한국의 격차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박진수 덕성여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2018년 논문 <여성 징병제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여성 참여 확대를 위한 국방개혁>에서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2000년부터 2010년대까지 국방부 장관의 절반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군내 여성의 힘이 강력하다는 점을 언급한다. 군대 복무 여건과 처우가 좋아 남녀의무복무제 시행 뒤 노르웨이 군에 복무한 여성의 90%가 만족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군대가 누구나 선망하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복무할 수 있는 기회가 여성에게 부여되는 것이 성평등을 높이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이남자 표심 잡기?

최근 재보궐선거에서 20대 남성 지지가 뚝 떨어진 당내 상황과 박 의원 제안을 겹쳐 보는 이들도 있다. 전용기 민주당 의원은 22년 전 위헌판결이 난 군 가산점 재도입까지 꺼내 들었다가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는 당 안팎의 비판을 받았다.

여성의 군 참여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김엘리 평화페미니즘연구소 소장은 “여성의 군복무를 공론화할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주장이 단순히 20대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젠더갈등을 이용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게 문제다. 여성의 군복무 문제는 국방정책·인구문제·국가안보 등이 종합적으로 걸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표심잡기식 공약으로 가볍게 소비되어선 안된다”고 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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