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퀴모 캐릭터는 ‘무지개색 꿀벌’이다. 월급쟁이 퀴어 모임 제공
월퀴모 캐릭터는 ‘무지개색 꿀벌’이다. 월급쟁이 퀴어 모임 제공

“우리 팀 일 잘하는 막내가 퀴어(성소수자)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애정하는 동료가 퀴어일 수 있습니다.”

‘월급쟁이 퀴어 모임(월퀴모)’은 직장인 성소수자들이 직장에서 겪는 고충이나 대응 방법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친목 모임이다. 월퀴모는 월급쟁이 직장인뿐 아니라 시간제 노동자, 프리랜서 등 모든 노동자 퀴어를 환영한다. 겉모습으로 상대방의 정체성·지향·나이 등을 지레짐작하는 말,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말을 금지한다는 모임의 규정도 두고 있다. 2017년 서너명이 소규모로 시작했는데 이젠 한 번 모임을 하면 20~30명이 모인다.

이들이 따로 모인 이유는 ‘직장’이 성소수자에게는 편하지 않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 인권 증진을 위한 청년 단체인 다움(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이 지난 5월 공개한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결과보고서’를 보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이나 괴롭힘을 당할까 봐 정체성을 드러내기 꺼리는 곳으로 응답자들은 직장(66.3%·중복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 조사는 지난해 8~9월 최근 10년간 한국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 청년 3911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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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급여를 받으며 일한 적 있는 응답자 1371명 중 73.3%가 직장에서 성소수자인 걸 숨기거나 속였다고 응답했다. 이유가 있다. 응답자의 42.5%는 직장에서 성소수자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경험했다. 20.7%는 성소수자 동료가 정체성과 관련한 부정적인 언행을 경험하는 것을 듣거나 봤고, 12.3%는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언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성소수자 73%가 직장에서 정체성을 숨긴 이유

성소수자 노동자가 직장에서 가장 필요로하는 건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61.6%)였다. <한겨레>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민주노총 서울본부 회의실에서 만난 월퀴모 회원 귀찮(활동명·전문직)·종이(공무원)·민(사무직)·유동이(시민단체 활동가) 등 노동자 4명도 직장 내 미세차별에 대해 토로하며 “커밍아웃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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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커밍아웃한 적 있나.

종이 “없다. 정년까지 일하는 공무원이라서 직원들과 오래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내가 그만두지 않으면 쭉 같이 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직장 밖에서는 편안하게 커밍아웃하는 편인데 직장에선 한 적 없다.”

귀찮 “저는 반대로 근무지 특성상 (업무 관련) 수련을 받은 뒤 이곳을 떠난다. 그게 나를 편하게 한다. 애인과 근무지 근처에서 손잡고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나를 자를 순 없으니까. 아직은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언젠가는 하고 싶다. 하지만 일하는 직종이 작은 소문도 파다하게 퍼지는 경우가 많아서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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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게 커밍아웃을 한 적은 없다. 시민단체 활동도 하고 있어서 관련 자료들을 회사에서 볼 때가 있는데, ‘성소수자’ 같은 단어는 지우고 출력한다.”

유동이 “친한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커밍아웃했다. 이 사람에게 커밍아웃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면서 회사에 다녔다. 동료에게 ‘퀴어 프렌들리(성소수자 친화적)’한 사람인지 떠보는 질문도 했다. 주변 퀴어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거나, 장애인 이동권 시위 등 다른 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지 않는지를 봤다.”

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서 ‘월급쟁이 퀴어 모임(월퀴모)’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월급쟁이 퀴어 모임 제공
지난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서 ‘월급쟁이 퀴어 모임(월퀴모)’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월급쟁이 퀴어 모임 제공
―직장 동료나 상사로부터 성적 지향에 관련된 괴롭힘을 받은 적이 있나?

종이 “눈치로 알고 계신 분들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종이씨, 레즈비언은 아니지?’라는 식으로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질문도 받아봤다. 직장 동료들이 여럿 있는 자리였다. 동료들이 대놓고 괴롭히진 않는다. 대신 저런 질문을 여러 사람이 하는 식으로 은은하게 계속 괴롭힌다. 그렇다 보니 성소수자인 거 같은 다른 직원들도 회사에서 일부러 자신을 소외시키는 식으로 일한다. 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인데 퀴어라는 이유로 한직으로 보내진 경우를 봤다.”

유동이 “예전에 기자로 일했었다. 퀴어퍼레이드나 성소수자부모모임을 취재하고 싶다고 하니, 팀장이 ‘너도 레즈비언 뭐 그런 거냐’라고 물었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첫 직장이었고 그곳에서 계속 일하고 싶었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너무 불안했다. 결국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퀴어 친구들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간다’고만 답했다. 그 일로 위축이 많이 됐다. 지금까지도 그 순간이 트라우마처럼 선명히 남았다. 그게 계기로 회사를 그만뒀다. 더는 나를 숨기면서 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여성단체 활동가로 취업해 출근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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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지향을 숨겨야 해서 힘들었을 때는?

종이 “애인과 함께 데이트할 때 직원 중 누가 목격한 것 같았다. 나에게 ‘어느 지역, 어느 시간에 있지 않았느냐’고 묻는데 당황해서 내가 아니라고 했다.”

유동이 “특히 구직 기간이 힘들었다. 원래 짧은 머리를 좋아한다. 그런데 면접 때는 최대한 평범한 이성애자 여성처럼 보이고 싶어서 일부러 머리를 기르고, 안 입던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었다. 그때마다 변장한다는 느낌을 받아서 불편했다.”

“이제 나도 나를 설명하기가 힘들다”
―직장에서의 커밍아웃이 왜 중요한가.

귀찮 “직장에서 연애 관련한 스몰토크를 안 할 수가 없다. 거짓말하긴 싫어서 ‘주말에 (동성)애인과 보냈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여자친구’랑 얼마나 사귀었냐’고 물어온다. 이런 것들이 스트레스를 준다.”

민 “직장에서 ‘주말에 뭐 했냐’고 자주 묻지 않나. 애인과 보냈지만 항상 부모님과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사소한 거짓말을 하는데 드는 에너지가 너무 크다. 수많은 거짓말이 일상화되니 나도 나를 설명하기 힘들다. 내 정체성을 언젠가는 설명해야 하는데 그 시기가 미뤄지니 내 삶을 잃어가는 느낌이 든다. 주말의 일상과 노동자로서의 일상 사이의 간극이 넓다.”

종이 “사적인 관계의 지인들에게 커밍아웃하고, 많은 걸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헤테로(이성애자)처럼 보이려는 노력을 안 해도 돼서 너무 편했다. 예전에는 애인과 손을 잡고 거리를 다니는 것도 이것저것 생각해야 해서 머릿속이 복잡했는데 커밍아웃한 걸 아는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생각을 안 해도 된다. 자신감도 생기면서, 변하는 내가 느껴졌다. 커밍아웃의 효능감을 느낀 거다. 이걸 직장에서도 느끼고 싶다. 일만 해도 바쁘고 힘들고 지치는데 일 외적인 부분에서까지 에너지를 쓰고 긴장하는 게 싫다. 그래서 드러내고 싶다. 아마 차별금지법이 생기면 직장에서 바로 커밍아웃하게 될 것 같다.”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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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본사는 퀴어 프렌들리한 편이다. ‘성소수자 인권의 달(프라이드 먼스)’인 6월에도 누리집에 관련 페이지를 띄웠고, 인스타그램에도 행진하는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한국 지사의 경우 여성의달(3월)에는 직원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지만 프라이드 먼스에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이런 점이 아쉽다. 각종 이벤트도 이성애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가정의 달에는 가족끼리 회사가 보내준 음식을 먹는 사진을 올리는 이벤트를 열었는데, 커밍아웃하지 않은 성소수자는 참여가 쉽지 않았다. 가족 수당이나 파트너가 아플 때 쉴 수 있는 돌봄휴가 같은 제도도 성소수자를 고려해서 만들어졌으면 한다.”

유동이 “내가 다녀본 회사를 돌이켜보면, 복지를 논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 혐오·차별 발언만 듣지 않아도 더 편하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취업한 여성단체 면접에서 “퀴어 차별적인 사람이면 같이 일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퀴어 프렌들리하다면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세요”
―그밖에 바라는 점을 자유롭게 말해달라.

귀찮 “만약 회사가 결혼 휴가 등 각종 복지를 사실혼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성소수자도 받을 수 있다고 했을 때, 누가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사회 분위기로는 성소수자를 위한 복지가 있어도 유명무실할 것 같다. 복지 제도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쓸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돼야 한다.”

“제도가 바뀌어야 사회가 바뀌고 기업이 바뀌어야 환경이 바뀐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본사는 퀴어 프렌들리한 회사이지만, 한국 임원들은 변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업 문화를 성소수자 노동권 관련 활동을 하는 ‘퀴어동네(퀴어노동법률지원네트워크)’가 많이 지적해줬으면 좋겠다. 우리 회사 인사팀에도 여러 가지 교육은 있는데 성소수자 관련 교육은 없다. 회사에서 관련 강의나 책자를 마련하면 좋겠다.”

종이 “내 일터는 조직 자체가 법과 규정에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특별히 뭔가 생길 걸 기대하지 않지만, 동성 결혼이 법제화가 되면 받을 수 있는 것이 엄청 많다. 하루빨리 동성 결혼 법제화가 이뤄졌으면 한다. 또 하나, 현재 일하는 기관에 새로운 장이 오면서 일터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승강기에 ‘다양성 존중’ 같은 표어가 붙기도 했다. 기관장이 퀴어 혐오 세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분위기도 느껴졌다. 내 상사도 비슷하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그나마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퀴어 프렌들리한 분이라면 직장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해주셨으면 좋겠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